▲ 이윤재 선생의 한글 묘비.

2013년 유해 국립묘지 이장 뒤
대구 마천산 중턱에 3년간 방치
보훈청 지원 받아 김해로 이전
나비공원에서 7일 ‘추모 헌화식’



대구 달서군 다사읍 이천동 마천산에 방치됐던 김해 출신의 한글학자 겸 독립운동가 한뫼 이윤재 선생의 묘비(<김해뉴스> 1월 14일 1면 등 보도)가 570돌 한글날을 맞아 마침내 고향 김해로 돌아왔다.
 
김해문화원(원장 이양재)은 지난 7일 내동 나비공원에서 이윤재 선생 묘비 이전을 기념하는 '한뫼 이윤재 선생 추모 헌화식'을 거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윤재 선생의 유일한 유족인 외손자 이규호 씨와 가족이 참석해 선조의 묘비가 김해로 돌아오는 장면을 지켜봤다.
 
이날 추모 행사는 김해민속박물관 이강식 학예사 직무대행의 묘비 이전 경과 보고, 묘비 제막식,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등의 헌화, 최선희가야무용단 김보라 훈령장의 '천개의 바람' 헌무 순서로 진행됐다.
 
이양재 원장은 "이윤재 선생 묘비 이전은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 여러 해 동안 추진해 온 사업이었다. 올해 경남동부보훈지청의 도움을 받아 결실을 이루게 됐다. 묘비 이전을 계기로 김해 시민들이 한글의 소중함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윤재 선생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였다. 그는 평생 동안 우리말과 글을 연구해 민족혼을 고취했다. 1927년 조선어학회 <우리말 사전> 편찬위원으로 활동했고, 1934년 설립된 진단학회에서 국사연구에도 참여했다. 한글맞춤법 제정, 조선어사전 편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한글보급을 통한 민족운동을 펼쳤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고문으로 옥사했다. 그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이윤재 선생의 유해는 처음에는 경기도 광주군 방이리의 과수원에 가매장됐지만 광복 직후인 1946년 4월 6일 유족 옆에 묻혔다. 이후 묘가 있던 산이 팔리는 바람에 1973년 대구 마천산 자락으로 이장됐다. 2013년 9월에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다시 옮겨졌다. 묘가 옮겨진 후에는 비석만 마천산에 홀로 남아 있었다.

▲ '한뫼 이윤재 선생 추모·헌화식' 참석자들이 지난 7일 이윤재 선생의 묘비를 제막하고 있다.

이 직무대행은 묘비의 귀향을 위해 묘비가 있었던 대구 마천산 등지를 다녀오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윤재 선생 묘비는 갖은 고난에도 그가 한글의 명맥을 유지하고 보급하고자 했던 뜻을 기려 순한글로 제작했다. 해방 직후 혼란한 정국에서 동지와 제자들이 당시 관례를 깨고 한자 대신 한글로 비문을 지어 더욱 의미가 깊다. 570돌 한글날을 맞아 선생의 한글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호(61) 씨는 "방치돼 있던 묘비를 할아버지의 조형물이 있는 나비공원으로 옮기게 돼 감회가 새롭다. 묘비가 고향 김해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모실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윤재 선생의 외증손자 이영표(26) 씨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증조할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유족이기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증조할아버지가 닦은 길을 확인하고 되새기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대한민국의 기반을 닦은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되새기고 기리는 일에 증조할아버지의 기념물과 흔적이 도움이 돼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추모 헌화식이 끝난 뒤 나비공원에서 초·중·고 및 대학생들이 참여한 '제19회 한뫼 이윤재 선생 추모 전국 한글 백일장'이 열렸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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