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런 벼가 익어가는 한림면 용덕리 장원마을의 논 바로 앞 산자락에 공장들이 병풍처럼 빽빽이 들어서 있다.

1885년 조성 국내 첫 한센인 정착촌
송은복 전 시장 시절 ‘망가지기’ 시작

축사 하나둘 떠난 자리 업체들 차지
용도변경 않고 건축한 무허가 많아
자연마을 곳곳에 169개 우후죽순격

대형트럭 마을까지 들어와 항상 불안
대기오염·소음공해에 편한 날 없어



삼계동에서 한림면 방면으로 난 김해대로를 달리다 망천삼거리로 접어든다. 망천삼거리에서 용덕로로 가다 보면 왕복 2차선 도로 옆으로 온통 파란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공장들만 보인다.
 
용덕리는 신천리의 산에서 발원한 하천이 용처럼 생겼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하천의 물이 맑아서 동네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천 일대를 공장들이 장악했다.
 
용덕리의 경우 수조, 용덕, 장원, 덕촌, 오항, 가영 등 6개 자연마을에서 299가구 591명이 살고 있다. 용덕리에서 자연마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곳곳에 흩어진 169개의 공장이 자연마을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용덕리 입구에 덕촌마을이 있다. 마을주민 등에 따르면 이 마을은 1885년에 조성된 우리나라의 최초의 한센인 정착촌이다. 1945년부터 한센인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1960년대에 정부는 한센인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돼지, 송아지 등을 지급했다. 이로 인해 마을 곳곳에 돈사, 우사가 세워졌다. 한센인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양계장도 운영했다. 한때 이곳에서 부산시민 50%가 소비할 정도의 계란을 생산했다고 한다.

덕촌마을에는 1989년까지만 해도 한센인 300명이 살았다. 지금은 100여 명만 거주하고 있다. 마을주민이 줄어들면서 돈사, 우사, 양계장이었던 곳은 임대공장으로 변했다.
 
도로는 화물차 한 대가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다. 마을 안의 골목은 마치 미로 같다. 인기척 하나 없는 마을에서는 기계소리만 요란하다. 가구, 기계, 소파 등 공장 종류도 다양하다.
 
축사를 헐고 공장을 지었는데, 용도변경을 하지 않은 탓에 덕촌마을 내 임대공장들은 무허가가 많다고 한다. A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무허가 공장이 전체의 90% 정도다. 무허가여서 공장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주인과 직거래 한다"고 말했다.

▲ '임대' 광고지가 붙은 덕촌마을 한 창고.

덕촌마을의 한 주민은 "마을 곳곳에 공장이 들어선 걸 보고 인근 마을 주민들은 우리 보고 '부자마을'이라고 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장은 대부분 영세하다. 임대료를 내지 않고 야반도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빈 공장도 많다"고 설명했다.
 
부산일보 2006년 5월 8일자 기사를 보면 '용덕리의 무허가 폐기물 재생업체가 부도난 뒤 공장에 쌓여 있던 폐가구목과 합판 등 건축 폐자재 수천이 장기간 그대로 방치돼 마을 주민들이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무허가 공장으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주민들의 몫이 됐다.
 
김해시 디자인건축과 관계자는 "덕촌마을 일대에 무허가공장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허가 공장은 용도·형질변경을 하지 않는 바람에 생겼다. 한림면 일대는 토지계획상 계획관리지역이기 때문에 건폐율이 40%로 제한돼 무허가공장이 양산됐다. 무허가 공장은 덕촌마을 외에도 한림면 곳곳에 있다"고 말했다.
 
덕촌마을에서 안명초 방면으로 난 용덕로를 따라가다 보면 부산외곽순환도로 공사현장 아래로 축사, 공장 들이 도로 양 옆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게 보인다. 용덕로와 용덕로 143번길을 지나 1㎞를 더 들어가면 수조마을이 나온다. 공장들이 마을입구에서부터 자리를 잡은 탓에 '자연마을이 있긴 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을 주민 김 모(80·여) 씨는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보다 공장이 더 많다. 대형트럭이 마을 안에까지 들어오는 바람에 항상 진동, 소음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 용덕마을 주민들의 거주지 바로 뒤에 공장이 난립해 있다.

인근 용덕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용덕마을회관 앞까지 들어선 공장들 때문에 주민들은 대기오염,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주민 이 모(85·여) 씨는 "송은복 전 시장 재임시절에 공장이 동네 한복판까지 들어섰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주민들은 벼, 콩 등을 재배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공기가 오염돼 농사도 안 된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밤새도록 공장이 돌아가니 조용할 때가 없다"고 덧붙였다.
 
용덕로를 지나면 돈사, 우사 등이 쉽게 눈에 띈다. 농장주들이 상동면에 비해 경사가 완만하고 평지라는 이점 때문에 용덕리에 축사를 많이 지은 것이다. 용덕리에서는 돈사 25곳, 우사 49곳 등 총 74곳의 축사가 운영되고 있다. 용덕리 끝자락에 위치한 장원마을 주민들도 축사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 20년 전부터 축사가 하나 둘 떠난 자리를 공장들이 차지했다. 김해시 투자유치과 관계자는 "용덕리의 땅값이 다른 지역보다 저렴한 편이라 개별공장들이 많이 세워졌다. 공장의 접근성이 좋은 곳은 3.3㎡당 250만~300만 원까지 매매된다. 경사진 곳은 170만 원~19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 장원마을 입구 안내판에는 공장 이름만 가득하다.

장원마을 앞 낮은 언덕 위에는 나무 대신 패널로 만든 공장들이 자리 잡았다. 마을 안내표지판에는 마을 소개 대신 공장 이름들이 적혀 있다. 냉장고 부품, 제철 설비부품, 도로파이프 공장 등이 경사진 산비탈에 옹벽과 함께 지어졌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