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국 정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공동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녹색성장 서밋 2011' 행사에서 OECD의 앙헬 구리아 사무총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녹색성장의 아버지로 불러야 한다"며 격찬했다고 한다.
 
법학에서도 드문 일이긴 하지만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 있다. 1900년대 초 군주국가에서 공화국가로 국가의 형태가 혁명적으로 변하던 시점에 '법률에 의한 행정의 원리(법치주의)'를 확립하여 근대 행정법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오토 마이어(Otto Mayer)를 일컬어 오늘날 우리 행정법 교과서에서는 '독일 행정법의 아버지'라고 적고 있다.
 
'아버지'라면 아마도 효시, 시조, 원조라는 단어가 연상될 것이다. '녹색성장의 아버지 이명박' 할 때 뇌리에 스친 것은 통영 부둣가에 주름진 할머니 사진들과 함께 숱하게 붙은 '원조 충무 김밥'이라는 상호를 새긴 입간판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인근의 땅, 바다, 하늘이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공간'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녹색에너지'의 대명사로 둔갑시켜 국내 원전 증설 사업은 물론 원전 플랜트 수출을 국가 주요 수출대상 품목으로 선정해 밀어붙이고, 금수강산을 녹색페인트로 덧칠하는 '4대강 토건사업'을 '녹색 뉴딜'이라 명명함으로써, '삽질공화국'이란 별칭까지 태동시킨 이명박 대통령은 명실공히 '녹색성장의 아버지'가 맞다.
 
'공정'이란 단어를 끄집어 내 그 용어가 가진 참뜻을 왜곡하고, '법치'를 주창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법치주의의 의미를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 시절로 되돌린 만큼이나, '이명박의 녹색성장'은 분명 재기발랄하고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OECD 구리아 사무총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녹색성장의 아버지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 어디에도 원자력은 고려 대상이 아니며, 수 만 년 도도히 흘러온 금수강산의 강바닥을 마구 파헤쳐 직선화하고 시멘트 둑과 댐을 건설하는 '4대강 토건 사업'에 진정한 생태주의적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국가정책을 수립·시행할 때에 환경보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개발과 환경보호의 조화'라는 생태주의적 의미의 '녹색'이 가진 '지속가능한 발전'의 이념을 왜곡한 장본인으로서의 '녹색성장의 아버지'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하는 녹색성장의 대명사인 원자력과 '4대강 사업'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법률이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2010.1.13, 법률 제9931호)이다. 이 법률은 저탄소 녹색성장 추진의 기본원칙, 국가·자치단체·사업자·국민 등 각 주체의 책무, 저탄소 녹색성장에 관한 국가전략 등을 규정한 기본법이다. 하지만 이 법률은 국가 중심의 전형적 중앙집권주의 방식으로 규율되어 있다. 즉 국가가 중심이고 광역자치단체 등은 국가정책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녹색성장위원회의 설치도 국가 중심이며, 광역자치단체에는 '둘 수 있다'는 재량 사항이고, 기초자치단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만 해도 이전에는 대규모 수력, 화력, 원자력이 중심이어서 국가 중심정책이 맞았지만, 최근의 태양광, 풍력, 소규모 수력, 바이오 에너지 등 대체에너지 정책은 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추진되어야 할 영역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바라건대, 원자력과 '4대강 사업'을 '녹색성장'이라 우겨 국제적 비웃음을 사는 대신에 제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분권적 에너지 정책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진정한 이념을 되찾는 길로 국가정책 방향을 하루 빨리 수정하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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