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우 김해뉴스 사장(부산일보 이사).

미국 가수 밥 딜런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흥얼거리면서 해반천 일대의 김해평야로 나가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동의 들판과 화목의 들판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는데, 어느새 온통 황금빛 천지였습니다. 벼들의 윤슬에 눈이 부신 말 그대로 '금바다'였습니다. 공장들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나가고 있는 두 들판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서정적이었고, 목가적이었고, 고즈넉했습니다. 지금의 두 들판 앞에서라면 하는 수 없이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가수는 노래를 하고, 철학자는 사색을 할 것 같았습니다. 등 부위가 회색인 것으로 보아 왜가리인 듯한 철새 한 마리는 한참을 차들이 지나다니는 삼거리 길 위에 서서 사색하듯 먼 곳을 응시하더니 문득 커다란 날개를 펴고 저만치 날아갔습니다. 저 왜가리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까지 날아왔는가, 나는 왜 필사적으로 다른 생명을 잡아먹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화목 들판인지 전하 들판인지의 한켠에 자리 잡은 어느 집 굴뚝에서 한 모금의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연기는 구수해 보였습니다. 가수 한대수의 노래 '하룻밤'의 노랫말이 생각났습니다. (한대수는 밥 딜런을 좋아했고, 우리나라 포크 음악의 창시자란 말을 듣고 있습니다.) "하룻밤 지나서 저 초가집 안에 구수한 나뭇내 맡으며/ 오르는 새 하늘 날으는 흰 구름 긴 숨을 한번 또 쉬자/ 비치는 새 태양 참새의 첫울음 이 모든 것은 나의 새 세상/ 뛰어라 염소야 새 날을 맞으러 첫 발자국 듣기 전에"(1절)
 
해반천 둑에서 논으로 내려가 손으로 벼 이삭을 쓰다듬어 보았더니, 어릴 적 고향집 마당의 누렁이 얼굴처럼 탐스럽고 순하고 귀여웠습니다. 벼 이삭은 손바닥을 핥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 벼 이삭들이 따뜻한 밥이 되어 목숨들을 긍정적으로 건사할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시인 함민복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줄임)"(시 '긍정적인 밥' 중에서)
 
내친 김에 가락 들판으로 가 보았습니다. 잿빛 외관의 공장들과 논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공장들의 힘이 더 세 보였습니다. 논들은 무기력해 보였습니다. 가락 쪽의 논들을 보니 안도현의 시에 등장하는 꽃게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시 '스며드는 것' 전문)
 
가락 들판을 떠나서 화목 들판을 지나 강동 들판을 지나 시내로 들어오면서 가수 이광조의 노래 '나들이'를 들었습니다. 노랫말이 좋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 준 화목 들판과 강동 들판이 만수무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정답고 따뜻한 품으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았습니다.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착한 마음씨에 사람들과 밤새워 얘기 하리라/ 산에는 꽃이 피어나고 물가에 붕어 있으면/ 돌멩이 위에 걸터앉아 그곳에 쉬어 가리라/ 이 땅에 흙냄새 나면 아무데라도 좋아라/ 아, 오늘밤도 꿈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모습들/ 가다 가다가 지치면 다시 돌아오리라/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 그대의 정든 품으로."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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