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주부, 반찬거리를 사 들고 귀가하는 여성…. 삼방전통시장은 지역주민들의 '삶의 현장'이다.

이웃사촌·가족 같은 ‘정’ 인상 깊어
왁자지껄 족발집은 ‘동네 사랑방’

옛날식 통닭, 즉석 생선구이 침 꼴깍
어묵·반찬가게엔 퇴근시간 긴 줄

매달 한 차례 물청소로 청결 유지
공용주차장 운용으로 차 문제 해결
이웃돕기김장 등 각종 행사도 진행


월요일 오후 3시. 거리는 한산했다. 인적이 드물었다. 삼방전통시장 앞에 섰다. 어럽쇼? 시장 안에서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요즘에는 다들 '시장'이라고 하면 '장사가 안 돼 살려야 할 대상'이라 여기는 터에 뜻밖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대체 삼방전통시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문성림 삼방전통시장상인회 사무과장은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시장 안에서는 하루 동안 4000만~5000만 원 정도가 돌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삼방전통시장 '탐방'에 나섰다.
 

▲ 고소한 맛이 일품인 어묵가게.

시장 입구 간판에는 파란색 배경에 하얀 글씨로 '삼방전통시장'이라 적혀 있었다. 천천히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깊은 인상을 받은 건 상인들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었다. 높다란 천장과 넓은 통로, 깨끗하고 밝고 화사한 풍경도 의외였다.
 
"이모, 이건 얼마예요?" "원래 킬로(㎏)당 6000원이었는데 1000원 내리 가꼬(내려서) 5000원이다."
 
"언니, 다 해서 얼마?" "자, 보자. 2만 1000원인데 2만 원만 도(줘)."
 
시장의 길이는 약 250m 정도 됐는데, 양쪽에 사이좋게 늘어선 가게들 앞에서는 이모, 언니 같은 친근한 호칭이 떠다녔다. 부식가게에서는 이모, 생선가게에서는 언니였다. 대화만 듣고 있으면 시장 안에 일가친척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게 삼방전통시장에서 사용되는 기본 호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시장에 가만히 앉아서도 삼방동 돌아가는 일들을 다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호칭만 이모, 언니가 아닌 셈이었다. 손님과 상인들은 진짜 이웃사촌 혹은 가족이었다.
 

▲ 족발집은 동네사랑방 역할을 한다.
▲ 주부들에게 인기만점인 반찬집.

"언니, 목살 좀." "뭐 하는데?" "구워먹게요." 손님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며 품질 좋은 돼지고기 목살을 꺼내는 '시장식육점' 정숙임 사장. 상인회 부회장이기도 한 그녀는 "시장 주변 아파트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다들 손님이기 이전에 이웃이다. 같은 주민이고…. 그러다 보니 쉽게 친해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고객과의 관계만 끈끈한 게 아니었다. 상인들 간의 유대감도 깊었다. 그럴 만도 했다. 1992년에 들어왔다는 식육점, 이듬해에 입점했다는 속옷가게, 어머니 때부터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결혼할 때는 시장 어른들과 함께 함을 받았다는 젊은 상인 등등…. 다들 시장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이 길었다. 상인들 간의 의가 좋으니 시장 분위기가 밝을 수밖에 없었던 셈. 그래서 손님들도 물건만 사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기운을 얻고 돌아가는 듯 했다.
 
이런 분위기 덕에 아예 손님들의 사랑방이 되어버린 가게도 있었다. 족발을 날마다 직접 삶는다는 '오동동족발'은 안이 시끄러웠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기웃거렸더니 "여가 노인정 아이가" 하는 목소리와 "여기 오면 사람 구경 해, 밥도 줘, 커피도 타 줘, 주인 기분 좋으면 과일도 준다 아이가"라며 깔깔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주인이라도 된 듯 편안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손님들을 보며 주인 금점자 씨는 "문디 가스나들" 하면서 껄껄 웃었다.
 

▲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는 모자.

이들의 입담을 즐기고 있는데 문득 코끝을 스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났다. 발걸음이 절로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인근에 있는 옛날식 통닭 가게였다. 기름옷을 한 번 입은 닭들이 층층이 누워 있다가 손님이 오면 한 번 더 기름 솥에 몸을 담가 바삭해 졌다. 정유림 (24·여·삼방동) 씨는 "평소엔 어머니와 장을 보러 온다. 오늘은 통닭을 사러 왔다. 바삭한 껍질과 살이 담백해 맛있다"며 두 마리를 주문했다.
 
입맛을 당기는 건 통닭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의 '한진수산'에서는 싱싱한 해물을 팔았는데, 즉석에서 생선을 구워 팩에 담아 판매하기도 했다.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노릇노릇 익어가는 생선구이의 소리와 냄새는 먹을 생각이 없던 사람도 멈춰 서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맞은편에서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어묵과 두부를 만든다는 '삼방즉석두부'가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매대 위에는 탱글탱글한 질감의 어묵들이 줄을 지어 놓여있었다. 반죽을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로 둥글게 떼고 있던 박창위 씨는 "하루 종일 이렇게 튀겨대면 남지 않겠느냐"라고 물었더니, "퇴근 시간이 되면 팬들이 줄을 선다"고 자랑했다. 부인 진희영 씨는 "앞에서 물건을 건네주는 사람은 나다. 그런데 나는 투명인간 취급하고 남편이랑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남편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서운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팬심(?)으로라도 와서 어묵을 사 주면 좋다"며 '현실적인' 답을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 상인회가 고객행사로 진행한 마술쇼.

이밖에 "처음 시장에서 일할 땐 춥고 더워서 우째 장사 하노, 시장 사람들 대단하다 싶더만…. 이제 시장 일에도 익숙해졌다"는 '똘이분식'의 찜기에서 막 꺼낸 만두의 온기도, "아무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들어온 게 2000년대 초반이다. 이젠 단골도 제법 생겼다"는 '새댁상회'의 칼칼한 고춧가루 빻는 내음도 시장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었다.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발걸음을 멈추는 곳이 있었다. 반찬가게였다. '엄마손반찬', '쌍둥이반찬', '자매반찬' 등이 오밀조밀 붙은 채 저마다의 손맛을 앞세워 반찬을 팔고 있었다. 맞벌이부부가 점점 늘어나면서 반찬을 사서 먹는 집들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했다.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연근조림, 꽈리고추, 콩잎, 멸치조림, 파래무침 등 마른반찬에서부터 추어탕 같은 국에 이르기까지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찬들이 줄줄이 대기를 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발길을 모을 만했다.
 
평소 부인과 함께 반찬거리를 사러 자주 온다는 김춘호(65·삼방동) 씨는 "다른 시장보다 깨끗하다는 믿음이 있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사실 정갈함은 삼방전통시장상인회가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었다.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는 모든 상인들이 시장 내부를 물청소한다고 했다. 매대를 설치할 때 고객선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상인회는 시장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상인, 주민 들의 동의서를 받아 김해시보건소에 제출하기도 했다.
 
삼방전통시장은 또 시장 입구에 횡단보도를 만들어 손님들의 안전을 확보했다. 이 와중에 손님들을 위해 빈 점포를 빌려 휴게실로 꾸밀 준비도 하고 있었다. 휴게실에는 전통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공동화장실을 설치하고, 독서와 작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꾸밀 예정이라고 했다.
 
주차 문제는 삼방공용주차장 운영으로 해결했다. 시장을 이용하면 1시간 무료였다. 주차도장을 받지 않아도 시장에 다녀온 걸 확인하는 방법은 있었다. 문성림 사무과장은 "비닐봉지를 보고 확인한다. 조만간 삼방전통시장만의 노란색 비닐봉투를 만들 예정이다. 그 때는 더 확실하게 구분이 될 것"이라며 독특한(?) 시장 손님 감별법을 설명했다.
 
삼방전통시장은 정월대보름이나 추석 등 잔칫날에는 떡국을 나눠 먹기도 하고, 겨울에는 주민들을 가족 단위로 모아 함께 김장을 담아 이웃에게 나누는 행사도 연다고 했다. 이런 노력들은 상인과 상인 간, 상인과 손님 간의 경계를 없애 서로 이웃이 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였다.
 
안오영 상인회장은 "삼방전통시장이 장사가 잘 되는 것은 많은 지역 주민들이 찾아주는 덕분이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방안을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전은영 프리랜서


▶삼방전통시장 가는 길
내외동주민센터·부원역에서 시내버스 2-1번, 북부동주민센터에서 1번, 중앙병원·외동사거리에서 시내버스 7번, 부산 구포역·강서구청역에서 8번 타고 삼방시장정류장에서 내려 도보로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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