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언스파크산단에서 바라본 명동리 전경. 농업진흥구역이어서 개발을 할 수 없는 논을 제외하고 온통 공장이 들어차 있다.

 

일제강점기 면사무소 있던 최대 번화가
부산~마산 지방도 있어 교통 여건 좋아

90년대 중반 이후 투기 열풍 공장 난립
공식 집계만 180개, 소규모 임대 더 많아
외곽순환고속 개통하면 기업 증가 불보듯

‘마을 지키기’ 어르신 투쟁 결국 무위로
“막내 이장 60대… 이제 싸울 사람도 없어”




예로부터 도로 건설은 성장을 가져다 줬지만 적잖은 부작용도 낳았다. 19세기 영국 런던의 잘 닦인 도로는 대영제국을 이룩하는 데 기여했지만, 인근 주민들은 마차를 끄는 말들이 쏟아낸 배설물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최초의 고속도로 연결망인 독일 '아우토반'은 경제성장을 이끌었으나, 2차 세계대전 중 나치를 위한 전쟁물자를 실어 나르거나 폭격기 활주로로 활용되기도 했다.
 
김해도 고속도로와 국도 주변에 시가지와 공장지대가 형성되는 등 도로망이 성장을 견인한 지역이다. 특히 한림면의 명동리는 도로가 지역민의 삶에 끼친 영향이 큰 곳이다. 명동리에는 1960년대부터 부산과 마산을 잇는 지방도로가 있어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빈번했다. 지금도 지역을 관통하는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한때는 도로로 번화했지만, 이제는 고속도로 건설 때문에 소음, 발파 진동 등에 시달리는 곳이다.

낙산, 두례, 인현 3개 마을로 구성된 명동리는 과거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전에 비해 인구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860여 명이 거주한다. 한림면의 12개 리 가운데 면 소재지인 장방리와 가구공장이 많은 신천리에 이어 세 번째로 주민이 많다.
 
명동리는 한때 한림면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이었다. 한림면은 이북면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상북과 하북을 합쳐 이북면이 됐을 당시 면사무소가 있던 곳이었다. 1928년 개교해 9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이북초등학교도 있다. 부산·경남에서 대입 재수를 고민한 40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김해은석학원이 1986년부터 있던 곳이기도 하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 개통에 앞서 부산에서 마산을 오가려면 명동리 앞 지방도로를 지나야 했을 정도로 교통여건도 좋았다.
 
이런 역사 때문에 명동리에는 한림면 중에서도 비교적 일찍 공장이 들어왔다. 두례마을 배호순 이장은 "붉은 벽돌을 찍어 부산으로 납품하는 공장들이 1960년대 말부터 있었다. 이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1990년대 중반 들어 부동산 투기열풍 탓에 공장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1999년 마을에 들어간 건축자재 회사의 관계자는 "당시에는 공장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2006년 이직해 왔더니 공장이 계속 생기고 있었다"고 전했다.

▲ 공장과 주택이 담을 맞대고 있는 두례마을.

공장들은 처음에는 두례마을에만 있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두례, 인현 두 마을 맞은 편 도로를 따라 상자, 비닐 공장이 들어섰다. 이후 금속, 조선기자재 업체들도 자리를 잡았다. 마을 앞쪽 논은 절대농지로 묶여 있어 개발이 어려웠지만, 도로 건너편은 용도변경이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이다.
 
몇 가구 살지 않았던 두례마을의 살랑골까지 공장들이 들어갔다. 2006년 율하지구 개발 이후 대체부지를 물색하던 장유의 4개 기업이 옮겨갔다. 곧이어 코스닥 상장기업인 해상크레인 제작사 '디엠씨'가 2007년 문을 열어 주변의 공장화를 가속화시켰다. 율하에서 이전한 기업 관계자는 "당시 이곳은 과수원이었다. 함께 온 4개 기업들이 농로를 확장해 진입로를 만들어 도로망을 형성하자 다른 업체들도 들어왔다"고 말했다.

▲ 살랑골에 조성 중인 명동일반산단.
▲ 한 공장 뒷쪽에서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제 명동리에는 자가공장 146개, 임대공장 34개가 등록해 있다. 이 숫자는 김해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통계에 불과하다. 큰 임대공장에는 여러 개의 업체들이 입주해 있고, 훨씬 많은 소공장들이 주택과 담을 맞대고 있다.
 
공장이 대거 몰려왔지만, 나이 든 어르신은 자식이 있는 도시로 가거나 세상을 등지면서 인구는 오히려 급감했다. 출·퇴근하는 근로자나 상인들이 많아 나타난 현상이다. 시골학교 폐교 바람 속에서도 이북초는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명동리에서 통학하는 학생은 전교생 90여 명 중 10여 명에 불과하다. 2년 전 신천초와 통합한 이후 정원의 절반은 과밀학급을 피해 삼계동에서 오는 시내 학생들이다. 이북초 관계자는 "1980~90년대에는 주로 명동리, 병동리 등 인근 지역 학생들이 학교를 다녔다. 이제는 시내에서 오는 학생이 많다"고 밝혔다.
 
도로와 함께 들어온 공장 때문에 소음과 냄새 등의 스트레스에 시달려온 주민들에게 걱정거리가 더 늘었다. 두례마을에서 불과 50~100m 앞으로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인현마을 뒤편으로는 터널이 뚫리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제 더 살기 힘든 동네가 됐다고 하소연한다. 지금도 국도 14호선과 58선을 잇는 4차선 도로가 명동리를 관통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옆으로 대규모의 고속도로도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오는 2017년 말 준공 예정인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는 진영~상동~부산 북구~금정구~기장군을 잇는 광역교통망이다. 부산뿐 아니라 울산까지 거리도 비약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2008~2010년 실시설계 때보다 사업장이 30%가량 증가한 명동리를 고려해 당초 계획에 없던 명동나들목도 추가됐다. 명동리에서 사업을 하는 회사들뿐만 아니라, 명동리에 만들고 있는 사이언스파크산단이나 명동일반산단의 경우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호재다.

▲ 공장에 둘러싸인 양파밭에 모종을 심는 주민.

반면 주민들은 공사 발파로 일어나는 진동, 분진뿐만 아니라 완공 후에도 소음, 안전사고 위험 등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됐다. 특히 만수 면적이 1만 평에 가까운 명동저수지 덕에 사시사철 물 걱정 한번 없이 농사를 짓는 인현마을 주민들의 우려는 더 크다.
 
인현마을 송점복 이장은 "2년 전 설명회에서는 도로구간만 간단하게 설명했다. 최근 퇴래리 쪽에서 터널 발파 작업을 했다. 축사의 소들이 진동과 소음에 크게 놀랐다. 마을 바로 뒤에서 발파를 하면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1990년대에 공장들이 들어오려고 했을 때 어르신들이 결사적으로 막았다. 김해시청을 찾아가 시위를 하면서 농토를 지키려 했다. 공무원들은 '인현마을은 무슨 민속마을'이냐고 농담했다. 어르신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막내 세대인 내가 62세다. 이제 같이 싸울 사람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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