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우 김해뉴스 사장(부산일보 이사).

'비선실세(秘線實勢)'라는 단어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습니다. 비선실세는 '국가적 혹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권력자와 비밀리에 선이 닿아 있어서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어권에서는 '새도우이 파워(shadowy power)'라고 합니다. '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는 힘'으로 해석됩니다. 중국의 한 언론은 '暗線親信(안시앤친신)'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비밀스런 심복 혹은 측근'이란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비(秘), 새도우이(shadowy), 암(暗) 모두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최순실'이란 이름의 비선실세가 구속됐습니다. 민간인의 신분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사리사욕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비선실세가 없었던 적은 없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는 '소통령'이라 불리며 국정을 농단하다 한보비리 사태 때 구속됐습니다. 현철 씨는 한 개인의원에서 방송사 사장 인사와 관련해 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홍일·홍업·홍걸 씨는 '홍삼트리오'란 말이 나돈 가운데 비선실세 구실을 했고, 결국 구속되거나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형 건평 씨가 '봉하대군'이란 말을 들으며 숱한 잡음을 낳은 끝에 세종증권 매각 관련 비리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상득 씨는 '만사형통'이란 조어를 낳은 장본인인데, 역시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습니다.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사례가 이렇다는 것이지 잘 알려지지 않은 비선실세들도 숱했습니다.
 
김해시장의 경우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A 시장 시절의 측근 비리를 다룬 괴문서를 보면 어떤 사람들이 비선실세 행세를 하는지, 행태는 어떠한지를 나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멀고 가까운 친인척과 고향 친구들은 단골손님이었습니다. '부시장' 소리를 들은 어떤 이들은 아예 특정 공무원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시정을 농단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공사 수주 등으로 막대한 이권도 챙겼습니다.
 
B 시장 재직 중에는 '낮 00, 밤 00'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B 시장의 낮은 C 씨가, 밤은 D 씨가 지배한다는 뜻이었습니다. C 씨는 특혜성 용도변경 문제나 산업단지 비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늘 이름이 거론됐고, D 씨는 B 시장의 개인적인 추문과 관련해 입길에 오르내렸습니다. 이들 외에 B 시장의 선거 캠프 관계자였던 E 씨는 시청의 6급 이하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허성곤 현 시장에게도 비선실세라 불릴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큰 잡음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재선을 생각해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기실 사람 사는 이치, 그러니까 오래 흉금을 털어놓고 살아온 사람을 더 신뢰하게 되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비선실세나 외부에 별도 의지처가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그 비선실세의 수준과 도덕성에 있을 것입니다. 항간에서는 일본과 우리의 비선실세 문화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일본인들을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예를 들어 친구가 공무원이라고 했을 때 뇌물을 받지 않도록 적극 후원을 하지만, 친구가 고위직에 오르면 부담을 주기 싫어 연락을 끊어버린다고 합니다. 비리가 발각되면 윗선과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자살해 버린다는 말들도 합니다.
 
김해의 현재 권력인 허 시장의 비선실세들께서는 부디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거나 직언을 하는 식으로 성공한 시장을 만드는 일에만 몰두할 일이지, 위세를 부리거나 잇속을 챙기는 일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했을 때 바야흐로 비, 새도우이, 암 같은 음습한 단어들도 음덕(陰德·드러내지 않는 덕행)의 '음'처럼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쓰임새를 얻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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