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식 인제대 교수.

'최순실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광풍은 최 씨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 부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어찌 보면 이화여대가 '최순실 난리굿'의 제1막이었던 셈이다.
 
우선 이 바람에 최경희 총장이 날아갔다. 대학 입시와 학사 부정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당연지사였다. 최 총장은 벌써 사임해야 했을 사람이었다. 이대 학생들은 소용돌이가 시작되기도 전에 교육부가 장려하는 이른바 '평생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면서 사업철회와 총장퇴진을 요구했다. 필자 자신 여권 옹호론자를 자처하고 이대를 '좋은 여대'로 여기긴 했어도 '명문'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학교 측이 사업철폐를 선언했지만 학생들은 총장의 퇴진까지 요구했다. 특정사업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총장과 대학행정이 교육자로서의 철학을 가지지 못한 데 대한 자격시비 같은 것이었다.
 
사실 출생률 저하로 입학정원이 줄어들고 평균수명의 증가로 활동하는 노년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어쩌면 평생교육은 대학교육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학점과 학위의 부여는 이미 평생교육이 아니라, '기여입학제'보다 못한 입학과 학위 취득의 '샛길 만들기'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문제를 제기했고 교육보다는 경영을 선택한 총장의 교육철학 부재를 규탄한 것이었다. 학사부정이 노출되기까지 교육부 사업 따기에 동참하며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던 교수들도 교육철학의 부재는 마찬가지였다. 정작 철학도 없고 비전도 없으며 결과에는 무책임한 '공무원'의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미끼로 던진 카드를 덜컥 삼켜버린 대학의 경영자를 규탄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업 철회에도 불구하고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 때문에 이대를 '명문'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총장은 경영자가 아니고 교육자다. 경영을 무시할 순 없지만 교육자임을 우선에 두어야 한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효율이나 경영원리를 무시하고 아낌없는 낭비도 불사하면서 먼 길을 돌아서 가야할 때가 부지기수이다.
 
줄어드는 입학생과 등록금 수입 때문에 경영과 효율에만 목매는 것은 이미 교육이 아니다. 경영에만 매달리기에 교육 본연의 모습은 굴절되고, 무원칙의 교육이 경영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이다. 관례적으로 대학총장이 공항의 VIP룸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교육자에 대한 존중이지 경영자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대학보다 월등한 규모의 대기업경영자가 누릴 수 없는 권한이나 존경이 인정되는 것은 경영능력이 아니라 교육자에 대한 예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육을 빙자하고 실제는 경영이란 이름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가와 똑같은 철학으로 대학을 운영하려 한다면 이미 교육자로서 존경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교육철학의 부재나 교육자로서의 자격 결여를 덮어주거나 조장하는 저변에는 교육부가 무슨 영어약자를 붙여 '창조'해 내는 재정지원사업을 좇아야 하는 대학운영의 현실이 있다. 교육자가 아닌 경영자는 눈앞에 던져진 예산 획득을 위해 대학의 교육과정과 시스템을 손오공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쉽게 천변만화의 개편과 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누가 교육을 '백년의 대계'라 했던가? 백년은커녕 한 학번을 동일한 과정으로 가르쳐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인류가 수 천 년 동안 교육을 해오면서 독립적 학문 분야로 정착시켜 왔던 문학, 사학, 철학도 재정지원의 미끼에 융합이란 이름으로 한순간에 한 그릇의 비빔밥이 되었다. 원래 대학에 그런 비전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선 재정지원사업이니까 따놓고 거기에 교육의 방향과 시스템을 맞추는 것이다. 침대에 맞춰 사람의 키를 늘리거나 잘라서 죽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경영이 있을지는 몰라도 교육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교육부가 제시하는 특정프로그램의 재정지원사업은 다양해야 할 대학교육을 획일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획일화된 교육을 어찌 '큰 배움'의 대학교육이라 할 수 있겠는가? 최소한의 다양성도 인정되지 않는 구조에서 어떻게 창조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있겠는가? 교육부가 재정지원사업을 통한 대학 통제의 관행을 중단하고 동일 노선에 줄세우기를 통해 대학교육을 획일화하는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이러한 사태는 언제까지라도 되풀이 될 것이고, 그러는 동안 대학교육은 고사해 갈 것이다.
 
대학이 명문인 까닭은 학교의 교육철학이 어떤 가에 있지, 경영수완이 어떠한 가에 있지 않다. 이대가 명문인 까닭은 어른들이 잊어버린 대학의 교육철학을 학생들이 지적하고 다시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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