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뭇잎이 떨어지고 갈대가 우거진 화포천습지가 늦가을 분위기에 젖어 있다.

 

▲ 마른 풀 위에 앉은 잠자리 한 마리.

물 억새, 갈대가 서로 몸을 비빈 탓
씨앗은 이리저리 바람에 날아다녀요

발 아래로는 벼메뚜기 뜀뛰기하고
왜가리는 외롭다며 신세만 한탄하죠

친구랑 자전거 타고 온 김형칠 씨
넋두리 늘어놓기 좋아 왔다며 껄껄




지난 3월 중순이었다. 늦겨울과 이른 봄 사이, 얼었던 마음에 따뜻한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친구 몇 명과 기분 전환을 위해 떠날 곳을 찾던 중이었다. 멀리 떠나자니 부담스러워 가까운 곳이면서도 일상을 환기시킬 수 있는 공간을 물색했었다. 그리고 결정한 곳이 한림면 화포천습지생태공원. 이곳을 추천한 친구는 "조용하고 어두워서 별이 그렇게 잘 보일 수가 없다"고 했었다. 실제로, 아예 먼 다른 곳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화포천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겨울의 화포천과 다시 재회했다. 화포천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여름 태풍 차바가 한차례 휩쓸고 간 뒤 풀이 많이 죽어 있었다. 김민정 생태지도사는 키 큰 버드나무들의 흙 덮인 몸통 아랫부분을 가리키며 "태풍 때 낙동강이 범람해 이만큼 물이 찼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물은 성인 여자의 가슴 선에서 어깨 선 정도의 높이였다.
 버티는 힘이 약한 물 억새나 갈대는 스러져버렸지만, 물에 깊이 잠겼을망정 나무들은 꿋꿋했다. 김 지도사는 "습지에 가면 버드나무가 많다. 습지에 놀러 갔을 때 키 큰 나무를 보고 버드나무라고 생각하면 90퍼센트는 맞다"라며 "버드나무는 물에 잠겨도 잘 살기 때문에 습지에 적합한 수종"이라고 말했다.

▲ 화포천습지 산책로 전경.

버드나무만 있는 건 아니었다. 화포천에는 약 600 여 종의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 중에는 참매, 황새, 수달, 삵, 수리부엉이, 큰기러기, 독수리, 노랑부리저어새, 귀이빨대칭이, 큰고니 등 9종류의 멸종위기종도 있다. 그런데, 언뜻 600여 종의 생물들이 살기에는 비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탐방을 하는 동안 시나브로 사라졌다.
 
탐방로의 시작점에는 '뱀 주의' 팻말이 서 있었다. 오늘 신은 운동화가 뱀의 이빨에도 뚫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가 하는 걱정을 하자, 김 지도사는 "뱀이 일광욕을 하기 위해 둑 위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경우가 있다. 무서워하는 분들도 더러 있지만, 뱀이 있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먹이사슬 아래로 개구리, 곤충, 식물이 풍부하다는 얘기"라면서 "화포천에겐 긍정적인 지표"라고 설명했다.
 
한 걸음씩 떼기가 무섭게 풀들은 자기 자랑을 해댔다. 나라가 망한 일제 강점기 말에 처음 나타난 풀이라 해서 '망할 놈의 풀'이라 불리는 망초,  열매가 소리를 내는 소리쟁이, 한삼덩굴, 쑥, 강아지풀 따위가 예제없이 널려 있었다. 그 위에서는 암끝검은표범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 독수리 먹이주기 행사 장면.

주위를 두리번거렸더니 이번엔 나무 데크 위로 초록색과 흰색을 띠는 분비물이 넓게 퍼져 있는 게 보였다. 색깔만으로 종을 단정 짓는 건 무리지만 초록색은 기러기, 흰색은 저어새의 배설물로 추측된다고 한다. 화포천습지생태공원에서는 매주 생물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식물들처럼 땅에 뿌리를 박고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육안으로 기록할 수 있지만, 머물렀다 떠나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는 것들은 남겨놓은 흔적들을 통해 더듬는다. 배설물도 좋은 자료다. 김 지도사가 땅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이유다.
 
화포천 위로 난 큰기러기교와 노랑부리저어새교에 서자 오리들이 무리지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이 보였다. 신기해하며 오리 떼를 바라보고 있으니, 김 지도사는 운이 좋으면 노란색 부리로 물을 저어가며 먹이를 찾는 멸종 위기 종 노랑부리저어새도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노랑부리저어새는 노랑부리로 물을 저어 먹이를 먹는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먹이를 먹기 위해 부리를 막 젖다보면 어지럽지 않겠나. 그 때를 틈타 옆에서 왜가리나 백로가 저어새 부리에서 튀는 물고기를 날름 받아먹곤 한다. 얼마나 웃기는지"라며 노랑부리저어새의 비애를 들려줬다.
 
화포천습지생태공원에 이렇듯 많은 생물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뭘까. 김 지도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화포천 보전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게 공원이랍시고 인공적으로 뭔가를 억지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각자 자리를 잡는 대로 그냥 놔두는 게 생물들이 이곳에 머무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 같다"며 "공원 내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데, 밤에 야행성 생물들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또, 생태학습관의 유리에도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 유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새들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화포천 식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차바 때 유실된 고라니교와 수달교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온 길을 되짚어 와야 했다. 그 덕에 생물들이 직접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머리 위로는 높이 자란 물 억새와 갈대가 서로 몸을 비비는 소리, 발아래로는 풀 사이를 뛰어다니는 벼메뚜기의 뜀뛰기 소리가 교차했다. 간간이 외로움을 토로하는 왜가리의 울음소리가 섞였다.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공기 중에 물 억새와 갈대의 씨앗이 날아다녔고 강아지풀은 무거운 제 씨앗을 바닥에 소복이 뿌려댔다.
 
어느새 화포천습지생태학습관에 도착했다. 화포천습지생태공원에서는  자전거를 탄 '사람'을 만났다. 반가웠다. 창원에서 왔다는 김형칠(55) 씨는 "아내와도 와봤는데 오늘은 친구랑 왔다. 친한 사람들과 자연 속에서 넋두리를 늘어놓기에 좋아서 왔다"며 웃었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화포천습지생태공원에서는 다양한 체험활동도 할 수 있다. 매년 열리는 체험으로는 8월말부터 9월초까지 진행되는 반딧불이 보기 체험과 12월부터 2월까지 선보이는 독수리 먹이 주기 체험 등이 있다. 김 지도사는 "먹이 주는 시기가 되면 독수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 같이 찾아온다. 100~200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걸 보고는 장관이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어린이들이 화포천 체험행사 참석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16명의 생태지도사가 매달 주제를 바꿔 운영하는 생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생태 체험 프로그램은 화포천 안에서 주제에 맞는 생물을 관찰하고 배우는 시간이다. 이번 달 주제는 '씨앗'이다. 여러 씨앗들의 모양을 관찰하고 씨앗마다의 특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생태 체험 프로그램은 화포천습지생태공원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단, 예약을 한 뒤 당일에 취소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생태지도사들을 낙담케 하는 행위라고 하니 지양하는 게 좋겠다.
 
화포천습지생태공원에서 봉하마을까지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아우름길 스탬프북 투어도 할 수 있다. 화포천습지생태학습관에서 스탬프북을 받은 뒤 A, B 코스를 따라 총 10개의 스탬프를 채우면 된다. 화포천습지에 사는 생물들도 만나고 스탬프를 채워 기념품도 받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프로그램이니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한 번 둘러보는 건 어떨까.

전은영 프리랜서 report@gimhaenews.co.kr


▶화포천습지생태공원 /김해시 한림면 한림로 183-300 /가는 길 : 봉황역에서 56, 58-1번 버스 탑승 후 화포천습지생태공원 정류장 하차, 도보로 30분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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