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3일 발굴조사 설명회
가야시대 기와, 삼국시대 토기 등 다수 발견
"앞으로 왕궁터 유물 추가로 나올 수도 있어"


금관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돼 왔던 김해 봉황동 유적지에서 서민 계층의 주거지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유물, 기와 등이 발견돼 이 유적지가 실제로 왕궁터였거나 지배계층의 주거지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는 23일 회현동주민센터 앞 봉황동 유적 발굴현장에서 유적 발굴조사 성과와 앞으로 조사방향에 대한 전문가 자문회의와 현장설명회를 개최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9월부터 금관가야 왕궁 유적 발굴조사를 진행해 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년여 동안 발굴에서 가야시대 기와를 포함해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토기들과 고려시대의 청자, 조선시대 자기류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유적지의 표토는 대체로 5~6개의 층위로 나타났다. 아래에서부터 삼국시대 문화층, 통일신라~삼국시대 문화층, 조선시대 문화층, 조선시대 이후 퇴적층, 현재 퇴적층으로 나뉘었다. 많은 수혈(구덩이)과 주거지로 추정되는 생활의 흔적들도 다수 발견됐다.

출토된 유물은 옹, 사발, 시루 등 생활 용기로 사용되는 토기류가 많았다. 굽다리 접시, 그릇 받침대, 차륜형 토기 등과 삼국시대 고분에서 주로 발견되는 유물도 다수 나왔다. 철촉, 동전 등 철제유물과 유리구슬 1점, 곡옥 1점 등 장신구도 확인됐다. 이외에도 사슴, 멧돼지, 소, 고래, 상어, 강치 등 동물의 뼈와 굴이 주를 이루는 패각류도 다량 출토됐다.

특히 가야시대의 기와가 발견돼 이곳이 가야의 왕궁터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해시 문화재과 관계자는 “가야시대 기와와 지배층이 사용하던 수레바퀴모양 토기 등이 나왔다. 출토된 유물을 전체적으로 볼 때 서민 계층의 주거지로는 보기 어렵다. 지배층이나 왕궁 건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유적지의 일부만 발굴조사를 벌인 상태다. 앞으로 발굴 조사를 통해 왕궁터를 나타내는 유물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발굴조사는 전체 유적지 5000㎡ 가운데 북동쪽 약 30%만 이뤄진 상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7년 유적지 남쪽 구역을, 2017~2018년 서쪽 구역, 2018년 북쪽 구역을 발굴할 예정이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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