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민, 원주민들이 지난 27일 알록달록하게 꾸민 20개국 크리스마스 트리로 환해진 로데오거리를 걷고 있다.

지난 27일 동상동 로데오거리서 진행
나라별 장식품 골라 독특한 개성 표현
지난해 대상 일본, 일주일 전부터 준비

우연히 참여 네팔인 ‘허둥지둥’ 꾸미기
축제 준비하며 각국 아픔·사정 이해
완성된 트리 앞에서 기념촬영 삼매경


동상동에 크리스마스 트리 꽃이 피었다. 노랑, 빨강, 하양 등 화려하게 피어난 트리는 한 달 앞둔 크리스마스를 미리 알렸다. 국적과 나이를 떠나 많은 이들이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일찍 찾아온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 야간 조명이 예쁘게 밝혀진 로데오거리.

지난 27일 오후 3시 30분 동상동 종로길(로데오거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해 설치한 무대에서는 트리 장식을 정리하는 손길이 바빴다. 종로길 한 가운데에는 나라별 국기가 꽂힌 크리스마스 트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라별로 무리를 지어 나타난 외국인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트리를 찾아갔다. 얼굴에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카운트다운을 하겠습니다~ 5~4~3~2~1~, 시~작!"
 
오후 4시 정각이 되자 '세계크리스마스문화축제추진위원회'(위원장 조의환) 관계자들이 종로길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김해 크리스마스 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나라별 크리스마스 트리 꾸미기 행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외국인들은 소리를 듣자마자 무대로 나가 준비된 장식품을 가져갔다. 지난해까지는 다들 장식품을 골라갔지만, 올해는 나라별로 미리 준비한 물품을 받아갔다. 네팔은 노란색, 스리랑카와 중국, 몽골은 빨간색, 일본은 하얀색 등 나라마다 선호하는 색을 추천 받아 준비한 물품이었다. 장식 꾸러미를 가져가는 외국인들의 얼굴에는 아이 같은 순수한 웃음이 활짝 피었다.
 
올해는 네팔, 스리랑카, 몽골, 태국,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등 모두 20개 나라 트리가 설치됐다. 첫해 12개국, 지난해 15개국에서 많이 늘어났다. 다른 골목에는 원주민들을 위한 대한민국 트리도 설치됐다.
 
장식품을 받은 외국인들의 손은 빨라졌다. 화려한 반짝이 모루를 길게 펴서 트리를 중심으로 둘둘 말기도 하고, 위에서부터 일자로 펴 놓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은 트리 위에 말아놓은 모루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장식을 달았다 뗐다를 반복했다. 필리핀 출신인 정제니(43) 씨는 "필리핀에서도 크리스마스는 큰 축제다. 예수가 태어난 행복한 날이다. 결혼이주여성 6명과 아이들이 함께 트리를 꾸밀 수 있어 기쁘다. 최대한 예쁘게 만들려고 이리저리 고쳐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한 일본 이주민이 일본을 상징하는 눈꽃 모형을 트리에 장식하고 있다.

하얀 장식으로 꾸며진 일본 트리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일본은 지난해 대상을 차지한 팀이다. 올해 역시 유력한 대상 후보로 손꼽힌다. 일본은 추진위에서 나누어 준 장식품 외에 직접 만들어 온 장식을 많이 사용했다. 트리 꼭대기에는 특이하게 별이 아닌 종이학 두 마리를 달았다. 트리 위에서 아래 쪽으로 작은 마름모 모양의 종이를 흰색, 연하늘색으로 번갈아가며 장식했다. 손으로 직접 오려서 만든 화려한 눈꽃도 달았다. 열심히 장식품을 달던 가와구치 가오리(51) 씨는 "일주일 전부터 일본의 새인 학, 일본 전통무늬, 눈꽃 등 일본을 나타내는 장식을 만들었다. 2년 연속 대상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올해도 기대를 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중국 팀은 트리에 대형 중국 국기를 꽂고 반짝이 장식을 둘렀다. 김해중국선교교회에서 나온 중국 팀은 서둘러 트리 장식을 마치더니, 준비해 온 기타를 치며 중국어 찬송가를 불렀다. "저는 오늘 당신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중국어 가사라 알아듣는 사람은 적었지만 사람들을 향해 두 손을 뻗고 기쁘게 노래하는 모습에서 따뜻함이 전해졌다. 찬양을 하던 중국인 양경미(26) 씨는 "트리를 꾸미는 것보다 찬양에 더 집중했다. 중국에서는 거리에서 찬양을 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마음껏 축복하고 찬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시끌벅적한 중국 트리 옆에 놓인 네팔 트리는 행사 시작 1시간이 지나서야 부랴부랴 꾸며지기 시작했다. 3~4명의 네팔 남성들은 주어진 장식품으로 열심히 트리를 장식했다. 라이 수닐(32) 씨는 "오늘 이곳에서 트리 장식 행사를 하는 줄 몰랐다. 우연히 동상동에 놀러왔다가 네팔 트리가 허전하게 서 있는 걸 보고 뒤늦게 참여하게 됐다.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우리나라 트리가 있고 함께 꾸밀 수 있어 정말 기분이 좋다"며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 러시아 어린이들이 트리 장식을 들고 웃고 있다.

러시아는 트리뿐 아니라 의상도 눈에 띄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러시아식 산타클로스인 '제드 마로즈' 분장을 했다. 산타클로스 복장과 비슷하지만 빨간색이 아니라 하늘색 의상을 입었다. 제드 마로즈 옆에는 제드 마로즈의 손녀인 스녜구라츠카도 함께 있었다. 장 알브티나(28) 씨는 하늘색 모자, 망토 등으로 스녜구라츠카 의상을 입고 종로길 일대를 누볐다.
 
러시아 어린이들은 왕관처럼 생긴 러시아 전통 머리띠를 달고 행사에 참여했다. 이들은 며칠 전부터 그린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시카와 전통악기 모양 종이 장식품을 트리에 달았다. 장식을 끝낸 뒤에는 춥지도 않은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트리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최카탸(12) 양은 "러시아가 너무 추워서 여기는 많이 안 추운 것 같다. 러시아 장식품을 달아 트리를 꾸미니 정말 크리스마스가 온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밝게 웃었다.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시리아 난민들이 트리에 꽂힌 시리아 국기에 불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주최 측은 공식 시리아 국기를 준비했지만 정부에 불만을 품고 탈출해 온 난민들은 다른 국기를 사용하길 원했다. 주최 측은 "축제를 준비하면서 여러 나라의 상황과 아픔을 알게 됐다. 시리아 국기를 바꿔 주기로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이슬람 세력이 강한 파키스탄은 기독교 행사인 크리스마스 축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함께 문화를 즐기자는 설득에 함께 트리를 꾸미기도 했다.
 

▲ 기념사진을 찍는 스리랑카 이주민들.

행사를 시작하고 1시간 30분쯤 지나자 각국의 트리는 대부분 모양을 갖췄다. 하늘이 어둑해지며 트리에 달린 작은 전구들이 켜졌다. 종로길에 설치된 일루미네이션 조명도 빛을 밝혔다.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사진을 찍었다. 자신이 꾸민 트리는 물론 다른 나라 트리 앞에서도 기념사진을 남겼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뗀 아기는 얼굴이 비치는 장식용 볼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기와 함께 행사장을 찾은 누엔티 홍안(27·베트남) 씨는 "행사를 하는 줄 모르고 동상동을 찾았다. 거리가 이렇게 예쁘게 꾸며지니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트리 꾸미기 심사위원들이 심사지를 들고 트리를 살피고 다녔다. 심사는 김해시, 동상전통시장 상인회, 축제추진위, 김해기독교연합회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맡았다. 찬찬히 트리를 살펴보던 이건재 추진위 실행위원장은 "트리에 각 나라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지, 정성이 많이 들어갔는지, 장식이 조화로운지 등을 중심으로 심사를 하고 있다. 매년 실력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행사 제한 시간인 2시간이 지나자 모두 자리를 정리했다. 주최 측은 트리를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종로길 곳곳으로 옮겨 배치하며 크리스마스 축제 첫 행사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축제추진위 김재구 사무국장은 "크리스마스 축제는 올해로 4회째를 맞는다. 참여국가가 늘어나고 참여 인원도 늘었다. 트리를 꾸미면서 이주민과 원주민이 화합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하다"고 밝혔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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