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은 났지만 버릴 수도 없는, 어디에 써야 할지 막막한 물건이었다. 아직 의무사용 기간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몸에 남아 있던 숨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철수 아버지가 자신이 만든 제품 철수를 보며 느끼는 일종의 '사용후기'다. "그나마 큰 돈 들어가는 고장이라도 없으니 다행이었어요. 그냥 어서 자라서 다른 사용자에게 넘겨주는 게 유일한 희망이에요. 설마 평생 제가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아, 아닐거에요. 의무사용 기간이 평생이라뇨." 철수 어머니가 생각하는 철수라는 제품에 대한 사용후기다.
 
이력서를 본 뒤 철수를 면접한 회사의 사용후기는 더 가혹하다. "사실 상품 설명만 봤을 땐 거의 구매를 확정하고 있었어요. 가격도 더 저렴할 수 없을 만큼 저렴했고요. 이 정도 기능에 적당하다 싶은 가격보다 훨씬 쌌죠. 그러다 실제로 보게 된 거였는데, 보지 않고 구매해 버렸으면 진심으로 후회할 뻔했어요."
 
철수를 애인용으로 구입해 사용해 본 한 여자는 "그냥 지겨운 거죠. 뭐, 고장 난 것보다 사실은 지겨운 게 더 치명적인 문제에요. 제일 나쁜 디자인은 쉽게 질리는 디자인이죠"라는 사용후기를 남기고 철수를 반품한다.
 
대한민국 20대 청년의 평균이라고 볼 수 있는 철수가 이렇게 형편없다니, 얼마나 참담한가. 도대체 철수라는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길래 이 야단들일까. 제품명 '철수'는 29세 남자이다. 출생지 서울, 173㎝ 키, 65㎏, 지방 국립대 졸. 성격은 때에 따라 다르고, 인간관계는 원만하다고 철수 스스로 생각한다. 철수를 작동하기 위해서는 하루 2천560㎉가 필요하다. 평범한 이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는 전석순 씨의 소설로 '2011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작품을 심사하기 시작한 몇 시간 만에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강유정 씨는 심사평에서 '도대체 인간은 왜 가전제품처럼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해야만 할까? 평범한 철수는 독자들에게 비범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전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라고 평했다.
 
철수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문제는 더 많아졌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이 사태를 분석한다. "제대로 된 고객센터도 없으니 불만을 접수하여 처리할 사람도 그것을 책임져야 할 사람도 없었다. 철수에 대해 생기는 불만과 피해보상 요구는 매일 쌓여만 갔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생겼다."
 
'철수 사용 설명서'는 225페이지. 그다지 두껍지 않아, 기자는 이 책을 연거푸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인간을 제품화하고 있는 이 특이한 서술 방식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두 번째 읽을 때는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왔다.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그 조건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누가 만든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스스로를 그 조건들 속에 구겨넣는 왜곡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냉정한 판단과 솔직한 심정으로 기자의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봤다. 거의 모든 사람이 바라는 외모나 몸매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른 조건을 살펴볼 엄두조차 못 내고 끝내버렸다. 업그레이드가 쉽지 않은, 처음부터 하자가 있는 제품이 아닌가. 게다가 반품도 AS도 어렵다. 나라는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참담했다.
 
이 책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좋은 학력, 근사한 외모, 화려한 스펙, 지치지 않는 열정을 요구하는 사회가 인간을 제품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설명서적 잣대로 인간을 취급하는 현실에 대해 설명서적 형식으로 대응함으로써 그 소외 요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했다"고 문학평론가 김미현 씨는 말한다.
 
철수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그 설명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29세. 앞으로 사용설명서에 나와 있지 않은 철수만의 기능을 찾아낼 눈 밝은 사용자가 나타나지 않겠는가.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온통 사람을 제품으로 보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전석순 지음/민음사/225p/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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