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야 유물인 뚜껑굽다리접시에서 형태를 차용해 건축한 종각. 사진제공=김해시


종각, 역사에서 설계 모티프 가져와
기둥·보 각각 6개, 고대 육가야 상징
화강석·목재 등 사용 차분하고 은은

한옥체험관, 전통 주거환경·공간 살려
현대적 용도와 잘 어울리게 건물 배치
건물·외부공간 조화 돌아다니는 즐거움

 

▲ 접시뚜껑과 손잡이에서 착안한 상단 부분.

제야의 종. 묵은 한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종소리로 세상을 일깨우는 행사다. 김해도 2009년 시민의 종을 설치함으로써 이 행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성동고분군 북쪽에 있는 시민의 종 종각은 작은 건축물이지만, 시의 자랑인 가야의 역사에서 디자인 모티프를 가져와 설계한 우수한 건축물이다. 서울의 보신각을 포함해 다른 지역의 종각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전통 종각의 모양을 그대로 모방해 사각형의 평면 위에 기와지붕을 덮은 형태를 하고 있다. 반면 김해의 종각은 가야의 유물인 뚜껑굽다리접시(뚜껑과 다리가 있는 높은 접시)에서 형태를 차용해 김해만의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2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시민의 종에 대한 설명과 기부자들의 명단이 있는 전시실이다. 2층은 종루다. 뚜껑굽다리접시의 접시는 지붕으로 변형되었다. 굽다리는 지붕을 지지하는 기둥과 1층 전시실로 형상화되어 있다. 지붕을 지지하는 기둥과 종의 무게를 지탱해 기둥에 전달하는 보는 6개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가야의 6개 국가를 상징한다고 한다. 접시뚜껑의 손잡이에서 유추한 지붕 위의 탑상형 구조물은 기도하는 손의 모양을 모방하여 원형 외부 판을 만들었다. 그 안에는 6가야를 의미하는 6개의 고리를 설치하였다. 종각 주변에는 공지를 확보해 조형물로서 종각의 인지성을 확보하고 있다. 제야의 종 행사 때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건축물에 사용한 재료는 화강석, 목재, 은은한 색상의 금속판이다. 차분하고도 전통적인 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시실 출입구와 창문의 틀을 번쩍이는 스테인리스스틸로 처리한 것은 전체적인 느낌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 부분만 제외하면, 가야의 유물에서 이미지를 도출해 현대적으로 형태를 형성한 우수한 건축물이다.

▲ 김해한옥체험관은 전통 주거환경과 조형공간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체험관 전경. 사진제공=김해시

지금까지 소개한 국립김해박물관, 대성동고분박물관, 시민의 종 종각이 역사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현대적인 수법으로 지은 건물이라면 김해한옥체험관은 전통한옥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전통적 주거환경과 조형공간을 현대에 재현해 전통 주거문화와 생활풍습을 체험하고 전통문화를 전수받을 수 있는 교육의 장이자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했다.
 
다른 예술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역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전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현대에 활용할 것이냐 하는 것은 건축분야에서도 논란이 많은 어려운 문제다. 전통한옥을 모양 그대로 현대에 건축하는 게 과연 맞는 방식인가 하는 것이 그 중 하나다. 한옥은 전통을 표현하지만, 현재의 건축산업 방식이나 생활양식과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이 건축물은 전통한옥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현대적인 용도와 잘 어울리도록 설계한 우수한 건축물이다.
 
유교문화와 신분제도의 영향으로 조선시대 상류층의 주택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 사당의 4부분으로 크게 구분되어 있었다. 행랑채는 대문간에 붙어 있으면서 마구간, 하인들의 방,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주로 거처하면서 외부의 손님들을 접대하는 생활 장소이다. 안쪽에 위치한 안채는 주로 여성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사당은 조상을 모시는 건물이다.
 
김해한옥체험관은 이러한 전통주택의 배치방식을 차용해 현대적 용도와 어울리도록 설계했다. 가장 바깥에 붙어 있는 바깥채와 행랑채는 외부인들의 접근이 쉬워야 하는 전통식당과 전통교육관으로 만들었다. 중문을 통해 접근해야 하는 사랑채, 안채, 별채는 다소 조용한 분위기가 필요한 한옥체험 숙박시설로 배치하였다.

▲ 한옥체험관 안마당과 별채 사이(왼쪽). 안채와 아래채 사이에서 바라본 마당.사진제공=조명환 씨

여러 건물들 앞에는 각각의 마당이 있다 바깥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바깥마당, 사랑마당, 안마당이다. 이 마당들은 채와 담장으로 둘러싸여 폐쇄적인 외부공간이면서 각각의 특성들을 나타내고 있다. 중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체 건물이 여러 개의 채로 구성되어 있고, 외부공간도 채와 담장으로 나뉘어 있어 전체 건물과 마당들을 한꺼번에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건물 사용자가 돌아다니면서 건물과 외부공간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외부에서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먼저 가장 큰 바깥마당이 나온다. 바깥채와 행랑채로 둘러싸인 이곳은 조금 건조한 느낌을 주지만, 개방적이고 활동적인 공간이다. 행랑채의 중문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가면 좀 더 작고 아늑한 사랑마당이 있다. 그 담 너머 안쪽에 안마당이 위치하고 있다. 안마당의 북쪽에 있는 낮은 담장은 안채와 별채의 외부공간 영역을 서로 구분하면서도 시각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외부공간을 서로 분리시키는 담장도 그 높이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공간들은 건물들의 전면, 후면 그리고 건물 사이에 형성되어 있으면서 넓고 좁음, 높고 낮음, 밝고 어두움 등의 대조를 통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변화와 기대를 통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채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지붕 외곽선을 볼 수 있다.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짙은 색 외곽선이 서로 중첩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된 모양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채, 안채 등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배치하고 있다. 대청이 현대 주택의 거실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대청은 전체를 창문으로 구성해 겨울에 창문을 닫으면 실내공간이 되지만, 여름에 전체 창을 들어 올리면 시원한 외부공간이 될 수 있도록 지었다. 에어컨이 없던 시대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방식이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과 조상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김해한옥체험관은 전통의 활용방식에 대한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현대적 용도와 잘 어울리게 전통한옥을 재현한 우수한 건축물이다.
 




고인석
인제대 건축학과 교수

 


▶시민의 종 종각 / 대성동 465-2, 이양원건축사사무소 이양원 설계, 2009년 준공, 연면적 188㎡
▶김해한옥체험관 / 봉황동 425-13,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김상식, 김용미 설계, 2005년 준공, 연면적 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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