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꾸사꾸의 자랑인 데미그라스소스.
'경화춘·현대식당·강줄기'. 1970~80년대를 김해에서 보낸 분이라면 이 식당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세 곳은 원도심인 동상동과 서상동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었다. 도시의 확장으로 원도심 상권이 쇠퇴함에 따라 이들 식당 역시 비슷한 운명을 겪는다. 김해의 양대 '중국집'이었던 경화춘과 현대식당은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 다행스럽게도 경화춘은 창업자의 손자가 만리향이라는 만두전문점을 열어 그 명맥을 잇고 있다(김해뉴스 14호).

이에 비해 강줄기의 사정은 좀 달랐다. 강줄기→꼬레똔까스→사꾸사꾸로 이름이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삼계동과 장유면에 분점까지 냈다. 겉으로 봐서는 별탈 없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는 '부모님이 이뤄 놓은 유산을 바탕으로 프랜차이즈를 통한 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구나' 싶었다. 꽤 오랜 시간 취재 여부를 두고 고민했다. 결국에는 김해의 원도심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식당이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섭외 단계에서부터 심상찮은 느낌을 받았다. 대표의 누나라는 분과 연결이 됐고 그분과 취재 일정을 조율했다. 통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메시지가 왔다.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매일 노력하는 동생인데, 무엇보다 자신의 요리에 누군가 관심을 보여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더군요. 오랜만에 동생의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 글 남깁니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동생을 아끼는 누나의 애틋함, 취재에 대한 의례적인 감사 등과는 사뭇 다른 진정성이 느껴졌다. 갑자기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 데미그라소스와 환상의 궁합 '데미그라스돈가스'.
사꾸사꾸는 입구부터가 독특하다. 간판에는 강줄기, 꼬래똔까스, 사꾸사꾸라는 상호가 뒤섞여 있다. 우선 이 간판의 내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강줄기는 김태성(61)·윤두이(63)씨 부부가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 사용했던 상호다. 꼬래똔까스는 장남인 김상률(36)씨가 처음 가게를 맡으면서부터 사용했다. 이때만 해도 강줄기의 영향이 컸다. 2006년부터는 사꾸사꾸로 상호를 바꾸고 일본식 돈가스전문점으로 거듭났다. 일본어인 사꾸사꾸(さくさく)는 과일이나 채소 등을 씹을 때 나는 소리(사각사각)를 의미한다. 따라서 김해 시민들은 세대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이 음식점을 기억할 것이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다 우연히 가게에 들른 김 대표의 어머니 윤두이 씨와 마주쳤다. 그녀에게 강줄기 시절 이야기를 청했다. 부부는 부산 연산동에서 처음 양분식집을 시작했다. 그러다 1976년 남편의 고향인 김해에 정착했다. 김해의 유일한 양분식집이었던 강줄기는 순식간에 청춘남녀의 아지트가 되었다. DJ박스를 두고 신청 음악까지 틀어 주었고, 한때는 DJ만 6명일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더러는 '눈이 맞아' 연애를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단골인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김해에서 강줄기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잘나갔지만, 이곳 역시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역 상권까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힘에 부친 부부는 가게를 정리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때마침 군 제대 후 복학을 준비하던 장남이 나섰다. 부부는 잠깐 동안이라 생각하고 아들에게 가게를 맡겼다. 그 잠깐이 13년이 흘렀다. 아들은 복학을 포기했다. 경제학이던 전공을 바꿔 인제대 건축학과에 복학 시험을 쳤지만, 하필이면 면접 날 가게 일이 바빠 기회를 잃었다. 큰딸은 일본 유학까지 다녀오고 작은아들은 공인회계사가 됐건만,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큰 아들을 보는 어머니 눈에서는 회한이 묻어났다. 누나의 진정성과 어머니의 안쓰러움. 그 주인공인 김 대표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해산물이 가득한 '해산물야끼우동'.
그렇게 세월을 더듬어 가는 동안 음식이 나왔다. 일본식 돈가스의 원형은 돼지고기 등심을 사용한 '로스가스'다. 이 로스가스의 완성도가 곧 그 음식점의 능력을 대변한다. 우선은 빵가루를 입힌 튀김 옷과 돼지 등심의 조화가 관건이다. 고기는 육즙이 살아 있어야 하고 부드럽게 씹혀야 한다. 돼지 특유의 풍미는 살리되 잡내가 없어야 한다. 빵가루에 수분이 과하면 기름을 많이 흡수하고, 반대로 너무 적으면 겉만 타고 딱딱해지기 일쑤다. 다음은 돈가스를 찍어먹는 소스다. 소스는 자연스러운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일을 사용해 오랜 시간 뭉근하게 조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배추와 드레싱을 본다. 양배추는 최대한 가늘게 썰되, 마르지 않고 촉촉해야 아삭아삭한 느낌이 산다. 드레싱은 양배추의 맛을 돋워주는 수준에서 머무르는게 적당하다. 사꾸사꾸의 로스가스는 이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맛이야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완성도만 놓고 보자면 국내 유수의 돈가스전문점과 당당히 겨뤄 볼만한 수준이다.
 
'골든블루'라 이름 붙은 치즈돈가스에는 다진 실파가 들어가 제법 풍부한 맛을 낸다. 모짜렐라치즈와 파의 조화가 이채롭다. '해산물야끼우동'에는 바지락·홍합·문어·쭈꾸미·새우 등의 해산물이 넉넉한데다 선도까지 나무랄데 없다. 정작 놀라운 것은 사용된 소스다. 보통은 시판되는 야끼소바소스를 사용하거나 그 비슷한 맛을 내기 마련인데, 전혀 다른 맛이다. 고추기름과 굴소스가 들어가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그 외에도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알 길이 없다. 좌우지간 한국인의 입맛에 안성맞춤이다.
 
▲ 치즈의 맛이 부드러운 치즈돈가스 '골든블루'.
드디어 김상률 대표와 자리를 같이 했다. 노련한 사업가 쯤으로 생각했던 그의 첫인상은 뜻밖이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다른 궁금증을 생략하고 음식 얘기부터 꺼냈다. 순식간에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 말은 청산유수다. 이 사람 영락없는 '요리사'다.
 
놀랍게도 그는 요리사로서의 정규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호텔 양식당에 근무하던 지인에게 유일하게 배운 것이 서양식 소스의 기본인 루(roux)였다. 버터와 밀가루를 볶아서 만드는 루는 스프나 소스의 농도와 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돼지뼈과 소뼈를 우린 육수와 채소·과일·향신료 등 20가지가 넘는 재료를 사용해 그만의 데미그라스소스를 완성했다. 그 소스를 얹은 '데미그라스돈가스'가 히트를 쳤다. 이때부터 요리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데미그라스돈가스는 지금도 사꾸사꾸의 인기 메뉴다.
 
그 맛이 궁금해 청했다. 굉장히 풍부하면서도 깔끔한 맛이기는 한데 뭔가 허전하다. 허나 그 허전함은 돈가스와 함께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됐다. 소스란 그런 것이다. 부족해야 채워진다. 채워질 공간이 없으면 소스와 고기는 따로 논다. 김 대표는 이 원리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절묘하다 싶을 정도로 비율을 찾아냈다. 타고난 능력일까 노력의 결과일까?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하자.
 
▲ 사꾸사꾸를 함께 이어가고 있는 김상률(왼쪽 첫번째)·이선(왼쪽 세번째) 씨 부부와 직원들.
강줄기의 이름을 꼬래똔까스로 바꿔 운영하던 그는 일본식 돈가스의 유행을 감지한다. 그래서 2005년 누나가 유학하고 있던 일본 오사카로 간다. 6박7일 동안 오로지 먹는데만 7백만원을 썼다. 유명 돈가스전문점을 죄다 다녔다. 관련 책을 사모으고 그 후로도 몇 번을 다닌 끝에 2006년 사꾸사꾸로 상호를 바꾸기에 이른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온전히 벗어난 것이다. 대여섯가지로 시작했던 메뉴는 30여 개로 늘어났다. 그 모든 것을 혼자 개발했다.
 
인터뷰 중에 그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요리를 몰라서 그런지 저는 조미료 쓰는 법을 모릅니다." 이 고지식한 요리사는 돈가스소스·야채드레싱·치킨바비큐소스·야끼소스·데미그라스소스 등 무려 28가지에 이르는 소스를 직접 만든다. 소스를 한번이라도 만들어 본 사람은 안다. 이것이 얼마나 고되고 지루한 과정인지를…. 그래서 그는 일주일에 두 번은 아침 8시에 퇴근한다. 결국 그의 음식은 천부적인 재능이라기보다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고기와 빵가루에 대한 집착 또한 만만찮다. 돼지고기의 경우 주촌면에 있는 부경축산물공판장에서 받아 쓴다. 품질은 물론이거니와 고기에 살얼음이 살짝 언 상태를 고집한다. 그렇게 받은 고기는 영상 2도~영하 2도로 유지되는 전용 냉장고에서 숙성시킨다. 숙성된 고기는 주문을 받고서야 자르고, 밑간 하고, 두드린다. 이 모든 것이 육즙이 빠져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래서 사꾸사꾸에서는 주문 후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린다.
 
유명 돈가스전문점이 고기 다음으로 신경쓰는 식재료가 빵가루다. 이 빵가루는 돈가스의 식감과 첫맛을 좌우한다. 김 대표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품질 좋은 빵가루를 고집한다. 행여나 질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대체 얼마나 더 올려 드릴까요?"라며 다그칠 정도다.
 
흔히들 수성은 창업에 비해 손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음식의 맛이란 조금만 소홀해도 변하고, 고객의 입맛은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선대가 이뤄 놓은 성과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 사꾸사꾸 간판과 외부 전경.
부담감 또한 만만찮다. 때문에 수성은 창업 못지 않게 어렵다. 김 대표는 "아버님께 인정받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 왔다"고 했다. 아들이 만든 돈가스 맛이 어떠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아이고~ 맛있지요. 말할 필요가 없지요"라고 추켜 세웠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행여 아들에게 부담이 될까 일절 가게 출입을 삼가신다. 대신 운동을 핑계로 아침 일찍 가게에 나와 청소를 하고 가신다.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과 며느리는 13년째 변함없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 비록 '강줄기'라는 상호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 가족의 강줄기는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고객의 반응이다. 사꾸사꾸는 김해의 음식점들 가운데 가장 많은 블로거들이 추천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 포털 사이트에서건 '사꾸사꾸'를 검색하면, 사꾸사꾸의 '오늘'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위치 : 김해시 서상동 82-17
▶연락처 : 055)328-2220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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