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개 분노의 촛불이 타오르는 혼란을 틈 타 중국은 한국의 사드배치를 빌미로 대국답지 않은 옹졸한 통상 규제의 벽을 높이고 있다. LG와 삼성의 배터리 모범규준 4차 인증 탈락, 한국행 중국 단체관광객 전년 대비 20% 축소 지시, 한국 연예인 중국 내 공연 금지, 한류 콘텐츠 중국 내 방영 전면 금지, 한국산 폴리실리콘 반덤핑관세 재조사, 식품·화장품의 통관거부와 까다로운 통관 절차, 사드 부지 제공 롯데그룹 중국 150여 개 전 계열사 세무·소방·안전·위생 조사 등이다.
 
게다가 중국 관변학자들을 동원해 '롯데의 전방위조사는 외국인 기업에 대한 합법적이고 통상적인 조사로 사드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속보이는 진화 작업까지 벌이고 있다. 설마 하던 우리 정부도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최순실 사태로 국정공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의 통상 보복조치에 속수무책이다.
 
비관세장벽에 대비한 통상외교가 절실한 요즈음 고려 초 재상 서희의 뛰어난 담판외교가 그립다. 우리 역사상 가장 빼어난 외교가인 서희는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적장 소손녕과 논리적 언변으로 담판을 벌였다.
 
상대의 속셈을 치밀하게 간파하고 싸우지 않고도 거란 대군을 물러나게 함은 물론 고구려 계승론을 펼쳐 여진족이 점령하던 발해의 고토인 청천강 이북 강동 6주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는 송나라와 거란 사이에서 적절한 세력 균형을 이루기까지 했다.
 
요사이 미국과 중국의 고래싸움에서 등 터지는 한국의 형국은 고려 초기와 자못 흡사하다. 지난해 미국은 중국 주도의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에 한국의 가입을 못 마땅해 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세계 50여 개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가입함으로써 미국의 멋쩍은 훼방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중국은 한국 내 미국의 사드배치를 중국 군사시설 탐지 이유로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곤궁한 입장에 처했을 때 우리 외교부 장관은 "미국과 중국이 우리에게 서로 러브콜을 하고 있는데 이는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아니고 오히려 축복이다"라고 했다. 외교부 장관의 이러한 안이한 상황 인식은 한때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기도 했다. 국방부 장관 역시 "사드의 한국 배치는 우리 정부가 미국에 요청한 바도 없고 미국과 협의한 바도 없으며 아직 결정한 바도 없다"는 모호한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막나가던 북한은 지난 1월 4차 핵실험을 했고 6월에는 중장거리 무수단 미사일 6차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경북 성주를 사드 배치 최적 지역으로 밀실 결정했고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면서 사과의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갈팡질팡하는 우리 정부의 아마추어적 태도를 고려 초 서희의 노련한 실리 외교에 적용해 보자. 한국의 AIIB 가입에 미국의 주제넘은 간섭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함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국내 사드배치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있었다. 지난해 9월 미국의 눈총과 일본의 시기를 뒤로 하고 박 대통령은 중국의 전승절 70주년에 참석하여 시진핑 주석과 유일하게 단독 오찬회동까지 갖는 밀월 관계를 유지했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확실하고도 명확한 단언을 정상회담뿐 아니라 언론과 여론을 활용, 당당하게 주장했으면 어땠을까. '북한의 핵도발 억지력은 북한 경제가 90% 이상 의존하는 중국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만약 중국이 북한 도발에 대해 단호하게 응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한반도 사드배치 추진을 절대 원망하지 말라'고 말이다.       
 
중국의 러브콜에 한국이 배신의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하고 이제 사드배치를 가장 반대하는 자는 시진핑 주석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의 눈치를 살피고 어떻게든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미숙한 외교가 엄청난 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중국은 어수선한 한국 내 사태와 사드배치 철회 여론의 작은 불씨에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있다. 최종 사드배치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날 중국의 치졸한 통상보복 수위가 어디까지 될지 두렵기만 하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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