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가 어미소 그리워한다는 ‘고모’
90년대 중반부터 예쁜 이름 빛 잃어

길 양 옆에서부터 산 중턱까지 공장
저렴한 부지 찾아온 영세업체 즐비

하루종일 울리는 기계음에 주민 고통
화학약품 사용으로 숨 쉬기도 힘들어
열악한 도로 상황 아찔한 장면 연발

 

진례면 고모리 고모마을 주민 이 모(70) 씨가 대뜸 분통을 터트렸다. "공장 기계음이 온종일 마을 전체에 '쿵쿵' 울려. 기자 양반도 들리지? 김해시에 신고를 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만 해. 근데 온 동네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정말 문제가 없는 거야?" 실제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들렸던 공장 기계음이 해가 지도록 계속됐다.
 
고모리에서는 자연마을보다 공장을 찾기가 더 쉽다. 왕복 4차선 지방도 1042호선을 지나 고모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오는 길 양옆에서부터 산 중턱에 이르기까지 공장이 빼곡히 들어찼다. 고모리는 진례면 중에서도 공장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진례면 전체 공장 수 789곳 중 28%(228곳)가 고모리에 집중돼 있다. 자가 공장이 160여 곳, 임대공장이 60곳에 이른다.
 
고모리는 고모마을, 상우마을, 고령마을 등에 274가구 47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개별공장이 포함된 숫자다. 고모마을이란 지명은  송아지가 어미 소를 그리워하며 뒤돌아보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김해지리지>는 전하고 있다. 아름다운 지명의 고모마을은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옛 모습을 점차 상실하기 시작했다. 고모마을 일대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거의 다 논과 밭이었다.
 
마을 중심에 위치한 고모소류지는 농사를 짓는 마을주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하지만 비옥한 토지에 공장이 자꾸 들어섰고, 농지가 줄어들면서 물을 끌어다 쓰는 곳도 차츰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소류지의 물이 고이면서 녹조가 생겨났다. 지금은 소류지의 물을 끌어다 쓰는 사람이 전혀 없다. 이 모(70) 씨는 "어릴 적에는 소류지에서 친구들과 멱을 감으며 놀았다. 소류지는 이제 추억의 공간일 뿐이다"라며 씁쓸해했다.
 
고모마을은 마을회관 바로 앞에서부터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슬레이트 지붕에 흙으로 쌓은 빈 집들이 눈에 띄었다. 1층짜리 낮은 집 뒤로 5층 높이의 원룸이 들어서 있었다. 마을 곳곳에서 3~5층 높이의 원룸과 빌라가 높게 지어졌거나 공사 중이었다. 마을 안에 들어선 원룸과 빌라는 공장들이 바꿔놓은 마을 풍경이었다.
 
공장 수에 비례해 외국인 근로자 수가 많이 늘었고, 이 때문에 원룸과 빌라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고모마을 주민 이 모(60·여) 씨는 "베트남, 중국 출신 외국인 근로자가 많다. 주민들이 집터를 팔고 나간 자리에 빈집을 허물고 원룸, 빌라가 건설됐다"고 전했다. 고모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CCTV 설치'를 알리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있는 게 보였다. 외국인 근로자 등 외지인들이 늘면서 치안에 불안을 느낀 주민들이 마을에 CCTV를 설치한 것이었다. 이 씨는 "치안에 대한 불안도 있지만 우리나라 쓰레기 분리수거 문화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쓰레기를 마구 골목에 버려놓는 경우가 많아 이를 예방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모마을의 한 주택은 공장과 담을 마주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 A(60) 씨는 "김해시를 찾아가 주택 바로 옆에 공장을 허가해 준 데 대해 항의했다. 돌아온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뿐이었다. 사람 사는 집 바로 옆에 공장을 허가해 준 처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는 공장 소음이고 뭐고 체념한 채 살아간다"고 하소연했다.

▲ 진례면 고모리 여러 마을의 주택들 바로 뒷편에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주민들은 '법 타령'만 하며 허가를 내준 김해시를 원망하고 있다.

고모마을에서 약 1km 떨어진 상우마을의 경우 마을회관에서부터 무릉산 중턱까지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마을 앞 왕복 2차선 도로에서는 수시로 대형 화물트럭이 오갔다. 보행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보조기구에 의지한 한 어르신이 수시로 뒤를 살피며 아슬아슬하게 도로 위를 걸어갔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우마을은 공기 좋고 물 좋은 평화로운 시골마을이었다. 토양이 비옥해 작물의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였다.
 
마을 주민 강 모(53·여) 씨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마을 안에 있는 공장에서 쓰는 화학약품 때문에 마을 공기가 너무 좋지 않다. 가끔은 숨을 쉬기조차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저 공장만은 설립되지 않길 바랐다"며 무릉산 중턱에 들어선 공장을 가리켰다. 강 씨는 "주택 바로 위에 공장이 들어서는데 법 타령만 하며 허가를 내주는 김해시가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산 중턱까지 공장이 들어섰지만 도로 사정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마을 안길은 지방도로, 도시계획도로가 아닌 비 법정도로여서 보행로가 하나도 없었다. 아찔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했다.
 
마을 주민 박 모(71) 씨는 "도로 확장이 안 된 상태에서 대형 화물차들이 오가니 도로를 걸어 다니기가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김해시 건설과 관계자는 "고모리 일대의 비 법정도로는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라고 만든 도로다. 도로 여건이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공장이 들어서고 대형차량들이 오간다고 해서 애초의 도로 목적과 달리 보행로를 확장한다는 건 예산 문제 때문에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고모마을, 상우마을 일대의 공장들은 주로 20인 이하 영세업체들이다. 조선기자재, 금속가공업체 등이 대부분이다. B업체 관계자는 "고모리에는 대부분 두꺼운 철판을 휘어 용접을 해 관을 만드는 업체, 자동차 부품업체, 금속 가공업체 등이 많다. 대부분 영세업체들이라서 부지가 저렴한 곳을 찾다보니 산 3부 능선까지 공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개별공장들이 워낙 많이 모이다보니 마치 산업단지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진례면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김해 지역은 전반적으로 개발이 완료된 상황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장 부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산 중턱까지 공장 부지를 찾아 올라간다. 토목공사가 완료된 신규 공장부지의 경우 3.3㎡ 120만 원~130만 원에 거래된다"고 말했다.
 
고모리 일대의 공장부지 매매, 임대 가격은 5톤 화물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D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공장 매매가는 5톤 화물차량 진입 여부에 따라 다르다. 진입할 수 없으면 3.3㎡당 160~180만 원, 진입이 가능하면 180~200만 원에 거래된다"면서 "5톤 화물차 진입이 가능한 공장의 월 임대료는 330㎡당 평균 170~180만 원이다. 공장 매매가격은 진례면, 한림면 등 김해 시외지역 거래가와 비슷하다. 경기 악화 탓에 매매 는 적은 반면, 임대 거래는 활발하다"고 전했다.
 
무릉산 중턱에 오르니 김해테크노밸리산단 공사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김해테크노밸리산단은 진례면 고모리, 담안리 일대 164만 1000㎡ 부지에 조성되고 있다. 기계, 통신, 전자부품, 의료·정밀·광학기기 제조업 등의 200여 업체가 입주할 예정이다. B 산업단지 관계자는 "고모리는 인근에 남해고속도로 진례 IC가 있어 교통 입지가 좋다. 게다가 개발 가능한 땅들이 많이 있다. 김해테크노밸리가 조성되면서 진례·한림면 일대의 공장들이 전체 산업단지의 50%정도 규모로 이주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고 있다. 고모마을 주민 이 모(71) 씨는 "고모리 일대의 공장 중 다수가 김해테크노밸리로 이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을 인근의 공장들이 주인 없는 빈 공장으로 전락해 마을 분위기가 더 삭막해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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