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 시인·동아대 명예교수.

몇 년 전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옛 제자의 방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수인사가 오가고 나자 그는 내가 사는 마을의 특정 지번의 위치를 물어왔습니다, 그 땅은 경매를 거듭한 물건이라 아주 싸게 살 수 있었는데 위치를 찾지 못해 옛 은사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남의 땅 지번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경매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는데…. 그와는 이내 헤어졌고 이후로는 다시 연락이 끊긴 상태에 있습니다.
 
오랫동안 벗으로 만나는 이 중에 경매로 산 땅이 자랑인 이가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군데군데 경매를 잡아놓아 이따금 개발보상비를 받기도 하고, 비싼 값에 파는 행운도 얻는답니다. 뿐만 아니라 인기 아파트 분양 때 남보다 먼저 줄을 서서 편법으로 사고팔면서 자식에게 고액 과외를 시켜 키웠습니다. 그의 논리는 완강합니다. '악착같이 버는 것이 사람구실하는 길이며 법망에 걸리지 않고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이 준법이다.'
 
<장자> '외물편(外物編)'에 있는 땅 투기에 회초리가 될 만한 가르침 하나.
 
'쓸모없는 것을 알아야 쓸모 있는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땅을 예로 들면 땅이란 분명히 넓고 큰 것이지만 사람이 서기 위해서는 발붙일 데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땅에 발을 딛고 그 주위를 전부 낭떠러지가 되도록 파내려 가 보라. 그렇게 되면 그대가 서 있는 그 땅인들 무슨 소용에 닿겠는가?'
 
정작 내게 필요한 땅은 얼마 되지 않을 뿐더러, 그나마 내 것 네 것 없이 연결될 때라야 제 구실을 하는 것이 땅입니다. 지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지상에서 살아갈 권리를 가집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땅과 집은 남의 땅, 집과 더불어 있음으로 존재가 가능하게 되며 더불어 가치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지상의 집이며 땅은 저마다의 권리 밖에 있지 않습니다. 지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에겐 지상에 발붙이고 살 권리가 있고, 모든 생명에겐 최소한의 안식을 위한 거처가 필요한 것입니다.
 
땅 투기, 집 투기란 내 것을 키우는 일이기 전에 남의 것을 가로채는 짓입니다. 눈에 불을 켜고 경매 물건을 찾아다니고 편법 분양에 혈안이 되는 짓거리, 남의 피를 빨고 다니는 흡혈행위에 다름없습니다. 저물어가는 병신년, 우리 마음을 참담하게 한 청와대의 국정 농단, 교육 농단, 문화 농단과 다름없는 파렴치라 할 것입니다.
 
일찍이 토머스 모어의 명저 <유토피아>는 '유토피아란 사유재산 폐지, 재화의 평등한 배분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역설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회주의에 300년 이상 앞서는 각성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재화로 평가되는 곳에서는 진정한 정의와 번영이 있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세상의 가장 좋은 것들이 결국은 가장 못된 소수의 사람들의 수중에 놓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인간이란 남의 권세와 축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지고한 가치이기에 자유와 행복을 누릴 기본 권리가 있고 자유와 행복을 공유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유토피아의 주민이 되려는 사람들은 물질 축적의 재주가 아니라 자유와 행복의 지성을 쌓아야 할 뿐 아니라, '거짓 쾌락'을 경계하도록 배워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오늘의 인간사회는 일견 풍요롭고 자유스러워진 듯하지만 유토피아와의 거리는 멀어지기만 하고 있습니다. 일상이 배반이요 부정이며 편법인 사회, 끝없이 최적자를 향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투쟁, 투기, 탈법, 편법, 가로채기 등을 가르치면서 모두가 거짓 욕망에 목을 매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행복이란 근본을 깨닫고 실천하는 바탕 위에서라야 이루어질 것입니다. 땅이나 집 같은 것은 남도 나와 마찬가지로 누려야할 기본권이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쏘아올린 전 국민의 촛불이 대통령 탄핵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나부터 거짓 쾌락을 버린다면 조그마한 땅, 작은 집에서나마 평안과 안심을 얻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땅은 법 이전에 모든 생명의 공동 자산입니다. 사회에서의 부동산 투자는 투자가 아니라 강탈입니다. 필요한 만큼 배려 받자면 필요한 만큼 남에게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탄핵, 부동산 투기. 이것이 어둠의 세력을 몰아낸 병신년 수백만 촛불의 의미를 실천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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