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정이 판화가.

생림면 도요마을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도서출판 도요'가 지난 연말 부산 기장군 일광면으로 이사를 갔다. 도서출판 도요는 연극인 이윤택이 평소 수지타산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책을 마음껏 내는 출판사 하나를 가졌으면 하던 터에, 2009년 도요마을에 둥지를 틀면서 차린 출판사다. 
 
대개의 지역출판사들은 영세한 처지라서 비용 회수가 불투명한 기획출판은 쉬 엄두를 못 낸다. 자연히 출판비용을 저자가 부담하는 출판대행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윤택이 내심 방점을 두고 있던 인문학관련 서적은 잘 팔리지도 않는다. 서점의 진열대에서 조차 홀대를 받는 신세다. 그러니 중앙출판사고 지역출판사고 간에 다 이 분야에 대한 출판을 꺼리는 형편이다.
 
이윤택이 이끄는 극단은 70~80명 단원들의 공동체로 운영된다. 운영비용이 엄청 많이 든다. 그런 형편이니 연극 말고 다른 데 쏟아 부을 여윳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이것저것 재고 자시고를 못하는 성정인 그는 책을 내서 경비의 일부라도 들어오면 좋고 안 들어오면 도리 없고 하는 식이었다. 그런 어느 날 소설가이자 치과의사인 그의 친구가 나타나 "이 감독은 하고 싶은 일 못하면 병나잖아" 하면서 부인 몰래 꼬불쳐 놓은 비자금을 내놓았다. 거금이었다.
 
뜻밖으로 돈 문제가 해결되자 그담부터는 가열찬 열정 있겠다, 출판사 차리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감독과 형제처럼 지내는 시인 최영철과 소설가 조명숙 부부에게 반 강제로 편집을 떠맡기고 도요로 이사까지 하도록 했다.
 
그렇게 변방의 강변마을 도요에서 태동한 '도서출판 도요'는 그동안 무척 많은 일을 열정적으로 해냈다. 문학무크지 10권, 인문학관련서적 20여 권을 펴냈고, 저자와의 대화에다 작품낭송과 연극공연을 함께 하는 북콘서트를 85회 진행했다. 집필자들을 위한 전국 단위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랄까? 그동안 해온 일들 모두가 신나는 일이긴 하였으나 수지가 안 맞았다. 군자금이 달랑달랑했다. 소설가 친구가 눈치를 채고 걱정하지 말라며 또 거금을 내놓아 한시름 놓긴 했으나 책을 내면 돈을 까먹기만 하고 수입이 없기는 여전했다. 그래서 어떡하든 아껴야 한다는 마음에 최영철 본인의 책은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하기까지 했다. 좀 다른 얘기지만, 그 중의 한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는 부산시의 '원북원 부산' 대상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상도서가 되면 부산시는 출판문화지원책의 일환으로 해당도서 1만 부를 구입하는 등 각종 지원책을 가동한다. 김해도 유사한 제도가 있는 걸로 안다. 그런데 김해에서는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였다. 예컨대, 좋은 작물을 수확하자면 땅심 돋우기를 하고, 문화도 같은 이치일 터인데 아쉬운 마음이 안 들 리 없다.
 
여하튼 '도서출판 도요'의 이사 결정이 나고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최영철은 이렇게 말했다. "도요에서 낸 책의 필자 수준이면 연간 50, 60명 이상에 달하는 부산문화재단의 창작지원금 선정 대상에 충분히 들 수 있는 분들이지요. 책을 계속 내자면 주소를 옮겨서라도 그래야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출판사 이름은 '도요' 그대로고 본가 격인 '도요림'도 그대로 있으니 대처로 나간 자식쯤으로 생각하세요." 그에 우리는 "돈 많이 벌어서 다시 오면 되지 뭐!"라며 술잔을 들고 함께 소리 한번 질렀다 "작은 출판사 하나 떠나는 게 대순가? 대수다!"라고.
 
지난 토요일 나는 그냥 61번 버스를 타고 도요로 갔다. 종점에서 내리면서 기사아저씨에게 나가는 시간을 물어보니 2시 반이라고 했다.
 
"하루 예닐곱 번 들어오는 버스에서 아저씨 혼자 내린다./ 어디 갔다 오는교 물으니 그냥 시내까지 갔다 왔단다./ 그냥 하는 거 좋다 고갯마루까지 가보는 거/ 누가 오나 안 오나 살피는 거 말고 먹은 거 소화시키는 거 말고/ 강물이 좀 불었나 건너 마을 소들은 잘 있나 궁금한 거 말고/ 그냥 나갔다오는 거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건들건들/ 한나절 더 걸리든 말든 그냥 나갔다 오는 거/ 아저씨는 그냥 나갔다 온 게 기분 좋은지/ 휘파람 불며 그냥 집으로 가고/ 오랜만에 손님을 종점까지 태우고 온 버스는/ 쪼그리고 앉아 맛있게 담배 피우고 있다/ 그냥 한번 들어와 봤다는 듯/ 바퀴들은 기지개도 켜지 않고 빈차로 출발했다/ 어디서 왔는지 지아비가 누군지 알 수없는 새끼들/ 일곱이나 낳은 발발이 암캐와/ 고향 같은 건 곧 까먹고 말 아이 둘을 대처로 떠나보낸 나는/ 멀어져가는 버스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먼지를 덮어쓴 채 한참" (최영철의 시 '버스는 두 시 반에 떠났다-도요에서')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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