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 엽사인 백남전 씨가 멧돼지를 향해 총을 조준하고 있다.


해마다 유해야생동물 피해 건수 급증
피해방지단 포획 건수로 덩달아 증가

‘멧견’ 4마리 몰고 사냥용 엽총 동원
위치추적장치, 무전기도 뒤쫓기 이용

‘길 아닌 길’ 만들어가며 힘들게 전진
10m 눈앞서 실탄 쐈지만 아쉽게 놓쳐



"멧돼지가 나타났어요!! 오늘 새벽 6시쯤 산에 올라가려는데 등산로 옆에 세워둔 자동차 뒤편에 새끼 멧돼지 7마리 정도가 있더라구요. 너무 놀라 돌아서 내려왔어요. 얼른 와서 멧돼지 좀 잡아주세요."
 
지난 13일 새벽에 경남수렵인참여연대에 멧돼지 포획 요청이 들어왔다. 주민들이 김해시에 멧돼지 출몰 신고를 하면 시가 유해야생동물 피해 방지단에 연락해 포획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날은 수렵인들을 잘 아는 주민들이 직접 수렵단체에 연락을 한 것이었다.
 
시는 농가의 농작물을 망치고 민가에 내려와 주민들을 위협하는 야생동물로 인한 주민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11년부터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을 운영하고 있다. 시에 따르면 유해야생동물 피해 민원은 2014년 285건, 2015년 481건, 2016년 495건 등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시의 요청에 따라 피해 방지단은 2015년 89마리, 2016년 155마리의 멧돼지를 포획했다. 특히 시는 올해부터 피해방지단 소속 엽사들의 적극적인 포획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멧돼지 마리당 5만 원, 고라니 마리당 2만 원의 포획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시에서 공식적으로 포획을 허용한 엽사는 30명이다. 이중 9명이 경남수렵인참여연대 김해지회 소속이다. 참여연대 전체 소속 회원 65명 중에서도 선별된 모범 엽사들이다. 멧돼지 출몰 신고가 들어오자 경남수렵인참여연대 박봉수(64) 단장은 피해방지단 단원인 백남전(62) 씨에게 멧돼지 포획을 지시했다. 

▲ 멧돼지 전문 사냥견 '검둥이'가 차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7마리나 나왔다니 오늘은 멧돼지를 잡을 확률이 아주 높겠네요. 신고가 들어온 곳이 어디라구요?"
 
"상동면 우계리 광재마을 쪽에 나왔다고 하더라고. 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새벽에 멧돼지를 보고 깜짝 놀라 연락을 했지 뭐야."
 
두 사람은 간단하게 출몰 소식을 주고받았다. 오전 10시께 백 씨는 멧돼지 사냥 전문견, 이른바 '멧견' 4마리를 차에 싣고 대동면 경남수렵인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나와 상동면 광재마을로 달렸다.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 마을에 다다르자 백 씨를 기다렸다는 듯 마을주민들이 밖에 나와 있었다. 이들은 백 씨를 잘 아는 눈치였다. 주민 허윤근(56) 씨는 "멧돼지가 자주 내려온다. 야행성인 돼지가 낮에는 잘 안 내려오고 주로 밤에 내려온다. 얼마 전에도 산딸기 밭에 거름을 주니 그 안에 있는 벌레를 먹으려고 산딸기 밭과 뿌리를 엉망으로 뒤집어놨다"라며 혀를 찼다.
 
주민들의 설명을 들은 백 씨는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광재마을 석룡산 입구로 차를 돌렸다. 그곳에는 합동 포획을 진행하기 위해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원인 이창호(54) 씨가 미리 와 있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이들은 옷차림이 단출했다. 옷에는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긁힌 자국과 멧돼지 핏자국도 있었다. 백 씨는 "산에 오르면 금방 땀이 난다. 험한 산길에 옷이 금방 상하기 때문에 막 입을 수 있는 얇은 옷을 여러 겹 입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사냥용 총을 꺼내 실탄을 채워 넣으며 포획 계획을 짰다. 백 씨는 멧견 4마리를 몰고 멧돼지를 찾아 산에 오르고, 이 씨는 차량으로 이동하며 후방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이들은 멧돼지의 동선을 고려해 가까운 산에 먼저 가기로 했다.
 
백 씨는 멧견들을 풀었다. 대형 사냥견을 상상했는데, 귀여운 얼굴을 한 중소형 개들이었다. 이들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거나 킁킁대며 주변 땅의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백 씨는 "멧견은 냄새를 맡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크기가 크지 않아도 된다. 크진 않지만 수 년간 멧견으로 훈련돼 온 개"라며 신뢰를 나타냈다.
 
백 씨는 총을 들쳐 메고 멧견들을 따라 산으로 들어섰다. 멧견들은 멧돼지의 흔적을 찾아 백 씨보다 앞서 산을 누볐다. 멧견들을 따라 산을 오르는 동안 멧돼지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멧돼지가 땅을 파놓은 흔적, 수퇘지가 영역 표시를 하느라 나무에 몸을 비빈 탓에 나무 표면이 벗겨진 부분도 있었다.
 
백 씨는 멧돼지의 흔적들을 유심히 살피며 멧견을 따라갔다. 그는 멧견이 목에 달고 있는 위치추적장치 추적기를 확인했다. 추적기에는 북서쪽 52m 지점에 개가 있는 위치가 나타났다. 개가 뛰고 있는지 멈춰 있는지도 확인됐다. 그는 "멧돼지나 고라니가 나타나면 개가 짖는다. 고라니는 워낙 빨라 개 짖는 소리는 금세 사라진다. 멧돼지의 경우 개가 계속 짖으며 쫓아간다. 멧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멧돼지를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피해방지단이 포획한 멧돼지. 사진제공=경남수렵인참여연대.

설명은 간단했지만 멧견을 따라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사람이 가는 길이 아니라 야생동물이 다니는 '길이 아닌 길'을 걷기 때문에 곳곳이 위험했다. 자연스럽게 자란 나무들은 눈앞을 막아섰다. 손으로 잔 나뭇가지를 헤치며 말 그대로 '길을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수로 가시가 뾰족한 산초 나뭇가지를 잡는 바람에 "아야야야" 하는 비명이 절로 나왔다. 30년간 수렵을 하며 산을 오간 백 씨는 걸어가는 중에도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구별하는 눈이 있는지 어려움 없이 산을 탔다. 그는 한참을 가다가 멈춰서서 개의 동태를 살피고, 또 걷다가 추적기를 확인하며 동태를 살폈다.
 
한 시간쯤 산을 헤집고 다녔을까. 백 씨는 무전기를 들고 "이쪽에는 없나 보다. 저 뒤쪽으로 넘어가자"며 이 씨에게 무전을 보냈다. 그가 "휘휘휘~"하며 휘파람을 불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멧견들이 모였다. 올라왔던 길과는 또 다른 길을 만들며 내려오자 이 씨가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백 씨는 "여기에 없으면 저 산이다. 먹이질을 한 걸 보니 큰 돼지가 있는 모양"이라며 수색 상황을 설명했다. 석룡산 뒤편에서 다시 한 번 수색을 시작했다. 그는 "어떨 때는 사냥 시작 20분 만에 멧돼지를 잡는 경우도 있다. 반면 어떨 때는 여러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해 지기 전인 오후 4~5시 전후까지 사냥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개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백 씨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왈~왈~."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백 씨는 "쉿" 하는 손짓을 하며 귀를 기울였다. 사람 소리가 들리면 멧돼지가 도망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멧견의 소리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백 씨는 "고라니였다"며 한숨을 돌렸다.
 
10분 쯤 더 산기슭을 헤맸을까. 다시 한 번 "왈~왈~" 하는 높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멧돼지였다. 백 씨는 쏜살같이 달렸다. 걷기도 어려운 산을 뛰어 내려갔다. "탕~~!" 하는 총성이 울렸다. 이 씨의 총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높은 총성 후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백 씨가 "창호가 쏘아서 맞춘 것 같다"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1~2분도 안 돼 10m 앞에 시커멓고 커다란 멧돼지가 나타났다. 멧견인 '여차'가 멧돼지 뒤를 쫓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백 씨가 멧돼지를 향해 "탕~탕~" 하며 총 두 발을 쏘았다. 총알이 스친 것인가. 멧돼지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백 씨는 멧돼지를 쫓고 있을 여차의 위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는 "개가 너무 가까이 있어 총을 제대로 쏘지 못했다. 총알이 비껴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멧돼지의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곧 여차를 발견했지만 멧돼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놓친 것이다. 백 씨는 여차가 조금씩 다리를 절뚝이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여차 왼쪽 앞다리 뒤쪽에 핏자국이 조금 있었다. 수퇘지의 날카로운 이빨에 받힌 것이었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
 
무전을 통해 확인해 보니 이 씨도 멧돼지를 놓쳤다고 했다. 두 사람이 본 멧돼지는 같은 녀석이었다. 140~150㎏급 대형 멧돼지였다. 아쉬운 마음에 멧돼지의 흔적을 찾아 한참 동안 산을 더 돌았지만 멧돼지는 자취를 감춘 뒤였다. 이 씨는 "총을 쏘아서 놓치는 경우가 잘 없는데, 둘 다 멧돼지를 놓쳤다"며 아쉬워했다.
 
산에서 내려와 오후 1시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들은 오후 사냥 때에는 놓친 멧돼지를 꼭 잡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오후에는 부상을 당한 여차를 빼고 큰 멧돼지를 봤던 산에 올라갔다. 멀리서 여차가 '같이 가자'는 듯 "왈~왈~" 짖어댔다.
 
가는 곳마다 멧돼지의 흔적이 가득했다. 멧돼지가 파놓은 구멍에는 젖은 흙이 보였다. 백 씨는 "이건 어제 밤이나 오늘 아침에 파놓은 거다. 아직 흙이 마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멧돼지는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골짜기와 계곡을 여러 차례 지났지만 멧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두 시간을 더 헤매는 동안 기자의 다리는 힘이 풀려버렸다. 오후 3시가 지나자 깊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사냥을 가서 못 잡는 경우가 없는데 참 특이하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산을 못 타는 기자의 어설픔이 멧돼지에게 들킨 것인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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