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우 김해뉴스 사장(부산일보 이사).

얼마 전, 점심을 먹으러 부원동의 한 골목으로 접어들다가 무참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몸이 앞으로 굽은 왜소한 한 할머니가 골목길 구석에서 한가운데로 비칠비칠 걸어 나오더니 느닷없이 맨 엉덩이를 드러낸 채 오줌을 눴습니다. 말라비틀어지고 어두운 성기가 다 보였습니다. 염치고 뭐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 거리에서 간간이 폐지를 줍던 할머니였습니다. 우리 말에 '곳집이 차야 예절을 안다'는 말이 있거니와, 맹자 왈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생계가 흔들리면 안 좋은 일을 하게 된다)'도 생각이 났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지난 주 <김해뉴스>의 기획기사 '현장'은 이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김해뉴스>에서 학생인턴으로 근무 중인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학생 이현동·양한나 씨가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이들은 삼안동행정복지센터의 '맞춤형 복지팀'과 함께 경제적 문제 때문에 삶을 힘들어 하는 이들을 방문했습니다.
 
기사를 보면, 서로 연락조차 않지만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노인, 대장암에 걸린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청각장애와 식도암을 앓으면서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모아 놓은 돈을 생활비로 쓰고 있는 노인, 일용직 사위와 병든 딸 때문에 늙은 몸으로 손녀를 키우느라 힘들어 하는 노인, 인제대 뒤쪽 산중턱에서 판자와 현수막 천을 덧대 집을 짓고 전기도 없이 생활하는 노인 등등이 나옵니다.
 
자신이 가진 소박한 재능을 활용해 말없이 이들을 후원하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한 세탁소에서는 무료로 빨래를 해 주고 있었고, 반찬가게에서는 반찬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쳐 주는 학원도 있었습니다.
 
묵자(墨子) 생각이 났습니다. 기원전 476년부터 기원전 390년께에 중국에서 활동한 실천적 사상가였습니다. 묵자는 묵적(墨翟)이란 사람에 대한 존칭이기도 하고, 묵적을 중심으로 한 묵가(墨家)란 학파의 언행을 반영한 책 이름이기도 합니다.
 
묵자는 서민들의 고통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굶주린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 헐벗은 사람이 입지 못하는 것, 노동을 한 사람이 쉬지 못하는 것 등입니다. 묵자는 이 세 가지 고통을 제거함으로써 최소한도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묵자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겸애(兼愛)'사상을 설파했습니다. 묵자 왈 겸애란 '더불어 사랑을 나누고, 더불어 이익을 나누는 것'입니다. 묵자는 이웃을 사랑하되,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이익이 따르는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청나라말과 중화민국 초기에 활동한 근대사상가 령치차오(양계초)는 묵자를 두고 "작은 예수, 큰 마르크스"란 표현을 썼습니다.
 
묵자는 만물의 주재자인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있기도 합니다. 묵자가 보기에 하느님은 '힘이 있는 사람은 서로 도와주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서로 가르쳐 이끌어주고, 재물이 있는 사람은 서로 그것을 나눠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동의대 박문현 명예교수는 자신이 번역한 책 <묵자>에서 "힘이 남아도 약한 사람을 도우려 하지 않거나, 쓰고 남는 재물을 쌓아두기만 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줄 줄 모르는 사람을 묵자는 개, 돼지와 같다고 봤다"고 적었습니다. 묵자는 그러면서, 맹자가 전하길, '머리꼭대기부터 발꿈치까지 털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摩頂放踵)' 특히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매진했습니다.
 
한쪽에서는 면세 가격이 한 병에 40만 원 하는 발렌타인 30년산을 소주 마시듯 하고, 많이 가졌으면서도 터무니 없이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종교시설은 나날이 세력과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한쪽에서만이라도 소박한 재능기부 행위가 많이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보았습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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