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석산개발지에 죽곡일반산단 승인이 나는 바람에 유목마을 주민들은 공사 시 발파에 따른 소음과 진동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공동체의식 단단하고 끈끈했던 시골마을
90년대 간장공장 입주 후 개발 바람 맞아
12만 평 농공단지에 52개 업체 즐비

시,작년 유목마을 일대 죽곡산단 승인
주민들 식수에 영향 미칠까 전전긍긍

발파 소음 피해 노출 가능성 커지는데도
시 '민원 있으면 대응하겠다' 소극적 반응

 


 

진영읍 죽곡리는 논농사가 성행했던 지역이다. 시·군 통합 이전에는 마을의 풍물패가 진영을 대표해 지역축제에 나섰을 정도로 지역공동체의 연대의식도 끈끈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주민의 삶의 터전이었던 논과 밭이 거의 다 사라져 버렸고, 지방도로 주변으로 금속가공 공장과 상점, 식당들이 들어서서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죽곡리는 진영에서 상대적으로 개발이 일찍 시작된 곳이다. 농공단지 뿐만 아니라 개별공장들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90년대부터 입주했다. 남해고속도로로 통하는 진례진영톨게이트가 인접해 있기 때문에 개발압력이 높았던 것이다.
 
죽곡리에서 그나마 텃밭이나 과수원이 일부라도 남아 있는 마을은 외촌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장이 없는 건 아니다. 오복간장으로 알려진 부산 향토기업 오복식품이 외촌마을에 생산공장을 설립한 1997년을 전후해 작은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간장공장에서 콩과 밀을 발효해 양조원액을 제조하는 탓에 주변에는 늘 시큼하고 진한 간장 냄새가 진동한다. 마을 노인정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콩밭, 무밭에 공장이 들어왔다. 오복간장이 들어올 때 반대했지만 허사였다"고 말했다.
 
공장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마을에 크게 이득이 된 것은 없었다. 진례에서 출퇴근하는 지역공장의 한 직원은 "대형트럭이나 트레일러가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에 큰 공장들은 마을 내 입주를 꺼린다. 그러다 보니 작은 공장들이 주거지에 많이 들어왔다. 공장이 들어와도 다들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장사가 안 돼 얼마 못 가 문을 닫곤 했다"고 전했다. 
 

▲ 외촌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죽곡리. 화포천 건너편으로 테크노파크 산단이 보인다.

진영(죽곡)농공단지와 인접한 유목마을은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더 힘들다. 진영농공단지가 1998년에 무려 40만 5000㎡(12만 평) 규모로 조성됐기 때문이다. 지역 8개 농공단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현재 52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데 임대업체까지 포함하면 실제 공장을 운영 중인 업체는 더 많다. 진영농공단지는 2014년 기준으로 3억 6343만 달러를 수출, 조성 초기의 골든루트산단(2억 2102만 달러) 보다 더 높은 지역경제 기여도를 보인 곳이다. 다만 현재는 조선 불황의 여파로 조업을 단축하는 입주기업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진영농공단지는 김해의 산업입지 가운데 비교적 조성과 관리가 잘 된 곳이다. 주차공간이 협소한 공장들이 더러 있어 노상주차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평지에 입지해 있기 때문에 붕괴 등 안전사고 위험이 덜하고, 입주업체들이 조선기자재나 금속 가공업이 주류여서 오염물질 배출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대규모로 조성된 농공단지는 원주민들의 공동체를 뿔뿔이 흩어놓았다. 유목마을 김정용 이장은 "유목마을 앞 논은 상습침수지역이었다. 경지정리도 안 돼 있었기 때문에 시가 매립해 농공단지를 조성한 것 같다. 나도 농공단지 조성공사 때 일당을 받고 일했다. 마을 주민 가운데 논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보상금을 받아 마산이나 부산으로 이사 갔다. 이제 원주민은 대여섯 가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유목마을 길 건너편에는 진영농공단지의 영향 때문에 농촌지역에선 흔치 않은 288가구의 세일아파트도 자리했다. 세일아파트는 진영농공단지 준공 3년 뒤인 2001년에 입주를 시작했다. 15년 넘은 아파트지만 1042지방도와 화포천 건너 테크노벨리 일반산단 조성의 영향으로 지난해에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상승했다.
 
개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는 지난해 9월 세일아파트와 유목마을 사이에 9만 6000㎡ 규모의 죽곡일반산업단지를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대산철강(주) 등 철강 관련 5개사가 실수요자 방식으로 개발하는 죽곡산단 조성공사가 조만간 시작될 예정이다. 인근에 진영농공단지는 물론 164만㎡의 테크노벨리 산단까지 조성돼 개발 밀도가 크게 높아졌지만 시와 경남도는 인허가를 내줬다.
 
그동안 개발 앞에서 무기력했던 유목마을 주민들은 이번 만큼은 피해가 있다면 당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산단 조성공사 탓에 마을의 식수원이자 생활용수인 지하수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상수도 대신 산단 예정지 인근 지하수 심정에서 생활용수를 끌어다 쓰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절박한 문제다.
 

▲ 간장공장이 가동되면서 외촌마을에는 늘 시큼한 양조원액 냄새가 진동한다(왼쪽). 죽곡리를 관통하는 지방도 1042호선.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돼 있어 통행량이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주민들은 대규모 발파와 이에 따른 소음에 노출될 처지에 놓였다. 현재 산단 예정지는 1980년대까지 석산개발이 이뤄진 곳이다. 현재 설계도면 대로 공사를 진행한다면 과거 석산 자리를 대규모로 발파하고 깎아내 평탄한 지형으로 바꿔야 한다. 시 도시개발과에 따르면 보상이 75% 이상 끝나 이달 중에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석산개발지에 산단이 들어서는 첫 사례여서 공사과정에서 주민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상동 매리의 석산개발지에 개별공장이 입주한 경우는 있었지만 유목마을과 세일아파트처럼 발파지와 인접한 위치는 아니었다. 이에 대해 도시개발과 관계자는 "공사과정에서 소음, 진동 등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시행자와 주민들을 중재하겠다. 지하수의 경우도 주민들이 아직 민원을 제기하지 않은 만큼 이후 문제가 있으면 원인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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