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환 국회의원이 인생역정과 삶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명장 김규환 국회의원 초청 특강
20일 김해시청 대회의실서 개최


"우리는 장영실의 후예다. 좋은 DNA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발명품을 잘 만들면 투입된 비용보다 훨씬 큰돈을 벌 수 있다. 그 돈으로 청년들이 학비를 내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내 꿈이다."
 
김해시는 지난 20일 오전 10시 시청 대회의실에서 김규환(새누리당·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초청해 특강을 열었다. 이날 강연은 시청 직원들과 지역 기업인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 의원의 인생역정과 철학을 주제로 진행됐다.
 
김규환 국회의원은 우리나라 초정밀 가공분야의 최고 명장이다. 그는 강의에서 유년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가품질명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혔다. 김 의원은 "강원도 평창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항상 아침 저녁으로 노래를 부른 흥이 많은 분들이셨다. 항상 나를 칭찬하고 자신감을 심어 주셨다"고 서두를 뗐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열다섯 살이 됐을 때 어머니가 여동생을 낳은 뒤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얼마 후 아버지도 집을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고, 남매는 전국을 떠돌며 살았다. 어린 동생이 딸린 상황에서 삶이 너무 막막해 죽을 결심도 했으나 다행히 주변 할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겨우 버텨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구인광고를 보게 됐고, 무작정 일을 찾아 창원으로 내려왔다. 그는 "당시 대우중공업에서 일할 사람을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청소사환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부지런함과 성실함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매일 새벽 5시에 회사에 나가 마당 청소를 했는데, 그때 사장님의 눈에 띄어 기능공으로 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글자도 몰랐던 그는 이후 한글도 배우고 국가기술자격증도 땄다. 그리고 창원기능대학에 진학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졸업할 때는 발명 분야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마침내 1992년에는 최고기능인에게 주어지는 국가품질명장으로 추대됐다. 지난해에는 명예공학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명장으로서의 사명감은 국회의원이 되는 데 보탬이 됐다. 김 의원은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면서 "중국이 싼 가격에 배를 만들면 우리나라 조선업계는 힘들어진다. 조선이 무너지면 자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도 무너진다. 결국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섬유, 식품 등 모두가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문제에 대한 답은 발명교육 의무화에 있다"며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먼저 초·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발명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명장대학교를 만들고, 발명대전을 열어 발명품을 많이 생산해 내야 한다는 말도 했다.
 
특강을 들은 한 공무원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수성가를 했는데도, 이를 오히려 유쾌하게 풀어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이 성공을 불러온 게 아닌가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홍성옥 시 총무과장은 "이번 특강이 참석한 직원들과 기업인들 모두에게 동기부여가 되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