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도시대 에도에서 제작된 풍속화 '우키요에'를 가장 많이 수장하고 있는 도쿄 오타기념미술관.
하라주쿠 지하철 역에서 내렸다. 오타기념미술관으로 가는 빠른 길은 오모테산도 쪽이다. 하지만 다케시타도리를 따라 빙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오모테산도는 구찌나 샤넬 같은 유명브랜드 가게가 있는 단정한 고급쇼핑가다. 그에 비해 다케시타도리는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싸고 새롭고 진기한 물건들이 시끌벅적 울긋불긋한 거리다. 심지어 초등학생들과 솜털이 아직 송송한 중학생도 함께 뒤엉킨 다케시타도리는 드문드문 보이는 넥타이 차림이 차라리 잘못 나온 원조교제처럼 어색해 보이는 거리다. 일본에서도 패션의 전위라는 명성에 걸맞게 오히려 유행에 관계없이 저마다 톡톡 튀는 개성이 거리 곳곳으로 넘쳐난다. 서민들의 삶터 장터처럼 즐거움이 가득한 거리. 다케시다(竹下)라는 이름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러니까 대나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다케시타도리를 따라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꺽어 들어가면 고즈넉한 주택의 모습을 한 미술관이 보인다. 일본에서 우키요에를 가장 많이 수장한 오타(太田)기념미술관이다.
 
▲ 스즈키 하루노부. 밤의 매화. 1766년경.
우키요에는 에도 시대에 에도에서 제작된 풍속화다. 그래서 에도 그림이라는 뜻의 에도에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한자어 부세라는 말뜻을 찾아 굳이 '뜬 구름 같은 세상의 그림'이라는 식으로 풀어 쓰면 오히려 복잡해 진다. '우키요'라는 말이 당시 일본에서는 염세적인 슬픈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신이 나서 마음이 들뜬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우키요는 그냥 '당대' '지금 이 세상'이란 뜻으로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접두어처럼 붙여 썼다. 아무튼. 서양미술사에 커다란 변곡점이었던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친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는 서구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오히려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딱 맞다.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또 한 명의 장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는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곧장 일본 전체를 장악한 도쿠가와는 먼 동쪽의 어촌마을 에도, 즉 오늘의 도쿄에서 새로운 도쿠가와 바쿠후의 시대를 열어 나갔다. 메이지 유신으로 몰락하기까지 260여년의 시간을 역사에서는 에도시대(1603-1867)라 부른다. 일본 전체로 보면 에도시대 동안 중앙정부가 나라나 교토로부터 처음으로 먼 곳으로 옮겨감으로 해서 정치적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새롭게 생겨난 조닌이라 부르는 상공업자 계층의 출현이고 또 하나가 요즘도 일본사람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여행문화이다. 여행이란 근대의 산물이다. 서양에서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배계급이 아닌 일반 서민의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봉건 지배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진 시기와 일치한다. 일본은 좀 예외적이다. 17세기 일본의 도로는 늘 사람들로 붐볐는데 이는 당시 유럽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라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쪽 기록이 있다. 도로의 번잡에는 이유가 있었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산킨코타이'라는 것을 시행했다. 다이묘의 처자들은 에도에 인질로 남아 있고 다이묘들은 정기적으로 에도와 그들의 영지를 오고가게 하는 것이다. 다이묘들의 빈번한 여행은 도로와 여관 등의 숙박시설의 건설을 촉진했고 이와 더불어 다미묘 행렬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경험이 훗날 서민들의 여행문화 촉진과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지배계급은 늘 그들을 경계 짓는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낸다.
 
▲ 가츠시카 호쿠사이. 후가쿠 36경 중 오와리 벌판에서 본 후지산. 1831년경.
일본의 지배 계급이었던 사무라이 계급은 가노파라고 부르는 중국풍의 그림을 최고로 치며 그들만의 문화를 즐겼다. 반면에 조닌들은 자신들만의 새로운 꺼리를 찾았다. 그게 우키요에였다. 우키요에는 직접 붓으로 그린 육필화와 판화로 나눌 수 있는데 육필화는 가노파 그림과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이나 부유한 상인들의 주문으로 생산되는 고가품이었다. 그에 비해 판화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저렴한 미술품이었다. 조닌 계급의 부상과 우키요에 판화의 번창은 에도의 경제적 부흥과 함께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우키요에는 다양한 소재를 포함하고 있다. 사창가 유명 유녀의 모습을 담은 것에서 마쿠라에라고 부르는 춘화도 있었다. 요즘 유명 연예인 브로마이드의 원조 격인 가부키 배우의 초상을 담은 야쿠샤에도 있었고 만화도 있고 여행정보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우키요에도 있었다. 오늘날의 그림엽서처럼 에도를 방문한 타 지역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리기도 했다.
 
▲ 우타가와 히로시게. 도카이도 53역참 중 소나기. 1833년경.
우키요에가 애초부터 예술품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일상의 소모품이었으니 일부는 유럽으로 수출하던 도자기의 포장지로 쓰이기도 했다. 아무튼 메이지 유신으로 밀려들어온 서구의 문명은 다양한 인쇄술과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 냈고 200년 넘게 이어온 우키요에의 시대 또한 급격히 저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항 후 우키요에의 예술성을 간파한 서구에서 먼저 우키요에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한 미술관은 아예 사람을 일본으로 보내 전국을 돌며 수집해 가기도 했다. 2008년 '보스톤 미술관 우키요에 명품전'이 일본에서 돌아가며 열렸다. 마침 후쿠오카 시립 미술관에서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출품된 작품들이 도록에서 본 거의 모든 작품들을 망라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아무튼 서구의 수집으로 일본 내에서 우키요에를 보기 점점 힘들어져 갔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우키요에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중 5대 오타 세이조(1893-1977)라는 사람은 소화시대부터 우키요에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50여년에 걸쳐 필생의 노력으로 1만2천 점을 모았다. 사후 그의 유족에 의해 좀 더 보충되고 마침내 그의 노력이 우키요에 전문 미술관으로 탄생하였다. 하라주쿠에 있는 오타기념미술관이 바로 그곳이다.   
 
미술관으로 들어가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집을 방문한 기분이다. 개인적 경험으로도 미술관 내부에서 신을 벗은 것은 처음이다. 신을 벗은 채(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신을 벗어야 편안해진다) 느긋하게 초대받은 손님처럼 넓지 않은 전시실을 천천히 돌아본다. 조금 전 우에노 공원 근처의 도쿄 국립박물관 일반 전시실에서 또 다른 우키요에를 관람했던 느낌이랑은 역시 조금 다르다. 기분 탓인지 그림조차 다르게 보인다.
 
▲ 우타가와 히로시게. 명소 에도 100경 중 료고쿠 불꽃놀이. 1856년작./ 우타가와 히로시게. 명소 에도 100경 중 후카가와 스사키 십만평. 1856년작.
아름다운 스즈키 하루노부가 지나고, 불가사의한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도 지나고, 후지산 연작으로 유명한 가츠시카 호쿠사이도 지났다. 이제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그림이다. 일단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그림은 뭐니뭐니해도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그림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우키요에를 좋아했던 이유가 흔히들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원근법이라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우타가와의 그림은 오히려 서구로부터 들어온 과학적 원근법과 수입 안료들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진 것들이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튼 우타가와 히로시게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서른 넘어 시작한 풍경화 연작이다. 사실적 풍경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 성실한 역작들이다. 우타가와 히로시게가 콜레라로 사망한 후 몇 년 가지 못해 우키요에 또한 미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마치 다케시타도리처럼 울긋불긋한 저자거리에서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애환을 대변하며 사랑을 받아오던, 그리고 서양미술사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며 변곡점을 제공했던 일본의 미술은 그들을 흠모했던 서양 미술의 파도에 오히려  거꾸로 잡아먹혀 사라져 버렸다.


Tip. 에도시대로부터 시작된 일본 풍속화 ────────
*우키요에
일본의 에도 시대에 성립된, 당대의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려낸 풍속화. 붓으로 직접 그린 육필화와 목판화 모두 우키요에의 범주에 든다.
 
*오타기념미술관(太田記念美術館)

도쿄 하라주쿠에 위치한 5대 오타 세이조의 우키요에 수집을 바탕으로 설립된 우키요에 전문 미술관이다. 1만2천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우키요에 수집품은 일본 최고를 자랑한다. 미술관 전시 공간이 좁아서 한꺼번에 전시하지 못하고 매달 돌아가며 새로운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주소: 도쿄 시부야 진구마에 10
·전화: +81 3 3403 0880
·가는 길: JR 야마노테선 하라주쿠역, 치요다와 후쿠토신 지하철의 메이지 진구 마에 역
·개관시간:AM 10;30-PM 17:30(월요일 휴관, 매월 27일부터 월말까지 작품교체를 위한 휴관. 휴관일이 수시로 변경되는 경우가 많아 홈페이지에서 개관스케줄 확인이 필요)
·http://www.ukiyoe-ota-muse.jp/








윤봉한 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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