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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떠났고 남았다”… 인구·산업 팽창에 가려진 공동체 해체
에필로그
수정 : 0000년 00월 00일 (00:00:00) | 게재 : 2017년 02월 08일 09:50:13 | 호수 : 309호 9면 심재훈·김예린 기자 cyclo@gimhaenews.co.kr
▲ 한림면 퇴래리 퇴은마을 주택가 뒤에 공장이 조성돼 있다.


콘크리트 아래 묻혀버린 문전옥답
한림면 ‘영남팔명촌’은 이름만 남아
자연마을 ‘생활권’짓밟힌 채 살아가

한일합섬 공장 설립 후 공장 유입 시작
안동공단 김해 초창기 개발 이끌어
1980년대 말 개별공장 우후죽순 설립

무분별한 개발 옹벽붕괴 등 사고 초래
조선·기계 산업 부진으로 빈 임대공장만



"공장 기계음이 온종일 마을 전체에 '쿵쿵' 울려. 기자 양반도 들리지? 김해시에 신고를 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만 해. 그런데 온 동네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거야?"
 
김해의 난개발 현장을 취재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상당수의 면 지역 마을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공장 기계음을 들어야 했다. 마을 안 좁은 길을 운전할 때면 대형트럭이라도 만나면 어떡하나 하고 마음을 졸여야 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70~80대 어르신들은 옛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며 마을의 내력을 들려줬다. 이들은 젊은 시절의 파릇파릇한 벼들과 비옥한 농토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약간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있었고, 문전옥답은 콘크리트가 덮어 버렸다. 주촌면 천곡리 천곡마을 한동희(71) 이장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지금 마을에는 젊은이도 없고 농사지을 사람도 없으니 논을 가지고 있어봤자 소용이 없다. 공장을 지어 임대료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나."
 
한림면 퇴래리 퇴은마을은 '영남팔명촌(5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문중 마을 8곳)'이었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도로공사로 인해 마을 진입로가 막혀버려 몇 차례나 길을 헤매야 했다. 마을에 당도해 보니 퇴은마을에는 집보다 공장이 더 많았다.
 
진례면 고모리 고모마을, 한림면 용덕마을에서는 공장들이 주택 담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마을주민들의 '생활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주민들은 "공장 설립 반대"를 외쳤지만 돌아온 건 김해시의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답변뿐이었다.
 

▲ 상동면 우계리 소락마을 뒤편에 산을 깎아 공장부지를 조성하고 있다.

어떤 마을에서는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근로자들이 마치 원주민 같았다. 일부 마을에서는 외국인근로자 등 외지인이 늘어나면서 치안이 불안해 지고 쓰레기 무단투기 행위가 빈발하면서 폐쇄회로티비(CCTV)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처럼 난개발은 김해의 자연마을과 주민들의 삶을 유린하고 있었다.
 
김해의 산업적 개발은 1969년 한일합섬이 안동에 방적공장을 세우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1981년에 흥아타이어공업(현 넥센) 김해공장이 안동공단에 들어섰고, 1991년에는 부산 사상에서 국제상사(현 LS네트웍스)가 안동공단에 이전해 왔다. 태광실업 등 향토기업이 가세하면서 안동공단은 김해의 초창기 개발을 이끌었다. 안동공단은 정식 공단이 아니라 개별공장들이 모여서 형성된 '공장지대'에 불과했지만 평지에 집적화한 곳이란 점에서 녹지와 농지에 들어선 난개발지대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개별공장들이 절대농지를 제외한 논과 밭, 임야에 우후죽순 격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상공단 등에 포진해 있던 부산의 제조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싸고 넓은 부지를 찾아 김해로 몰려왔다. 창원의 산업단지가 확대되면서 2~4차 협력업체들의 유입도 늘었다. 1990~2000년대까지 부·울·경 동남권의 조선·자동차·기계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김해는 이곳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이 입지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시기에는 농공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했지만 김해로 유입된 공장들 다수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개별공장을 택했다. 시 관계자는 "1980~90년대 에는 공장설립이 용이하도록 관련법에 특례조항이 생기면서 공장 인허가 건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그렇긴 해도 개발과 성장이란 미명 하에 개발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김해시가 인허가를 남발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1990년대부터 가속화한 개발 광풍은 지역의 모습을 180도 바꿔 놓았다. 인구 수도 1989년 18만 명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은 외국인을 포함해 55만 명(주민등록 53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1960~70년대의 개발 바람이 서울 강남의 뽕밭을 아파트촌, 빌딩숲으로 변모시켰듯, 김해에서는 임야와 논, 밭, 과수원이 중소기업 밀집지역으로 바뀌었다.

▲ 진례면 송현리 당리마을의 공장 사이 좁은 도로로 트럭이 지나가고 있다.

개발은 인구와 산업의 양적 팽창을 가져왔지만 원주민들은 정반대로 소외됐다. 개발로 인해 누군가는 고향을 떠났고, 누군가는 남았다. 이 과정에서 마을공동체는 해체됐다. 생활 여건과 환경은 말할 수 없이 악화됐고, 안전 문제까지 발생했다. 일부에서는 산을 깎아 옹벽을 쌓는 바람에 폭우, 지진 등이 발생했을 때 여지없이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붕괴사고가 일어나 인명 손실이 초래된 사례도 여럿이다. 이런 가운데, 2~3년 전부터 시작된 조선, 기계, 자동차 산업의 부진은 난개발의 또 다른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폐업과 함께 빈 임대공장들이 흉물처럼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김해시가 난개발 도시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김해시는 지난해에 난개발정비팀을 신설했고, 지난달에는 기본적인 난개발 정비방안을 내놓았다. 정비방안에는 공장허가 때 주거지 인접 지역의 경우 공장입지를 제한하고 기반시설 확보를 유도하는 내용이 담겼다. 진입로, 주차 공간 등의 확충에도 신경을 쓰기로 했다.
 
문제는 이미 진행된 난개발의 경우 원상태로 복원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분별하게 산개한 공장들을 주거지역과 분리하고 집단화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우리를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청사진을 그려나가야 할 시점이다. <끝>

김해뉴스 /심재훈·김예린 기자 cyclo@


■ 박재현 인제대 토목도시공학부 교수 인터뷰


“이제는 개발지상주의 벗어나야”


조선기자재 산업 위기는 오히려 기회
자문단 구성해 새 도시모델 정립해야


▲ 인제대 박재현 교수.

"김해 인구가 20만일 때 대학에 왔는데 지금은 50만이 넘는다. 그런데 행정은 과거의 개발지상주의를 답습하고 있다. 일부 이해관계자들의 개발이익을 위한 난개발은 지속가능한 고품격 도시로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환경 전문가인 인제대 토목도시공학부 박재현 교수의 말이다. 그는 김해시의 도시 관리 행정이 인허가를 남발하고 환경권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과거 15만~20만 중소도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개발이 곧 발전'이란 패러다임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과거에는 외형을 키우는 개발방식이 어느 정도 유효했다. 하지만 53만 중대도시에 접어든 상황에서는 산업과 주거, 교통, 환경 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방안이 있어야 한다. 개발에 '올인' 하는 건 지금의 상황과는 맞지 않다. 김해시의 미래에 대한 철학이 궁금하다. 김해시는 오래 전에 '2020도시계획'을 수립했는데, 녹지축에 인허가를 내주는 등 무분별한 개발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개별입지에 수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개발자나 사업주는 이익을 누렸지만 환경훼손·오염, 교통체증 등 개발에 따른 비용은 시민들이 떠안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그는 최근의 조선기자재, 금속가공 등 지역 제조업의 위기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이는 '친환경도시'로 가는 데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산업도 변화하는 사이클이 있다. 지금이 그런 시점이다. 유럽 산업도시들의 경우 제조업 공동화 이후 친환경도시로 전환한 사례가 많다. 이젠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효율적인 '고품격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첨단 기업과 우수한 인재들이 생태공간이 부족하고 대기오염과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도시를 찾아올 리는 만무하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새로운 도시 발전의 모델을 정립하기 위한 방편으로 각 방면의 전문가와 시민들로 자문단을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양한 세미나와 포럼 등을 통해 도시계획에 대한 시민들의 컨센서스(동의)를 형성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서울시처럼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분야별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여기에서 나온 결과를 정책화해야 한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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