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우 김해뉴스 사장(부산일보 이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하 존칭 생략)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몇 가지 의미심장한 말들을 남겼습니다.
 
'일부 정치인의 구태 의연하고 편협한 태도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무의하다고 판단했다. 우리 정치권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유아독존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나의 순수한 애국심과 정치 교체의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명분을 잃었다.'
 
반기문의 불출마의 변을 들으면서 퍼뜩 든 생각은 우리나라에서는 정통 관료나 인품을 겸비한 학자가 정치판에 뛰어드는 건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보기에, 정치판은 험한 풍찬노숙과 배신, 음모가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따라서 나름 자존심이 강한데다 험한 꼴을 겪을 일이 별로 없는 정통 관료나 인품 있는 교수들이 이 지형을 견뎌내기는 힘들 터입니다.
 
김해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난 4·13 총선과 김해시장 재선거 때 한 정부 부처의 고위관료 출신이 출마를 했습니다. 서울과 부산에 사는 그의 지인들이 저에게 '순수하고 똑똑한' 사람이니 잘 좀 도와드리라는 전화를 걸어왔고, 본인도 신문사를 찾아왔습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사람들이 대체로 순수할 것이라 믿는 것 같았고, 정치판과 선거판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정부 부처에서 고위관료를 지냈다고 해서 시민들이 우러러 볼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김해를 위해 특별히 한 게 없는데,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김해에는 몇 년 전부터 민심을 얻기 위해 밤낮을 안 가리고 뛰어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자금력과 조직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중앙당에서 특별한 공천을 받아 오지 않는 한, 경선 과정에서부터 많이 절망하게 될 것이다. 이미 경찰 고위간부나 차관급 인사들도 수모를 겪고 중도 하차했다. 또 하나, 정치판과 선거판은 비열한 정글이다. 앞으로 엄청난 헛소문과 비아냥, 음해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선거를 도와준다면서 별별 이상하고 수상한 자들도 다가올 것이다. 나중에는 후보를 갖고 놀려고 들 것이다. 감별을 해 달라면 해 주겠다. 이런 저런 치욕스럽고 더러운 꼴을 감내하는 한편 상처 입는 걸 두려워 않는 맹수가 될 자신이 없으면 선거에는 안 나오는 게 좋다. 이건 학교 반장 선거가 아니다."
 
그 후 이 분은 의욕적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관료 출신답게 정책을 섬세하게 개발해 내놓았습니다. 음해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선거캠프가 지리멸렬 상태란 말이 들리고, 당 내 경선 절차를 두고 후보들 간에 심각한 갈등 양상이 빚어지더니 일종의 '배신'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듣자니 배신을 당한 순간 한 40분 정도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으며, 울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모멸감이 음습하는 등 일종의 정신적 공황 상태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 분은 결국 맥없이 당 내 경선에서 탈락했고, 처연하게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지금 김해에서 활동하는 정치인들 중에도 도대체 양심이란 게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운 이들이 여럿 있습니다. 거짓말쟁이, 위선자, 사이비 같은 부정적인 수식어를 붙여야 이야기가 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지금 김해에서는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시의원 보궐선거가 예정돼 있습니다. 공천을 희망하는 이들의 명단을 들어보니 평소 주민들을 기만하던 수준 미달의 인물들도 섞여 있습니다.
 
김해에서 지금과 같은 정치 풍토가 이어진다면 이런 사람들도 어느 날 '선량'이 되어 있을 겁니다. 반면에 ‘순수한’ 누군가는 마음을 다칠 테지요.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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