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황동 수릉원에 허왕후 동상이 세워져 있다(왼쪽사진). 이광수 교수가 최근 펴낸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 책서 주장
과거부터 여러 논문 통해 부정
비판 근거 부족 논란 소지 있어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사실은 만들어진 역사에 불과하다. 1076년 가락국기가 처음 쓰인 후 1000년 동안 변형되고 살이 붙어 오늘날의 '신화'가 완성됐다. 그 과정은 이해관계가 있는 종친, 지역불교계, 관청, 일부 학자들에 의해 재구성됐다."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이광수 교수가 최근 펴 낸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푸른역사)에서 허왕후의 인도 도래설이 허구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허왕후 신화'가 통일신라시대에 수로왕 신화의 일부로 뼈대가 세워진 후 여러 이야기가 붙었고, <삼국유사>가 편찬되는 고려 문종 대에 신화의 구조를 갖췄다고 설명한다. 그는 허왕후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실제 역사 속 인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가문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특정 문중과 신도를 확보하려던 불교 사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화 만들기'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라 1970년대 이후 일부학자와 언론이 근거를 재생산하고, 일부 정치인들이 이를 활용하면서 허왕후 신화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 역사로 인식하는 상황까지 왔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허왕후 이야기가 1970년대 이전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은 <삼국유사>에 등장한 신화에 불과했다고 본다. 아동문학가 이종기가 <가락국탐사>(1977)에서 인도 아요디아 도래설을 제시하고, 이어 김병모 교수가 인도 허왕후 가문이 전란으로 중국 내륙의 보주로 이동했다가 가야로 건너왔다는 이동루트를 주장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비판은 허왕후 설화뿐 아니라 이와 맥이 닿아 있는 불교 남방전래설, 경남·부산 지역 사찰에서 전해오는 연기설화, 파사석탑 등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다.
 
우선 저자는 허왕후에 대한 최초 기록인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신뢰성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허왕후 인도 도래설을 뿌리째 부정한다. 저자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모태로 추정되는 <개황록>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그는 통일신라 시기 김유신 가문이 자신들의 몰락을 역사에 대한 과장과 윤색으로 보상받으려 한 심리에서 <개황록>을 작성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본다. 허왕후와의 국제결혼이 수로왕 신화를 강조하는 장치로 유용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허왕후가 왔다는 '아유타'도 현재 인도의 아요디아가 아니라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해 만들어진 지명이라고 본다. 가락국기에 '아유타'가 딱 한번 등장할 뿐 아니라 관련기술도 전혀 없기 때문에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의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도에서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 허왕후의 오빠로서 불교를 전래했다고 알려진 '장유화상' 모두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역사 만들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특히 장유화상 관련 기록은 조선 후기부터 등장하기 때문에 사찰의 연기설화 창조와 특정 문중의 조상 현창사업이 만나 '역사 만들기'로 발전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렇게 200쪽 넘는 지면을 할애해 허왕후 신화를 신랄하게 비판한 저자도 그 근거에 있어선 완벽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논란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일례로 그는 허왕후가 실존 인물일 가능성이 낮은 근거로 가락국기의 허왕후 도래 시기를 들고 있다. 가락국기에서는 도래 시기를 서기 48년으로 보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당시 가야는 국가형태가 아니었으며 3세기 후반에 가야 국가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가야가 국가형태로 발전한 시기가 3~4세기인지 1세기 전후인지 논란이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가야사 연구 확대와 함께 1세기 전후라는 입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신라의 불교 공인 이전인 452년 가야에 왕후사가 있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부정하는 부분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전통 역사학자 가운데도 왕후사 창건 기록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책 전체를 통해 '허황후 역사 만들기'를 조목조목 비판한 이 교수도 선조들에 전승돼 온 문화적 자산이라는 점에서 '허왕후 신화'의 역사적인 의미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사실로 통용되는 현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함께 허왕후 이야기가 전승돼 오늘날 문화콘텐츠로 활용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폄하하는 입장은 아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허왕후의 도래 이야기가 개막식에서 화려한 행사로 올려지게 된다. (…)설화를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설화 또한 고유의 가치가 있는 문화 자산이고, 문화 행사가 반드시 역사적 사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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