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원영 대성동박물관 학예연구사.

지난해에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고장 사가현 아리타 등지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근처에 우리로 치면 '구주현립도자관'이라는 도립도자기미술관이 있었는데 마침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었다. 주제는 '인간국보전'. 일본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인을 천시하는 풍토와 식민지배, 전란 등으로 전통 기술의 맥이 거의 끊긴 데 반해 일본은 몇 대를 이어 내려온 것은 기본이고 십 수대를 거쳐 맥을 이어온 작가들이 많았다.
 
그 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인간국보들의 작품이 현대적이라는 것이었다. 얼핏 봐서는 도저히 우리가 익히 봐왔고 아는 '그릇'의 모양이 아니라 그야말로 기기묘묘한 형상을 지니고 색색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다. 대체 전통은 어디로 갔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조선시대의 기술과 전통을 제대로 복원계승도 못하고 헤매고 있는 데 반해 그들은 전통의 답습에서 벗어나 이미 과거를 토대로 현대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경지에 들어선 지 오래였다. 전통의 계승이란 과거의 작품을 모방해서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들의 정신과 기술을 토대로 새롭게 해석하고 현재를 반영한 작품을 후대에 남기는 것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김해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100여 명의 도자 작가들이 있다. 하지만 국가에서 인정하는 무형문화재는커녕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이도 없다. 타 시도에 많게는 10명 가까이 있는 도자기분야 무형문화재가 경남도에는 아예 없다. 기술과 전통이 모자라서인가, 아니면 상호반목과 질시 때문인가?
 
진례면에는 도자 작가들의 작품 전시와 판매를 위한 분청도자관이 있다. 시에서 위탁받아 도예협회에서 관리와 운영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특별기획전으로 5만 원 단일가로 회원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행사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미흡한 점이 많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등록도 안 됐다.
 
분청도자관 바로 옆에는 세계 유일의 건축도자 전문미술관으로서 2006년에 개관한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이 있다. 현대 미술에서 건축과 도자의 확장된 지평을 소개하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해온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이달 15일부터 '분청, 그 자유로운 정신'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진례면 현지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2명도 참여하였는데, 미술관이 개관한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또한 오는 5월에도 지역작가 발굴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고 하니 현대 미술과 전통의 만남이 예사롭지 않다. 예전에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던 미술관과 도예협회의 관계를 벗어나 지역과 융합하려는 미술관의 노력이 보기 좋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미술관에도 역시 전통도자기 전공자가 근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현대작품 위주로 전시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미술관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지역의 거점 미술관으로서 전통기술의 재현에 필요한 연구와 자료의 발굴, 집성, 김해 도자문화의 우수성을 연구하고 알리는 노력 등을 담당할 학예연구사 채용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웃 일본은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우리의 우수한 도자기술과 장인을 빼앗아 간 뒤 이를 더욱 발전시켜 세계화하였다. 유럽 등지에 도자기를 수출하고 벌어들인 막대한 재화를 바탕으로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현대 일본의 문화재 작가들은 새로운 21세기의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 문화재로 지정된 작가도 한 명 탄생시키지 못했을 뿐더러 전통을 연구하고 계승할 중심 연구자도 없이 그저 만들어 팔기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도자기 장인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전통과 김해만의 특성을 계발하지 않는 한 우리가 일본을 따라 잡는 일은 지난해 보인다. 흙과 물이 좋아도 만들 사람이 없으면 그냥 자연 그대로일 뿐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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