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황대 유적 연못에 가야시대 배를 재연한 선박이 띄워져 있다. 허왕후 일행은 이보다 큰 목재선을 타고 가락고도에 닿았을 가능성이 높다.


46년간 각국서 연구 <허황옥 루트…> 발간
불교철학 연구자 언어학적 접근에 큰 영향

이거룡 교수 등, 타밀어·한글 유사성 관심
과거 두 지역 문화 접촉 가능성 근거로 제시

주류 학계서는 여전히 “학술적 근거 부족”
통일신라 후기 지지기반 위해 과장 가능성



학계 일부에서도 허황옥의 인도 도래와 가야불교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중 가장 권위 있는 이가 현재 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인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다. 김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한국 고고학계의 원로이자 인류학 전문가이다. 그는 지속적인 외국 답사를 통해 가야불교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허황옥과 그의 일족이 인도에서 해로를 통해 곧바로 가락국으로 건너온 게 아니라, 중국의 보주(사천성 안악현)를 거쳐 이동해 왔다고 주장했다.
 
"과거 중국에 갔을 때 운남시의 시사(市史)에서 인도 아쇼카 왕의 3번째 아들이 토착세력과 혼인을 해 지역의 통치자가 됐다는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이후 중국 남부에서 대리국을 세운 몽족의 조상이 됩니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기원 전에 이미 불교 포교단을 유라시아 곳곳에 파견했던 아쇼카왕의 아들이 중국까지 왔다면, 인도에서 왔다는 '허왕후 루트'가 그렇게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유라시아 여러 나라를 답사하면서 인류학과 민속학적인 흔적을 토대로 가야의 물고기 신앙이 불교적인 요소가 틀림없다고 결론 내리게 됐습니다."
 
김병모 교수는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에서 46년에 걸쳐 중국, 일본 뿐 아니라 인도, 네팔, 파키스탄, 이란 등을 답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그는 수로왕릉 정문에 있는 쌍어의 의미와 수로왕의 비가 되는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가락국까지 오게 된 경로를 파헤쳤다.
 
그는 허황옥의 고국 아유타국은 기원전 7세기에 아리아족이 세운 인도 코살국의 중심도시 '아요디아'이고, 한나라와 흉노 간의 대립 여파로 아요디아의 지배계급이 동쪽으로 이주해 보주에 자리를 잡았다고 주장한다. 그 곳에서 태어난 허황옥은 서기 47년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 가락국으로 왔다는 것이다.


역사학계의 유물 의존적인 연구풍토에서 벗어나 인류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김 교수의 행적은 이후 불교철학 연구자들의 언어학적 접근에도 영향을 미쳤다.
 
불교철학계의 가야불교에 대한 접근은 인도 타밀어(드라비다어)와 한글의 유사성을 연결고리로 과거의 문화 접촉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거룡 선문대 교수는 논문 '가락국과 고대 남인도 접촉에 대한 고찰'에서 "옛 가락국 지역의 물고기 숭배를 드라비다 문화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가락과 가야는 고대 인도어인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뜻한다. 지역에 유독 물고기 어(魚) 자가 들어간 산이 많다는 사실도 결부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허황옥 일족이 현재 아요디아가 위치한 북인도에서 건너온 게 아니라 과거 타밀왕국의 영역이었던 남인도, 그 중에서도 첸나이 지역의 해상에서 출발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남인도 불교 전래설도 아직 완전한 학설로 통용되는 건 아니다.
 
장재진 동명대 불교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가야의 유물이 아직 10%도 발굴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언어학적인 고찰을 통해 보다 유연하게 가야불교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언어학적 접근이 초기단계인 만큼 앞으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가야불교를 해양 문화교류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불교의 남방전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지만 이를 받아들이기엔 학술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영식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는 "이번 겨울에 일부에서 허황옥 일행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인도 아요디아를 다녀왔다. 아요디아는 인도 2대 서사시인 '라마야나'의 주인공 라마(코살라국 왕자)가 여정을 시작했다 되돌아오는 상징적인 장소다. 이 이야기가 동남아 일대까지 퍼져 있을 정도로 아요디아는 유명한 도시다. <삼국유사>가 기록됐던 고려시대에는 서역과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인도의 아요디아와 이를 뜻하는 아유타국을 당시 지식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불교가 인도로부터 직접 전파됐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신비성을 부여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아유타국을 지목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김해 인근에서 인도 관련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허황옥, 장유화장이 인도에서 왔고 또 그들이 불교를 들여왔다는 남방전래설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긴 힘들다"고 밝혔다.

▲ 부산 강서구 명월사 인근에 조성된 '허왕후길'.(사진 왼쪽부터) 수로왕릉 납릉정문의 '신어상'.

조원영 합천박물관 관장도 "가야의 불교가 해양을 통해 전래됐다는 주장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누구도 아니라고 장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통일신라 후기에 중앙정계에서 밀려난 김유신 집안(김해 김씨)이 가계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지지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전승설화와 기록을 다소 과장해 허왕후의 인도도래와 불교전래를 강조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어쨌든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가야'는 교과서에서도 몇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는 '잃어버린 왕국'이었다. 그러다 고고학적 발굴과 사료 재해석 작업을 통해 가야의 역사가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과거에 비해서는 가야와 가야사가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옛 왕궁터, 허왕후 인도 도래 등 아직 풀리지 않은 역사적 미스터리들이 산재해 있다. 가야불교를 이러한 미스터리들과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순 없다. 가야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쟁과 의문들이 어느 정도 제 모습을 찾았을 때, 가야불교의 실체도 비로소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가야사와 가야불교에 대한 작은 관심이 각박한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한 기고에서 "대학원 재학 당시 병치레를 하던 중 우연히 <삼국유사>를 통독했다. 거기에는 국사 시간에 더러 들었던 믿기 어려운 전설과 경이로운 이야기가 무한정 담겨 있었다. 돌아보건대, 당시 병으로 심약해진 내게 ‘정지된 시간’으로서의 설화들이 작지 않은 위안을 줬다"고 말했다.
 
'가야불교'를 찾아가는 여정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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