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무 국경 자유무역의 글로벌시대가 본격화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세계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관해서는 연구 기관과 방법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무역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소득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했으나 기술과 외국인직접투자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 숙련기술자와 비숙련기술자 간의 소득 격차를 심화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WEF)에서는 이례적으로 불평등에 초점을 두었다. 향후 10년 간 세계를 위협할 요소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를 꼽았다.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는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은 한 목소리로 포용적 성장을 들고 나왔다. 오는 6월에는 G20 포용적 성장 회의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포용과 성장의 동반은 이제 불가분의 대세가 되었다.
 
포용적 성장을 최초로 언급한 미국 MIT공대 대런 애쓰모글루와 하버드대 제임스 로빈슨 교수의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포용적 성장은 국가의 성패를 가른다고까지 했다.
 
포용적 성장이란 경제 주체인 국민들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기회를 공평하게 갖고 성장을 통한 경제적 혜택이 사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공정한 규칙에 따라 분배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도 소득 불균등 완화 측면에서 포용적 성장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전 세계 상위 인구 1%가 나머지 99%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세계 최상위 부자 8명이 전 세계 인구 절반인 36억 명의 재산과 동일한 부를 소유하고 있다. IMF는 한국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여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소득 불평등 꼴지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1980년대까지는 소득 불평등이 크게 심각하지 않은 경제성장 국가들 중의 하나로 알려졌으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이 짧은 기간에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삶의 질 순위에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중국보다 3배 많지만 삶의 질은 61개국 중 47위로 중국(45위)보다도 낮았다. 
 
OECD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사회 양극화를 줄이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 양극화 해소 수단으로 여겨졌던 교육마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계층 간 교육 불평등 지표들은 우려할 만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한국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과학점수에 미치는 영향력이 2006년 7.0%에서 2015년 10.1%로 크게 증가했고 서울대 합격생 강남구 출신 비중이 2007학년도 17.3%에서 2017학년도 23.4%로 크게 높아졌다. 
 
통계청 사회조사결과에 의하면 '본인 세대에 비해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2009년까지는 낙관적 전망이 우세했으나 2011년부터는 비관적 전망으로 돌아섰다. 교육이 희망의 계층 사다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마저 무너져버렸다. 이는 계층을 초월한 전 국민의 높은 교육열도 외환위기 이후 소득 양극화로 저소득층 자녀들에 대한 교육투자 여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시인이며 정치가인 솔론은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피해자와 똑같이 분노할 수 있을 때 사회 정의는 실현된다"라고 했다. 이는 소위 따뜻한 공정자본주의의 출발이기도 하다.  
 
광장의 촛불과 태극기 집단 간의 반목과 불신은 상대방 측의 헤아림은 고사하고 옳고 그름마저 혼돈케 할 지경에 이르렀다.
 
'노력을 해도 희망이 안 보인다'는 우리 젊은이들의 '헬조선' 절규에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금수저 딸의 항변은 우리 어른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지게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포용적 성장에 주목하고 사회적 합의를 모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해뉴스 강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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