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불교가 해양을 통해 전래됐다는 '남방전래설'의 의미와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제2회 가야문화학술대회'가 지난달 25일 대한불교조계종 김해 여여정사에서 열렸다. 여여정사와 동명대 인도문화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이날 학술대회에는 학계전문가, 불교신자, 일반시민 등 100여 명이 참가해 '가야문화의 원형탐색과 콘텐츠화, 해양불교 전파의 모형탐색'이라는 주제로 5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펼쳤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인도 타밀나두주의 국립종합대학인 마드라스대학 철학부 미슈라 학장을 비롯해 선문대 이거룡 교수, 동국대 고영섭, 석길암, 황순일, 황정일 교수, 동아대 윤종갑 교수, 동명대 장재진 교수, 위덕대 권기현 교수 등 불교학 및 종교철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여여정사 도명 주지스님은 "인도에서 불교가 직접 전래됐다는 내용의 수많은 연기설화와 흔적이 전해지지만 아직 완벽한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종교라는 이유로 오히려 역차별을 받은 측면도 있다. 학술적인 차원에서 가야불교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주제발표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 지난달 25일 김해 여여정사에서 가야불교의 해양전파를 주제로 열린 '제2회 가야문화학술대회' 도중 불교 연구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미슈라 마드라스대 교수
“두 나라 언어 사이 유사성 확인
 인도~중국~가야 해상전래 추정”

 이거룡 선문대 교수
“문화교류사적 견지 접근 필요
 허황옥 출발지 남인도일 듯”

 황순일 동국대 교수
“기원전 중국 남부 해상교역 활발
 난쟁이 약샤 전파 경로 주목해야”



■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불교 전래 경로 / 고다비리샤 미슈라(인도 마드라스대학 교수)
인도의 문호 타고르가 1929년 한국을 '동방의 등불'로 표현한 것처럼 한국과 인도는 서로 동질성과 호감을 가지고 있다. 대외교류사적으로 봤을 때도 이미 4세기 삼국의 승려가 인도에서 불법을 공부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인도에서 불교가 직접 전래됐다는 가야불교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가야불교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업에는 비교언어학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음성학적으로 남인도에서는 가-거, 빠-바 등이 하나의 글자로 취급됐다. 남인도의 방언에 '고리아'가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가오리아'다. 이는 '조금 흰색'을 뜻하며, 피부가 조금 흰 황인종과도 통한다. 또 무역하는 사람, 승려 등의 뜻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고리아'를 '고려'의 어원과 연관 지을 수 있어 한국어와 인도어의 언어적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인도 남부 깐치프롬 지역에서는 '엄마, 아빠'를 뜻하는 '엄'과 '암'의 발음이 한국과 비슷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가야의 쌍어문이 타밀나두 주 빤디아 왕국의 상징인 점에서도 남인도와 가야의 관련성을 발견할 수 있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고 여겨지는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의 고대항해기술을 고려하면 인도~인도차이나반도~중국~가야로 이어지는 불교의 해상전래를 충분히 추정해 볼 수 있다.

■ 한국불교 남래설 고찰 / 이거룡 선문대 교수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서역과 중국을 거쳐 국내에 들어왔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최근 해상경로를 통해 인도에서 직접 전래됐다는 남래설이 심심찮게 제기된다. 하지만 사료 부족으로 기존 통설을 번복하기엔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불교 남래설이 인정받기 위해선 단편적인 문헌이나 사료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수로왕이 불교를 잘 알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는 '16나한', '칠성' 등의 불교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불교가 가야권역으로 들어온 시기는 허황옥이 가야에 온 서기 48년 이전으로 소급해 생각할 수 있다. 불교의 전래와 공식 수용의 시기는 달리 볼 수 있는 만큼 허황옥과 함께 불교가 들어왔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 종교 전파는 자연적으로 전달되고 변용되는 과정을 거치는 성격이 있는 만큼 불교를 종합문화체로 이해하고 문화교류사적인 견지에서 접근해야 한다.
 허황옥이 가락국에 오기 전부터 이미 인도의 문화가 상당한 정도 유입됐다는 증거가 있다. '가락', '가야'는 남인도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뜻한다. 수로왕의 '수로'는 범어 '슈라'의 음차일 가능성이 있다. 슈라는 '통치자, 영웅'의 의미를 갖고 있다.
 
허황옥의 출발지가 북인도의 아요디아보다는 남인도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주요 도시였던 깐치뿌람은 타밀 불교의 중심지였다. 기원전인 아쇼카 왕 때 이미 깐치뿌람에 스투파(인도식 불탑)를 조성한 기록이 남아 있는 만큼 남인도에서 불교가 전래됐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 동남아시아 해상실크로드와 불교 / 황순일 동국대 교수
실크로드를 개척했던 중국 한나라의 장건이 기원전 120년께 타클라칸 사막을 넘어 페르시아 지역에 도달했을 때 중국 남부 사천성의 특산품인 옷감과 대나무 지팡이가 인도를 통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기록이 있다. '차마고도'로 불리는 험난한 중국 남부 산악지역을 통해 티벳고원을 거쳐 인도로 상품이 들어갔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험한 길을 통해 대나무 지팡이 등 값싼 상품을 가져갔다는 추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다량의 상품 수송이 가능한 해상경로를 통해 운반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
 
남인도 동부지역에서 몬순 계절풍을 타고 벵골만을 넘으면 동남아시아 서부지역과 연결된다. 특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팔렘방은 고대 동남아 최대 무역항이었다. 팔렘방은 메콩강 하구의 푸난, 베트남 중부의 참파로 이어졌고, 결국 중국 남부 광저우와 연결됐다.
 
이미 기원전에 인도, 동남아, 중국 사이에는 활발한 해상교역이 있었다. 가야까지 이 해상경로가 이어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고대 인도와 한반도는 하나의 선이 아니라 각기 왕복하는 세부 단위의 무역경로들을 통해 연결됐다. 인도의 상품들과 함께 불교가 자연스럽게 한반도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동남아의 역사적 기록과 최근 문화인류학적 발굴에 따르면 불교는 해상경로를 통해 운반된 최고의 상품이자 가장 강력한 문화콘텐츠였다.
 
따라서 가야불교가 해상에서 왔다는 주장은 허황된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개연성이 높은 추론이다. 탑이나 건물 기단, 지붕 또는 법륜을 받치는 '난쟁이 약샤(자연 정령)'의 전파가 해상경로와 일치하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인도 중부 산치의 난쟁이 약샤는 인도 동부 마가다, 동남아를 거쳐 한반도와 일본에 이르렀다. 일본 교토 혼간지의 약샤상과 강화도 전등사의 나신상에서도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해상 무역경로가 (불교문화 전파에) 실제적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야불교 남방전래설의 재검토 / 고영섭 동국대 교수
사료와 유적 부족으로 가야불교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가야불교에 단순히 평면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다뤄야 한다.
 
가야불교의 전래를 검토할 때 가야로 통칭해 접근하기보다 6가야 가운데 주요세력이었던 아라가야, 대가야, 금관가야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을 통해 북방불교를 수용한 고구려, 백제를 통해 불교가 전파된 것으로 여겨지는 아라가야, 대가야 등을 금관가야와 동일한 선상에 놓고 보는 것은 무리다. 대가야, 아라가야는 내륙에 위치한 지리적 환경뿐 아니라 고고학적 발견 때문에 남방불교의 가능성은 낮다. 대가야의 경우 백제가 중국 남조로부터 수용한 대승불교를 전한 것으로 보이고, 아라가야는 고구려 불교의 영향을 더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금관가야는 허황옥, 아유타국, 파사석탑 등의 기록으로 볼 때 북방불교보다 남방·해양불교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허황옥이 인도, 태국, 왜가야에서 왔든 해양세력과 접목해 가야가 발전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금관가야가 지리적으로 한반도 남동부에 자리하면서 일찍부터 철기 무역과 배 건조술이 뛰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야불교가 인도와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온 북방불교와 인도, 스리랑키 및 미얀마, 태국 등 동남아 일대의 남방불교와 접목해 후세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야불교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은 북방북교 일변도의 해석을 새로운 접근으로 환기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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