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상동에서 진행된 대형태극기 거리 행진.


98년 전 ‘김해읍 독립운동’ 재연 행사
민홍철 의원 등 시민 200여 명 참가

독립선언문 낭독 이어 연극 공연도
일본순사 횡포에 관객 일제히 돌세례

태극기·풍물단 앞세우고 거리 행진
시장 상인·외국인들도 동참 열기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98년 전 김해읍내를 쩌렁쩌렁 울렸던 3·1만세운동의 함성이 김해에 다시 울려 퍼졌다. 태극기는 힘찬 "만세" 소리와 함께 청량한 하늘에 펄럭였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어르신들은 어렴풋이 남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기억을, 중·장년층은 부모로부터 들었던 그때의 이야기들을, 청년들과 어린이들은 교과서에서 접한 역사를 마음에 되뇌였다. 한국에 온 지 1~2년 밖에 안 된 외국인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각기 다른 시대와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이었지만, 이날은 '대한민국 만세' 앞에서 마음을 공유했다.
 
제98주년 3·1절이었던 지난 1일 오후 2시 서상동 김해합성초에서 '제2회 김해읍내 3·1만세운동' 행사가 열렸다. 98년 전 김해읍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마련된 행사였다. 민간단체인 김해근대역사위원회를 중심으로 ㈔김해시기독교연합회와 김해교회가 행사를 공동주최했다.
 

▲ 합성초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만세삼창을 외치고 있다.

추위가 한층 풀린 합성초 운동장에는 흰색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은 청소년들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태극기를 든 이들의 모습은 사진이나 그림에서만 봤던 3·1만세운동을 현장으로 옮겨놓은 듯 했다. 합성초 입구에서는 김해근대역사위원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약 20㎝ 길이의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들뜬 얼굴로 태극기를 흔들며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손녀의 손을 꼭 잡고 행사장을 찾은 80대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보여 주려고 이곳을 찾았다. 일제강점기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오후 2시 운동장에 설치해 둔 간이의자 100여 개가 다 채워졌다. 민홍철(더불어민주당·김해갑) 국회의원, 빨간 조끼를 입은 ㈔대한민국독도사랑세계연대 회원 10여 명 외에 200명 가까운 시민들이 운동장을 채웠다.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묵념이 이어졌다. 사회자가 "애국가 제창은 4절까지 모두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어이쿠"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랜만에 부르는 애국가 1~4절이었지만, 다들 나눠 받은 안내지에 적힌 가사를 보며, 기억을 되살려가며 애국가를 완창했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똑똑히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김해근대역사위원회 고준석 위원장은 직접 써 온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가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애국지사들의 당당한 기백과 나라사랑 정신이 오롯이 담긴 독립선언문에 참가자들은 귀를 기울였다.
 

▲ 한 외국인이 자녀를 안은 채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배동석 애국지사의 부친인 배성두 장로가 건립하고, 배 지사가 다녔던 김해교회의 조의환 목사가 인사말을 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를 잃고 국토가 없었음에도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민족의 절기를 지내며 조상의 이야기를 가르치고, 확인하고,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삼일절 노래를 불러보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보는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과거 김해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을 재현하며 김해시민들이 민족의 자긍심을 갖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민홍철 의원은 "요즘 태극기와 촛불 사이에 갈등이 있다. 이 같은 분열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게 자립·자주·자강의 3·1만세운동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김해에서 3·1만세운동 정신이 다시금 시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 만세~~" 모든 참가자가 자리에 서서 3·1절 노래를 불렀다. 젊은이들은 가사가 적힌 안내지를 들여다 봐야 했지만, 40~50대 이상은 자연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이어 다 함께 만세삼창을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사람이 한 마음으로 하늘 높이 태극기를 들어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의 행사는 지금으로부터 98년 전 1919년 4월 2일 김해읍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재현한 것입니다. 배동석 애국지사는 친구와 선·후배를 동지로 규합해 태극기와 3·1독립선언문을 만들어 3월 29~30일 김해읍내에서 시위행진을 한 후 장날인 4월 2일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김해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난 김해읍내 만세운동은 장유 무계리, 진영, 봉림 등으로 이어져 수 차례에 걸쳐 독립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사회자의 설명을 시작으로 당시 김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재현한 연극이 진행됐다. 김해근대역사위원회 회원 20여 명이 애국지사와 일본순사 역을 나눠 맡았다. 검정 두루마기를 입은 애국지사들은 "우리나라가 자주독립국임을 만천하에 알립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흰 두건에 앞치마를 한 조선의 아낙네들도 함께 나와 만세를 외쳤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함께 "만세"를 외쳤다.
 

▲ 김해읍내 만세운동을 다룬 연극이 펼쳐지고 있다.

이윽고 "탕! 탕!" 총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순식간에 일본순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조센징들. 천황 폐하께 충성하지 않으면 모두 체포하겠다." 이날을 위해 콧수염을 길렀다는 김해근대역사위원회 김재구 사무국장이 일본순사 역을 맡았다. 한 아낙네가 그에게 달려들어 "네 놈은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며 멱살을 잡아챘다. 결국 애국지사들과 조선의 아낙네들은 일본의 총칼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 배동석 지사는 98년 전 4월 2일 일본순사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두 눈알이 뽑히고 손톱, 발톱이 뽑히는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이날 연극의 결말은 달랐다. 관객들이 모두 앞으로 나가 신문지로 만든 돌을 일본순사들에게 던지며 이들을 몰아냈다. 일본순사들을 무찌른(?) 시민들은 다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기념식, 연극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풍물단, 대형 태극기를 앞세워 종로길 일원을 누비며 거리 행진을 이어갔다. 종로길을 도는 동안 참가 인원은 늘어났다. 주최 측은 길을 가던 시민들과 상인들에게 태극기를 나눠 줬다. 일부는 거리 행진에 동참했다. 풍물단의 신명나는 꽹과리 소리를 듣고 나온 상인들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단을 응원했다. 행진단은 연신 "만세!"를 외치며 걸음을 이어갔다. 누군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사람이 "만세"를 연창했다.
 
행진단을 가장 신기하게 바라본 사람들은 종로길의 외국인들이었다. 이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벌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행진단이 태극기를 나눠 주자 외국인들도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다. 구산 파르몬(29·우즈베키스탄) 씨는 "3·1운동을 대강 알고 있다. 쉬는 날이어서 종로길에 온 길에 행사를 봐서 좋다"고 말했다. 리딕(28·인도네시아) 씨는 "한국이 일본에 지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TV에서 만세운동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다 함께 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종로길 중앙에서 다시 한 번 연극이 펼쳐졌다.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외국인들은, 말을 알아 듣기는 어렵지만 몸으로 보여주는 연극에 고개를 끄덕였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이날 김해읍내 만세운동 재현행사는 막을 내렸다.
 
두 자녀와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한 이영창(46) 씨는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자 역사 교육이 된 것 같다. 7세인 둘째 아이가 역사에 관심을 갖고 물어봤다. 아이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눈으로 체험하고 함께 만세를 부를 수 있어 뜻이 깊었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여해 열심히 만세를 외친 윤서준(9) 군은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연극을 보면서 일본 경찰들이 잔인하고 나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나라를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규헌(10) 군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니 왠지 마음이 뿌듯해졌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역사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도 나왔다. 문필애(68) 씨는 "고등학생들이 삼일절 노래를 모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라의 기둥들이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미래를 위해 청소년들이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나 교육이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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