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암 전망대에서 바라본 약사전 전경. 지붕보다 높은 금동 약사여래불상 뒤로 해무에 사로잡힌 바다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무예 수련하는 화랑 모습 신선 같구나’
무이산 기슭 마을에 ‘무선리’ 이름 붙어

신라시대 의상대사 암자 창건 설화
‘걸인’ 행색 두 보살 따라가 절터 발견
“고기잡이 어부 귀향 빌려고 절 많아”

지혜 관장 ‘문수’ 덕 보려고 수험생 몰려
질병 치유 대형 약사여래불 여행객 발길



경남 고성의 산에는 유독 사찰과 암자가 많다. 고성이라면 해안가 갯바위에 찍힌 큼지막한 공룡발자국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암자에서 내려다보는 한려수도의 절경을 마주하게 된다면 우선순위가 바뀌게 될 지도 모르겠다.
 
고성 상리면 무선리에 있는 무이산 중턱에는 작은 암자인 문수암이 있다. 수려한 산세와 바다를 한 눈에 조망하고 싶다면 이곳이 안성맞춤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명승지로 이름난 문수암은 신라시대에 화랑들이 무예 연습공간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무이산 기슭에 있는 마을은 '무예를 수련하는 화랑들의 모습이 마치 신선 같다' 하여 무선리라 불린다.
 
김해에서 문수암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이 걸린다. 차창으로 스며드는 봄햇살에 차 안 공기는 제법 후덥지근해졌다. 더위를 식히려고 창문을 조금 열자 훈훈한 공기가 비집고 들어와 두 볼에 닿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시간은 눈 깜짝할 새 흘러간다.
 
무이산을 휘감는 아스팔트길을 오르다 보면 '문수암 보현식당'이 보인다. 인근에 대형 주차장이 있다. 여기서부터 천천히 걸어 올라가도 되지만, 문수암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더 들어가면 암자 바로 밑에 널찍한 주차공간이 나타난다.
 

▲ 약사전에서 바라본 문수암 전경.

차에서 내리자마자 청량한 산 공기를 힘껏 들이키며 노곤함을 풀어본다. 방문객이 쌓아놓은 크고 작은 돌탑을 따라 가다 보면 문수암으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보인다. 산 아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걷는 속도가 빨라졌다.
 
문수암은 소박한 암자이지만 경관이 아름답기로 이미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청량산(현 무이산) 문수암은 신라 때였던 688년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다. 의상은 남해 금산으로 수행하러 가는 길에 무선리의 한 민가에서 휴식을 청했다. 선잠에 빠진 의상은 꿈속에서 청량산의 한 노승을 만나 내일 아침 걸인을 따라 산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날이 밝자 노승의 말대로 행색이 남루한 두 걸인이 찾아왔다. 그들을 따라 청량산에 도착한 의상은 깜짝 놀랐다. 비단 위에 촘촘히 수놓은 듯한 다도해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은 채 바위 틈새로 사라졌다. 의상이 따라가 보니 석벽 사이에는 문수보살상만이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보살임을 깨닫고 지금의 문수암을 창건했다.
 
천불전 약수터를 지나 법당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오르면 문수암의 자랑인 전망대가 나타난다. 석불과 함께 이곳에서 수행한 청담 스님의 사리탑이 세워져 있다. 좁은 길 사이로 들어가면 유려한 산 능선 너머로 한려수도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야!,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은 해무와 어울려 한 폭의 수묵화를 이루고 있었다. 왼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논과 밭이 펼쳐진 시골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글자 그대로 그림 같은 산해(山海) 경치다. 전망대에서 보는 암자의 모습은 산자락에 매달려 있는 듯한 모양새다.
 

▲ 약사전 일주문 뒤에서 관람객을 기다리는 약사여래불상.

전망대를 내려오자 한 어르신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고성의 산에는 절이 많은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윽고 어르신은 "해안가 근처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어업이 생업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망망대해로 떠난 가장이 많았을 것이다. 부인과 자식들은 드넓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 정상에 서서 안전한 귀향만을 빌었을 것이다. 절이 많은 것은 이들의 간절한 염원에 비례해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법당으로 향하는 길에는 참배객의 소망이 적힌 기와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재미삼아 훑어보니 '임용·고시 합격', '수능 대박' 등 각종 시험 합격을 바라는 글귀가 많았다. 문수보살은 최고의 지혜를 관장하기 때문에 시험을 앞둔 전국의 수험생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소원을 빈다고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막 머리를 스치는 순간 조류 중에서 가장 높은 지능을 가졌다는 까마귀가 "까악"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어리석은 생각을 나무라는 것이었을까.
 
문수전 법당으로 들어서자 무이산 바위 절벽 아래로 고즈넉한 전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당에는 형형색색의 풍등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고개를 드니 또 다른 전망대가 보였다. 문수전 뒤쪽으로 돌아가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자취를 감추었다던 석벽이 있다. 석벽 틈에서 부처의 얼굴이 보이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믿음이 강한 불자만 볼 수 있다고 한다. 바위에는 동전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부처의 형체를 보지 못한 참배객들이 영험한 힘을 구하려고 소원을 빈 모양이다.
 

▲ 한 참배객이 돌탑을 쌓아 기도하고 있다.

언제 보아도 지겹지 않은 다도해의 절경을 두 눈에 담으려 다시 전망대에 섰다. 멀리 보이는 오른쪽 산 정상에 큰 불상이 우뚝 솟아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수암에서 약 1.2㎞ 떨어져 있는 약사여래상이다. 문수암에 온 사람들은 사찰여행을 하는 것 마냥 약사전과 보현암을 방문한다.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금동좌불상은 여행객의 발길을 이끌기 충분했다.
 
약사전은 약사여래불상을 봉안한 곳이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모든 질병을 고쳐주고, 고통을 없애주며, 목숨을 연장시켜준다고 알려져 있다. 약사전 일주문에는 '해동제일기도도량'이라는 목판이 붙어 있다. 불전 지붕 위로 보이는 금동불상 얼굴은 마치 방문객에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약사전 3층으로 올라가면 13m 높이의 약사여래불을 마주하게 된다. 없던 불심도 절로 들게 할 압도적인 크기에 행동과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불상 뒤쪽에는 수십 개의 작은 종들이 벽면을 촘촘하게 메우고 있다. 종을 만지면서 지나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불상 앞쪽에는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약사여래불은 바다를 등진 채 산을 바라보고 있다. 불상의 시선을 따라가면 깨달음을 얻을까 싶어 무작정 산을 향해 눈길을 고정했다. 문수암을 향해 느릿하게 산길을 오르는 관광버스가 보였다. 왼쪽엔 햇빛에 반사된 무선저수지의 물결이 반짝이며 일렁였다. 문수암 전망대에서 본 풍경과 또 다른 모습이었다.

김해뉴스 /고성=배미진 기자 bmj@gimhaenews.co.kr


▶문수암 /고성군 하일면 무선2길 808.
가는 방법 : 김해여객터미널에서 고성행 버스를 타고 고성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하차, 고성-상리 농어촌 버스 탑승 후 가동정류장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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