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봄 벚꽃이 만개한 하동 십리벚꽃길 전경. 연인이 함께 걸으면 백년해로를 한다고 해서 '혼례길'이라고도 불린다. 사진제공=하동군청


하동 입구서 만개 벚나무 터널 ‘장관’
절 양쪽 시내 흘러가는 쌍계사 내부엔
진감선사 일대기 적힌 국보 탑비 우뚝

차 체험관서 은은한 발효녹차 한 모금
화개장터 벚굴, 참게탕으로 점심 해결
잔잔한 섬진강 은모래길에 넋 놓고 구경만



솜사탕처럼 풍성하게 만개한 분홍빛 꽃, 팔랑팔랑 흩날리는 꽃비. 1년을 손꼽아 기다린 벚꽃철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봄을 가득 머금은 꽃망울들은 아직은 입을 꼭 다문 채 꼼짝을 않는다. 꽃을 터뜨리기에는 이른 시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따뜻한 남쪽을 향해 나선다. 김해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면 함안, 진주를 지나 2시간 만에 경남 하동에 닿는다.
 
하동은 입구에서부터 벚나무 행렬이 시작된다. 동글동글 꽃망울들이 탐스럽게 달렸다. 조만간 이 나무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이마를 맞대고 더 없이 사랑스러운 꽃 터널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아쉽긴 하지만 지금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꽃이 아니어도 하동은 충분히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여행의 동선은 가장 안쪽에 자리한 쌍계사에서 십리벚꽃길을 따라 내려오며 하동야생차박물관, 화개장터, 그리고 최참판댁을 들르는 순서로 정했다.
 
하동 입구에서 20분을 더 들어가면 여행의 시작점인 쌍계사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사찰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다. 나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꼿꼿한 자세를 취한 채 위를 향해 쭉쭉 뻗어 있다. 그 끝이 궁금해 자꾸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 사찰 입구에는 조그마한 다람쥐 한 마리가 마중을 나왔다. 지난 가을 도토리를 쟁여 놓지 못했는지 애꿎은 나뭇잎만 붙들고 입맛을 다신다. 주린 배를 내민 다람쥐에게는 미안하지만, 앙증맞은 모습이 귀여워 사진 한 장을 찍고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 쌍계사 구층석탑과 팔영루.

일주문은 속세를 벗어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는 쌍계사의 첫 관문이다. 쌍계사는 723년에 세워졌다. 신라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스님이 대비스님과 함께 평소 깊이 흠모하던 당나라 육조 혜능대사의 '정상(頂相)', 즉 두개골을 모시고 와 꿈속의 계시대로 '눈 속 칡꽃이 핀' 곳에 봉안해 창건한 절이다. 830년 진감국사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절을 크게 확장하고 옥천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인근에 같은 이름의 사찰이 있어 '절 양쪽에 시내가 흐른다'는 뜻을 담은 쌍계사로 이름을 바꿨다.
 
절에는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세워져 있다. 정영섭(57) 문화관광해설사는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법력을 기리고자 887년 건립했다. 고운 최치원이 왕명을 받들어 비문을 썼다. 내용은 진감선사의 일대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탑비 구석구석에 금이 갔다. 1936년 지리산에 5.4 규모의 지진이 났을 때 탑비가 넘어져 깨진 탓이다. 여기 찍힌 자국은 한국전쟁 때 맞은 총탄 자국"이라고 덧붙였다. 쌍계사는 또 보물 9종과 경남도 등에서 지정한 유형문화재 13점, 기념물 1점, 문화재자료 5점을 보유하고 있다.
 
절에서 화개장터 방면으로 조금 내려오면 왼편에 이곳이 차 시배지임을 알리는 세 개의 비석이 서 있다. 비석 옆에는 '신라 흥덕왕이 828년 김대렴에게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씨앗을 지리산에 심게 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차를 재배한 곳은 쌍계사 장죽전'이라는 내용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차 시배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화개면 곳곳에서는 계단 모양의 녹차 밭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년 5월에는 이 일대에서 '하동야생차문화축제'도 열린다. 올해는 5월 4~7일에 스물한 번째 축제가 진행된다고 한다.
 

▲ 평사리공원에서 내려다본 섬진강과 은모래길 전경. 모든 생각을 버리고 드러누워 하루를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시배지에서 계곡 쪽을 향해 내려다 보면 하동야생차박물관이 보인다. 과거에 있던 하동차전시관을 리모델링해 지난 20일 개관했다. 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초록색 찻잔에서 분홍꽃차가 쏟아지는 모습이 봄을 닮아 예쁘다. 1층 전시실에서는 차의 유래와 역사, 시대별 차 문화, 시대별 다기와 다구 등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일본, 중국, 인도,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차들도 진열돼 있다. 2층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완, 다기세트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옆에는 차 체험관이 있다. 1층은 차 시음·판매장이다. 시음장에서 향긋한 차향이 은은하게 풍겨온다. '차문화센터판매장' 김경애(61) 사장이 살가운 미소로 반기며 따뜻한 발효녹차를 권한다. 녹차 특유의 떫은 맛이 없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그는 "대개 녹차는 찬 성질을 띠지만, 발효녹차는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땀이 나게 해서 감기에 걸렸을 때 마시면 좋다"고 추천한다. 체험관 2층에는 체험실이 마련돼 있고, 3층에서는 다도예절을 배울 수 있다.
 
두 군데만 들렀을 뿐인데 벌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식사를 하러 화개장터로 향한다. 도로 양쪽에는 벚나무들이 사이좋게 줄을 지어 섰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1년 당시 하동군수는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도로를 개설했다. 당시 화개면민들은 벚꽃 1200그루와 복숭아나무 200그루를 심었다. 그것이 지금의 십리벚꽃길이 됐다. 이정화(60) 문화관광해설사는 "다른 말로 '혼례길'이라고도 부른다. 사랑하는 연인이 이 길을 함께 걸으면 백년해로한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해마다 화개장터 둔치 일원에서는 벚꽃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4월 1~2일 '제22회 하동화개장터벚꽃축제'가 펼쳐진다.
 

▲ 화개장터에서 북공연이 열리고 있다.

점심을 먹고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갓 만든 쑥떡과 잘 말린 곶감이 먹음직스럽다. 음식점마다 벚굴, 참게탕이 공통메뉴다. 벚굴은 벚꽃이 필 때 가장 맛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크기는 보통 굴의 7배다. 하동 하구에서 많이 수확하는 자연산 굴이라고 한다. 참게는 섬진강에서 잡은 것이다. 집게발에 있는 털이 특징이다.
 
화개장터에서 하동군청 방면으로 5분쯤 달리면 오른 편에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은 언제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예정에 없이 평사리공원에 차를 세우고 섬진강과 은모래길에 눈을 고정한 채 한참동안 넋을 놓고 앉았다. 강과 백사장이라니…. 낯설지만 묘하게 조화롭다. 하루쯤 머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잠시 휴식한 뒤 최참판댁으로 향한다. 최참판댁은 박경리문학관과 함께 있다. 두 곳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공통분모로 한다. 박경리는 2008년 5월 5일 작고했고, 8주년이 되는 2016년 5월 4일 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문학관의 차정희(64) 문화관광해설사는 "<토지>는 1895~1945년의 근대 50년을 다루고 있다. 박경리 선생은 책상에 연대표를 두고 글을 썼다고 한다. 43세부터 68세가 될 때까지 25년간 책을 집필했다. 눈이 침침해서 국어사전과 돋보기를 늘 곁에 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일대기를 짐작케 하는 사진과 시대에 따라 다른 표지로 발간된 책이 인상적이다. 마당에 서 있는 선생의 동상에 인사를 하고 최참판댁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동 여행을 마무리했다.
 
하동 십리벚꽃길은 전국에서도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예상치 않은 소소한 보물들을 만날 수 있는 정감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한 번 다녀가면 굳이 꽃이 아니어도 다시 생각나는 곳이기도 하다. 꽃길과 물길, 향긋한 녹차 한 잔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을'이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gimhaenews.co.kr


▶하동 십리벚꽃길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쌍계사 기준).
가는 방법 : 진례역 무궁화호 승차 후 하동역 하차. 약 1시간 40분 소요. 운임 6,600원.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