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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와 함께한 나무와 풀 이야기(35) 나무가 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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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1.08.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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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주 기자(phj@gimhaenews.co.kr)

   
 
"듣도 보도 못한 나무 이야기를 써 주세요!" 뭘 어떻게 써 달라는 말보다 더 강력한 주문을 한 출판사 대표도 대표지만, 결국 그 주문에 맞는 책을 써낸 저자도 대단하다.
 
'나무가 민중이다'는 우리의 농경문화 속에서 민초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풀과 나무를 생활 속 눈높이로 바라본 나무 이야기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이나 식물학 서적 등에서 봤던 글과는 달리,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무와 풀들이 어떤 모습으로 함께 했는지 조근조근 들려주는 책이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써 낼 수 있었을까 하는 감동마저 느끼다가 작가 고주환 씨의 이력을 살펴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에 있는 성황림에서 태어났다. 성황림은 면적 31만2천993㎡에 이르며, 온대지방을 대표할 만한 낙엽수림으로 천연기념물 제93호이다. 성황림에서 태어난 저자는 나무와 풀과 함께 자랐다. 농사꾼이자 목수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나무에 대한 살아 있는 지식과 어머니나 주변 어른들, 본인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풀과 나무의 갖가지 생활상식과 민담은 이 책을 이루는 튼튼한 뼈대이다. 그 위에 강원도 영서지방 구전 민속의 구성진 내용들이 더해졌으니 이 책은 출판사의 주문처럼 '듣보잡 풀과 나무의 이야기'가 되었다.
 
도시화로 밀려난 옛 삶의 풍경 속에서 나무가 사람들과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말해주기 위해 저자는 여러 자료를 함께 보여 준다. 자작나무 편은 백석 시인의 시 '백화'로 시작한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지구상에서 추위에 가장 강한 교목인 자작나무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시다. 저자는 이 시를 먼저 읽어 주고 자작나무를 설명한다.
 
물푸레나무의 견고함을 설명할 때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을 들고 나왔다. 물푸레나무는 질기며 단단하고, 손에 잡기 좋을 만한 굵기로 자라고 적당하게 거친 껍질이 목질부에 단단하게 들러붙는다. 손에 잡히는 느낌 '그립감'이 좋아 농기구를 만들 때 꼭 필요한 목재료였다. 지역을 막론하고 괭이, 호미, 낫, 쟁기, 도끼, 망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오래 쥐고 노동을 해야 하는 기구의 손잡이는 물푸레나무가 도맡아 왔다. 이런 단단한 나무가 썩을 지경이니 신선놀음을 빗대는 도끼자루는 물푸레나무였던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생소한 산악지형에 운송수단이 없어 쩔쩔 대던 연합군을 놀라게 한 '지게'는 세계의 수많은 인력 운반 수단 중 단연 최고이다. 신라 시대에 등장한 지게는 탄생 이후 줄곧 가족을 부양하는 아들과 아버지의 어깨에서 떠나지 않았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지게는 질긴 참나무나 물푸레나무로 만들어졌다.
 
소나무는 그 쓰임새를 보면 우리 민족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나무다. 마른 솔잎은 불쏘시개로 쓰고, 장작으로 불을 때고, 솔가지는 금줄에 끼우고, 송홧가루는 다식을 만들고, 속껍질은 보릿고개 음식대용으로, 송진을 모아 불 밝히고, 송진덩이가 땅에 묻혀 오래 되면 '호박'이 되고, 소나무 아래 송이버섯을 키우고, 죽은 소나무는 '복령'을 만들어 낸다. 또한 소나무는 집을 짓는 중요한 목재료였다. 우리 민족의 집은 '초가집' '기와집'이 아니라 '소나무집'으로 불러야 할 정도다. 왕궁의 건축재료로도 소나무가 쓰였다. 강원도 지방의 아리랑인 '정선 아라리'에는 '금강산 제일가는 소나무 경복궁 대들보로 다 나가네'라는 대목이 있다.
 
전설처럼, 옛이야기처럼, 할머니 할아버지의 추억처럼 펼쳐지는 책 속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의 자연을 다시 한 번 둘러보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나무의 생태학을 마치 민중의 자서전과도 같이 써내려갔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주환 지음/글항아리/415p/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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