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전국 장터 66곳 순례
부산일보 등 지역신문 연재


단순히 '부지런하다'라는 말로 그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지런하다'라는 말을 하면서 그 앞에 '정말' '진짜'를 붙인다. '부지런함',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부지런한 발품'이 그가 전국 535곳 오일장을 누빈 힘이었다.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수길(56)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최근 펴낸 <어무이, 비 오는 날은 나가지 마이소>는 언제부터인가 주변에서 점점 잊혀가는 오일장터의 이야기와 풍경을 담아낸 책이다. 직접 발품을 팔아 카메라에 담은 장터 풍경과 시장 상인들의 사연은 책 제목처럼 아련하고 애잔하다. 과거와 오늘이 공존하는 그곳, 오일장터의 추억을 불러세웠다고나 할까.
 
책은 2008년부터 8년간 찾아 다닌 전국의 장터 500여 곳 중 66개 장터에서 만난 88개의 이야기를 가려 뽑았다. 책 속에 소개된 장터 이야기는 부산일보를 비롯해 제주신문, 광주일보, 대전일보, 경인일보, 강원일보, 매일신문 등 전국 7개 지역 신문에 '이수길의 오일장터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연재했던 내용이다. 책은 지면 사정상 게재하지 못했던 것까지 담아냈다. 저자는 "2015년 1월 부산일보 연재가 계기였다. 25회까지 시리즈를 마치고 용기를 얻어 다른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너무 호응이 좋아 결과적으로 전국을 돈 셈"이라고 말했다. 오는 5월 말께 매일신문 연재가 끝나면 7개 신문에 연재했던 게 자그마치 100회에 이른다. 그의 '부지런함'과 '열정'이 또 한 번 드러나는 대목이다.
 
장터 사람들과의 인터뷰도 현지 사투리로 다시 풀어냈다. 책 끝엔 대한민국 지역별 오일장터 주소와 책에 소개한 66개 장터 위치 지도도 수록돼 있다.
 
점점 그 모습이 희미해져 가는 장터. 하지만, 사라져 간다는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그곳에는 여전히 존재하는 생생한 삶의 모습, 여전한 모정, 여전한 효심이 있다.  먹고 살고자 하는 투지도 있고, 내 몸 하나 바스러져도 지키고픈 가족도 있다.
 
40여 년 동안 부산 하단장터에서 한평생 오일장을 지켜 오며 자식 잘 키워 낸 것을 최고로 뿌듯해하는 배위남 할머니. 86년 전통을 잇고 있는 경주 입실장터에는 30년째 도넛 장사를 하는 오공임 씨와 부모의 대를 이어 장사를 계속하겠다는 박근철 씨의 이야기가 있다. 200여 개의 난전이 펼쳐지는 전남 광양 장터. 그곳에는 손님들의 흥을 돋워주는 뻥튀기 장수 배금선 할머니와 시어머니의 대를 이어 강냉이를 튀기겠다는 며느리 정정임 씨의 사연이 감동을 전한다. 결혼한 뒤부터 지금까지 노포동장터, 구포장터, 울산 태화장터까지 장날마다 자리를 잡고 장사한 지 40여 년. 옛날엔 돈 버는 재미로 장터를 찾았지만, 지금은 사람들과 정 나누는 재미로 장터 자리를 지킨다는 김 할머니의 말에서는 애틋함이 묻어난다.
 
마음의 고향이자 고향에 있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곳이 오일장터라는 저자. 그는 "오로지 자식을 위한 일념으로 살아온 위대한 삶의 현장이자 엄마의 메아리가 늘 울려 퍼지는 곳이 오일장"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기자에게도 오일장은 모정이다. 3~4년 전까지 기자의 어머니 또한 밭에서 손수 재배한 온갖 채소를 가끔 하동, 진교, 전도 장에 내다 팔곤 했다. 그래서 허리 굽은 장터 할머니 모습이 담긴 책 표지 사진마저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다. 가끔 전화로 '어머니, 장에 그만 가이소'하면 어머니는 그랬다. "난, 괜찮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괜찮다'고. 어머니와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책 속에 있다. 작가 이수길이 담은 장터, 당신에겐 어떤 말을 걸어올까?  김해뉴스

부산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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