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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노장 기사 느긋한 운전에 창밖 스쳐 지나는 ‘여행스케치’
(7) 73번
수정 : 2017년 04월 05일 (10:25:09) | 게재 : 2017년 04월 05일 10:18:55 | 호수 : 317호 13면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 73번 버스가 대동면의 안막3구 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우고 있다.


운전만 반백 년 노기사 연륜·여유로
하루 6회 상동 여차~부산 구포 운행

학 많았다는 백학마을, 전원주택 인기
‘전원학교’ 용산초, 자연·인성교육 특징
창가에는 연이어 물결 푸른 낙동강

구포시장·병원 가는 어르신이 주고객
대동산단 들어서면 10년 뒤 큰 변화



쌀쌀하던 겨울 공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포근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메마른 나뭇가지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봄이 피어난다. 회색빛 도시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온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한층 더 가까워진 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상동면과 대동면은 봄을 즐기기 최적의 장소다. 하늘과 강, 나무가 어우러진 이 지역을 73번 좌석버스가 지나간다. 창밖만 바라보면 흡사 기차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73번 버스는 상동면 여차마을~부산 구포시장을 오간다. 아쉽게도 버스는 단 한 대이며, 하루 6회만 운행한다. 73번 외에는 이 지역을 지나가는 버스는 드물다.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들은 시간표를 줄줄 욀 정도지만, 73번이 처음인 초보자는 여행을 하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버스는 여차마을에서 다섯 차례, 신촌마을에서 한 차례 출발한다. 여차마을에서는 오전 6시 30분, 오전 10시, 오후 12시 50분, 오후 6시, 오후 8시 30분에 출발한다. 신촌마을에서는 오후 3시 20분에 떠난다.
 
73번 버스를 타고 가면 자주 들어보지 못한 정겨운 마을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추임새 같이 느껴지는 '여차'는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이름이라고 한다.
 

▲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부산 북구와 김해 대동면을 잇는 대동화명대교.

굽이진 고개를 지나 평화로운 여차마을 버스 출발지에서 박성진(70) 기사가 승객을 맞이한다. 1970년부터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고 하니 운전 경력만 반백 년이다. 그는 60세에 정년퇴직했지만, 건강검진과 정밀검사 등을 받은 뒤 벽지노선인 73번 버스를 몰게 됐다고 한다. 퇴직했지만 건강에는 문제없는 김해시의 고령 정책이면서 벽지노선의 부담을 줄이려는 버스회사의 지혜다. 그에게서는 오랜 연륜만큼이나 여유가 넘쳐난다.
 
73번 버스는 김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좌석버스여서 앉을 자리가 많다. 그만큼 서서 가기 힘든 정도로 굽은 길을 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버스에서는 낙동강을 볼 수 있는 곳이 명당자리다. 여차~구포 방면 버스에서는 버스의 왼쪽, 구포~여차 방면 버스에서는 오른쪽이다.
 
창밖으로는 비닐하우스와 논 등 시골의 풍경이 펼쳐진다. 아직 날씨가 덜 풀려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무와 텅빈 논에서는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하얗거나 분홍색인 매화꽃은 이미 만개해 있다.
 
넋을 잃은 채 고요한 시골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백학마을이다. 이 마을은 백운저수지를 가운데 두고 '백운동'과 '학운동'으로 나뉜다. 참 특이한 이름이다. 예로부터 마을에 학이 많이 찾아와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학이 놀랄까 봐 마을 행사를 할 때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 상동면의 평화로운 농촌 풍경(위 사진), 한 전원주택 앞에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주민이 많지 않은 시골마을이지만 최근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맑고 깨끗한 공기, 평화로운 분위기에 반해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백학마을뿐 아니라 용산, 화현, 매리 등 상동면 곳곳에 전원마을이 생겨나고 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에서 살다 너른 마당에 옹기종기 세워진 장독대, 커다란 대문,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든든한 지붕 아래서 살면 대궐이 따로 없을 듯하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김해의 '비버리힐스'다. 주변에는 그 흔한 편의점은 물론 약국 하나 찾아보기 힘든 곳이지만, 자동차가 있다면 꿈꿔 볼 만한 삶이다. 하늘과 나무를 배경으로 세워진 여러 전원주택을 구경하는 것도 73번 버스 여행의 숨은 재미다.
 
매리로 넘어가는 길가에 용산초가 있다. 2000년대 초반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도시 학교와는 다른 자연·인성교육 등을 실시한 덕분에 학생들이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전원학교'가 됐다. 김해에는 용산초를 시작으로 안명초, 생림초 등 작은 학교만 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앞세워 학생들의 인기를 얻는 '강소학교'가 많다. 오후 3~4시 하교시간이어서인지 학교 셔틀버스와 학부모들의 차량이 눈에 띈다.
 

▲ 73번 버스가 지나가는 낙동강 옆 차로.
▲ 낙동강 너머로 양산 물금신도시가 보인다.

용산초를 지나면 버스 왼쪽 창문으로 봄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양산과 김해 사이를 가로지르는 낙동강이다. 버스는 지금까지 계속 낙동강을 타고 달렸지만 제방이 높아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이후에도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제방의 높이에 따라 강이 보이기도 하고 다시 사라지기도 했다.
 
강 너머 양산의 모습도 다양하다. 상동처럼 산과 논으로 된 지역이 있는 반면 조금 더 고개를 들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물금신도시의 모습도 보인다. 폭이 1㎞도 채 되지 않은 강물을 사이에 두고 상반된 도시 풍경이다.
 
조용하고 깨끗할 것만 같은 상동면에도 공장지역이 있다. 매리에서 강 반대편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신촌마을 인근이다. 꼬불꼬불 좁은 길을 따라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구포에서 상동으로 가는 73번 버스 여섯 대 중 오후 1시 50분 버스는 여차 대신 공장지대로 간다. 초보 승객은 주의해야 한다. 여차로 가는 버스 중에서도 구포시장에서 오전 7시 30분, 오후 4시 10분에 출발하는 버스는 공장지대를 거쳐 여차로 간다.
 

▲ 용산초등 앞에 전원주택들이 모여 있다.

공장지역 인근에 상동매리농협이 나온다. 73번이 지나가는 상동지역 중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농협 하나로마트를 비롯해 의원, 약국, 주유소 등이 있다. 승객이 가장 많은 정류장이기도 하다. 서자윤(68) 씨도 이곳에서 버스에 올랐다. 그는 "상동 사람들의 생활권은 대부분 구포다. 제대로 장을 보거나 병원을 이용할 때는 구포에 간다. 그때마다 73번을 탄다. 하루에 여섯 편뿐이어서 한 번 놓치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시간 계산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73번 버스의 승객은 서 씨처럼 구포시장에 장을 보러 가거나 병원에 가는 어르신들이다. 부산에 살면서 상동면이나 대동면에 있는 공장이나 농장에 일을 하러 오는 부산 사람들도 있다. 박성진 기사는 "73번이 벽지노선이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승객이 많다. 일을 하러 부산~김해를 오가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6월 산딸기 수확철이 되면 상동면에 산딸기를 따러 오는 부산 사람들로 만원 버스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부산 금곡동에 사는 정만영(74) 씨는 매리 소감마을에 텃밭을 가꾸느라 73번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 73번을 탄다. 부산~김해를 오가며 텃밭을 가꾼 지 20년이 넘었다. 버스 대수가 많지는 않지만, 시간만 잘 맞추면 편하게 오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 마트·주유소·정비소·의원 등이 모여 있는 상동매리농협.

소감마을을 지나가면 바로 대동면이다. 곳곳에는 갈무리수변공원, 대동생태체육공원 등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만든 공원들이 있다. 대동생태체육공원에는 축구장, 농구장, 야구장 등도 있다. 외진 곳이어서 찾는 이들이 적지만, 강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거나 나들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대동생태체육공원에서는 강 건너 부산이 보인다. 물금신도시와는 규모부터 다르다.
 
밤이 되면 대동면과 부산의 차이는 확연해진다. 낙동강을 가운데 두고 한 쪽(부산)은 온갖 불빛들로 환하고, 한 쪽(대동)은 컴컴하다. 두 지역의 모습은 남한과 북한 같다는 농담도 있다. 가까운 부산에 비해 개발이 안 됐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주민들도 있다. 반면 도심 가까이에서 온전히 자연을 즐길 지역이어서 감사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평촌·월촌마을 등 대동면 월촌리 일대 300만㎡ 부지에는 대동첨단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선다. 앞으로 5년, 10년 뒤에는 73번 버스의 창밖 풍경이 크게 달라져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73번 버스는 이후 안막마을을 거쳐 부산 대저동 강서고를 거쳐 구포시장으로 넘어갔다. <끝>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73번 노 선 도
여차~백학~용산~화현~매리취수장~상동매리농협~소감입구~신촌~덕산~월촌나루터~평촌~조눌~신동~안막2구~대동수문~부산혜원학교~강서구청역~북구청~구포삼거리~구포시장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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