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승국 자연과사람들 대표.

화포천습지에 2014년부터 매년 황새 '봉순이'가 날아온다. 봉순이는 왜 이곳 화포천습지를 택했을까? 그리고 왜 올해는 오지 않을까? 먼저 논 이야기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논은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한 삶과 생명의 터전이다. 수천 년동안 논은 자연이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급격하게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쌀 생산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논에는 농약과 화학비료 같은 화학물질들이 대량 투입됐다. 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콘크리트 토목공사가 마구 실시돼 논은 더 이상 생물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쌀공장'이 돼 버렸다. 그 결과 논에 살던 많은 생물들은 사라져 버렸다.
 
봉순이가 날아온 화포천습지는 하천형습지다. 길게 뻗은 하천을 따라 주변이 습지가 된 곳이다. 많은 생물들이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서식지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화포천습지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24종이나 서식하고 1만 마리가 넘는 겨울철새가 찾는 곳이 됐다.
 
화포천이 이렇게 생물다양성을 자랑하고 많은 생물이 살아갈 수 있게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화포천습지의 곁에 '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친환경 논'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포천습지의 동쪽과 서쪽에는 '퇴래뜰'과 '봉하뜰'이라는 약 40만평의 논이 있다. 이 지역은 평범한 논 같아 보이지만 사실 특별한 논이다. 2008년 귀향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환경농업을 시작한 곳이다. 봉하뜰은 10년째, 퇴래뜰은 5년째 이를 이어 오고 있다.
 
이곳의 친환경농업은 친환경농산물 생산과 소득 증대 외에 커다란 자연의 변화를 가져왔다. 논에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수많은 생물이 생겨났다. 작은 생물을 먹이로 하는 큰 생물도 차츰 늘어났다. 귀하디 귀한 황새, 수달, 매와 같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들이 하나씩 돌아왔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봉하뜰의 논에는 농약을 사용한 인근마을의 논보다 3배 이상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 그 밀도는 수십 배에 이른다. 일본의 조사에 따르면 논에 사는 생물은 7000여 종이나 된다고 하니 논은 정말 엄청난 생물다양성을 가진 곳이다. 2008년 경남 창원에서 열린 람사르총회에서는 논을 습지로 인정하자는 결의문을 채택해 친환경논을 조성하고 보존하자는 국제적 약속을 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논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사라지는 면적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공장이나 택지 도시로 변해 간다. 10년 사이에 서울 여의도 면적의 600배에 이르는 논 17만 4000ha가 사라졌다. 지난해 농업진흥구역 해제로 10만ha가 더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봉하뜰에서도 같은 이유로 논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10년동안 만들어 놓은 생명의 논이 2016년 농업진흥구역해제 정책 때문에 제초제와 매립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논을 열심히 가꾸어 왔던 농민들도 사라지고 있다. 슬프고 안타깝다.
 
논은 생명의 땅이다. 수천 년간 사람을 먹여 살리고 생명을 품어 온 땅이다. 논이 살아나지 않으면 그곳에서 살아온 생물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 이게 논이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고향인 일본에서 600㎞가 넘는 바다를 건너와 봉하뜰의 논에서 드렁허리와 미꾸라지를 잡아먹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밤을 바라보며 봉하뜰을 사랑했던 봉순이. 올 봄에는 봉순이가 화포천습지와 봉하뜰을 찾지 않았다. 농약 냄새가 싫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봉순이는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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