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인간들은 동글동글한 몸과 두 개의 얼굴, 여덟 개였던 팔다리로 빙글빙글 굴러다녔지. 그들은 힘이 엄청났고, 곧 신들을 공격하게 되었네. 그래서 제우스와 신들은 벼락을 쳐 그들을 둘로 자르게 되었지. 그러니까 인간은 본래 온전한 존재였지만, 강제로 나뉜 후 예전의 온전함을 그리워했지. 그게 바로 사랑이라네. 헤어진 반쪽을 다시 만나 온전하게 되면 비로소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게 인간이라네.'
 
이 이야기는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이 쓴 <향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반쪽을 찾아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 완전체로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겁니다. 이처럼 사랑을 찾아 짝을 짓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오랜 숙명인데, 왜 이제 와서 혼자 살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걸까요? 제우스의 저주를 딛고 드디어 인류가 반격을 시작한 걸까요?
 
사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이유를 놓고 학자들 간에 논란이 많습니다. '이게 다 저출산, 고령화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인 가구의 대다수가 독거노인이었던 시절에는 맞는 이야기지만, 지금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최근에 공감을 얻고 있는 해석이 두 가지 정도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성장으로 창출된 부와 현대 복지국가들이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 어느 때보다 혼자 살기가 수월해졌다는 뜻이죠. 이런 설명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예일대 로버트 엘릭슨(법학과) 교수가 경제수준별로 여러 나라의 가구 규모를 비교해봤는데 '일반적으로 국가가 번영할수록 가구 규모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유럽복지국가와 선진국에서 많고 후진국에서 적기는 합니다.
 
다른 하나는 전 세계에 걸친 역사적 문화변동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회학의 선구자 에밀 뒤르켐은 이 변동을 '개인주의 예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전통적인 농업공동체에서 근대 산업도시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개인이 집단보다 귀중한 위치에 올라섰다는 겁니다. 미국 뉴욕대 에릭 클라이넨버그(사회학과) 교수는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네 가지 거대한 사회적 변동이 개인이 활약하기에 좋은 여건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네 가지는 바로 여성의 지위 상승, 통신 혁명, 대도시의 형성, 엄청난 수명 연장입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최근 수많은 사람이 혼자살기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1인 가구 증가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릅니다. 2035년에는 1인 가구 비율이 34.3%까지 늘어날 전망이랍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특성을 더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혼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1인 가구는 고소득층이어서 자유와 개인의 선택을 중요시하는 매력적인 소비계층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하나의 동질성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 성·연령·소득에 따라 매우 다양한 계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이유가 자유와 개성을 만끽하기 위한 자발적 선택인 경우도 있지만, 고용불안과 취약한 생활여건 때문에 '강요된 선택'인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1인 가구의 41.1%가 빈곤가구라는 사실이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합니다.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혼자 사는 사람들 사이에도 뚜렷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혼자 사는 사람들은 '찬란하면서도 쓸쓸한 독(獨)깨비’처럼 종잡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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