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소득 사장의 손자 충의씨가 옛 경화춘 건물을 가르키고 있다.

요즘의 10대들은 상대방의 나이를 가늠할 때, 팔뚝에 새겨진 불주사 자국을 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런데, 김해에서는 불주사 자국 외에 이 어른이 세상을 좀 살았는지 어떤지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경화춘'을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 말을 듣자마자 그 어른이 무릎을 탁 친다는 그는 십중팔구 40대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김해에서 60여 년의 전통을 자랑했던 중화요리 전문점 '경화춘', 지금도 안녕하신가?
 
"아유, '경화춘'을 빼면 지난 얘기를 할 수가 없어."
 
'김해 최초의 중화요리 전문점' '김해에서 가장 잘 나갔던 음식점''화교가 직접 운영하는 중국집' 등 경화춘을 둘러싼 다양한 수식어만큼이나 경화춘엔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얽혀 있다. 최근 동상동 종로길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경화춘'이란 말 한 마디에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냈다. "사장님이 내를 얼마나 예뻐했는데. 자장면도 기가 막힜데이." "반 공일(토요일)이면 자리가 없어서 줄을 얼마나 섰는지 모른데이."
 
소매가 헤진 교복을 입고 한 달에 한 번씩 꼭 자장면을 먹었던 고등학생, 회식 자리는 늘 이 곳이었던 20대 직장인, 결혼식 피로연을 이 곳에서 한 새신랑. 그는 지금 백발이 성성한 70대 할아버지가 됐지만 경화춘을 이야기하자 어제 일처럼 50년 전 일을 쉽게 기억해 냈다.
 
그 중에서도 아내를 이 곳에서 처음 만났다는 김홍진(78·내동) 할아버지는 아내의 수줍던 그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당시 중매로 만난 아내와 자장면을 먹는데 가슴이 설렜다"면서 "지금도 아내와 싸우고 나면 이 곳을 찾아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고 고백했다. 이 어르신의 옛 동네 후배인 이민기(72·동상동) 할아버지도 "동아대 학생 시절, 부산에서 친구들을 데리고 경화춘까지 와 자장면을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화춘'은 65년 전 쯤 대만 출신 화교 곡소득 사장이 개업한 '중화요리전문점'이었다. 이 집은 김해 최초의 중국식당으로 2층 규모의 100석 이상 자리가 마련된 제법 큰 식당이었다.
 
그러나 15년 전 쯤 곡 사장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아들들이 번갈아 경영을 맡았지만 결국 10년 전 문을 닫고 말았다. 경영을 맡았던 장남 조서 씨의 건강이 나빠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 수연씨도 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수연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대신 올해 초 조서 씨는 아들 충의(31) 씨와 함께 경화춘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 '만리향'이란 이름의 손만두집을 열었다. 하지만 동상동 일대가 이미 구도심이 돼 버려 장사는 예전같지 않다.
 
지난 75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시집 온 수연씨는 당시의 경화춘은 정말 대단했다고 했다. "자장면 한 그릇 값이 당시 170원이었는데, 사람들이 항상 줄서서 먹었어요." 눈코 뜰새 없이 바빴지만 수연씨는 그 때가 더 행복했다고 말했다. 수연씨는 "그때는 손님들도 인심이 좋아 맛있게 잘 먹었다며 밭에서 수확한 호박, 직접 재배한 쌀 등을 갖다주기도 했다"며 추억에 젖었다.
 
지금도 옛 경화춘 자리에는 '경화춘'이라는 한자 이름을 단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벌써 문을 닫은 지 10년이 넘어 건물은 낡고 허름해 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경화춘 건물을 보며 늘어가는 주름에 묻힌 지난날을 떠올린다.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불주사 자국'처럼, 그들도 추억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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