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원영 대성동박물관 학예연구사.

가야는 한국고대사에서 오랫동안 서자 취급을 받아 왔다. 원인이 무엇일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로 대표되는 역사서에서 누락된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 외에도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가장 먼저 멸망한 것을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지금의 서울을 차지하지 못해 중앙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을 원인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본이 고대 가야 지역을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바람에 가야사 연구 자체를 터부시했다는 설도 있다.
 
그 누구도 지난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재평가하는 것은 언제나 후손들의 몫이다.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역사교육은 '국사'였다. 우리가 배웠던 '국사'에서는 중앙집권화가 미약해 지방세력이 득세하면 언제나 혼란스러웠고 발전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지역분권화가 대세인 현실과는 동떨어진 역사 해석에 불과하다.
 
모든 지역이 서울과 비교하면 소외되지만 그것도 나름이다. 가야와 더불어 한국고대사에서 각축했던 신라문화권 경주를 보자. 문화재청 소관사업 중 문화융성 기반 조성, 대선 지역 공약 이행, 사업 효율성 제고 등을 위해 8개 핵심과제를 재선정해서 추진하려고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을 2014년 4월 설치했다. 대통령 지방공약인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 사업을 중앙-지방 정부 협업으로 추진하기 위해 문화재청, 문체부, 경북도, 경주시에서 직원들을 파견했다.
 
2014~2025년 12년 동안 국비 6615억 원, 지방비 2835억 원 등 총사업비 9450억 원을 들인다고 한다. 신라왕경 골격 복원을 통해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역사문화 자원의 가치를 높이고, 적극적 활용기반을 구축한다는 게 목표다. 신라의 도성이 있던 월성과 황룡사, 동궁과 월지, 월정교, 대릉원 일원, 대형고분, 신라왕경 중심구역 방, 첨성대 등 8개 과제의 발굴, 복원, 정비가 주요 내용이다.
 
백제문화권은 어떨까?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시행에 따라 백제 고도 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대통령 공약사항 이행을 뒷받침하는 '백제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을 분야별로 실천하면서 신라와의 균형점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을 추진했다.
 
경주와 마찬가지로 충남도, 전북도, 부여시, 공주시, 익산시 등 5개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재청은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백제왕도 핵심유적의 체계적 정비를 통해 고도의 위상을 확립하고, 현대적 가치를 재창출하며, 3개 시·군에서 분산·관리하고 있는 백제왕도 유적의 종합적이고 일원적인 정비 계획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경주처럼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고대사에서 신라, 백제와 더불어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던 가야는 어디로 갔는가? 국내 최대 성씨를 자랑한다는 450만 후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아무리 신라와 백제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너무 지나치다는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간 가야 관련 국비 예산은 거의 지원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국가에서 수천억 원을 들여 직접 신라와 백제의 유적을 발굴하고 정비하는 데 비해 가야의 도성, 봉황동 유적은 아직 문화재구역으로 다 지정하지도 못했다. 부지 매입은 하 세월이다. 왕궁을 비롯한 도성의 실체를 밝히는 발굴비는 부끄럽게도 3년간 7억 원이 고작이다. 신라, 백제는 세계에 내어놓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면서 문화다. 그러면 가야의 가치는 그 1000분의 1도 안 된다는 것인가? 최소한 10분의 1이라도 돼야 가야에 사는 우리는 선조들에게 면목이 있을 것이다. 가야 건국 2000년이 불과 25년 밖에 남지 않은 지금 가야문화축제를 바라보는 죄인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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