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명월사 터에 자리잡은 강서구 녹산동의 흥국사 경내에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연등이 매달려 있다.


조선시대 서적, 사적비 등에 절 내력 기록
임진왜란 때 소실돼 중건됐지만 장기간 폐사
우담선사, 1942년 폐허 위 새로 사찰 지어

칠성각 건립 때 ‘사왕석’ 석탑면석 발견
양쪽 새겨진 뱀, 인도 ‘무칠린디아’와 유사

발굴조사 아직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아
대규모 개발 탓 ‘허왕후 길’도 사라질 우려



부산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현재의 흥국사는 가야불교의 연기설화와 흔적이 전해지는 옛 명월사(明月寺) 터에 자리한 사찰이다. 1989년 녹산면이 부산시에 편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곳은 다름아닌 김해 땅이었다.
 
명월사는 수로왕이 저 멀리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허왕후(허황옥)를 맞아 첫날밤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수로왕은 허왕후와 첫날밤을 보낸 산을 신령스럽게 여겨 명월산이라고 이름 붙인 뒤 신국사, 진국사, 흥국사를 창건했다. 명월사는 이 가운데 흥국사와 관련 있는 사찰이다.
 
<삼국유사> 등 고려시대 자료에는 옛 명월사 관련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현재의 흥국사에 있는 명월사 사적비, 신어산 은하사의 '서림사(은하사의 옛이름) 취운루중수기 현판' 등에서 내력을 발견할 수 있다.
 
1481년 만든 <동국여지승람>을 개수·증보해 1530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김해도 호부조'에는 '명월산에 명월사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명월사 사적비'에는 '명월산이 김해부 남쪽 40여 리에 있다'고 쓰여 있다. 이 사적비는 1708년(숙종 34년) 승려 증원이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수로왕과 허왕후 이야기뿐 아니라 명월사의 내력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내용은 이렇다.
 

▲ 흥국사 극락전에 안치된 수로왕-허왕후 영정과 사왕석.

'수로왕은 한나라 건무 18년(42년) 분성에 도읍을 세운 뒤 국호를 가락이라 하고, 바다에서 오는 왕비를 이곳 명월산에서 맞이했다. 다음날 가마를 함께 타고 궁전으로 돌아오다가 왕후가 입었던 비단바지를 벗어 폐백 삼아 산신령에게 예물로 드렸다. 왕도 그 신령함에 감동하여 산 이름을 명월산이라 했다. 뒤에 세 절을 지어 신국사, 진국사, 흥국사라 하여 '국' 자를 썼다. 영원히 나라의 융성을 비는 장소가 되었다. (중략) 산 아래에 부인당과 옥포가 있다. 왕후는 서역국(인도)의 왕녀로서 바다를 건어 왔고, 여기에 배를 매었으므로 저절로 기이한 행적이 많았으나 지금 생략한다.’
 
1812년 만들어진 '서림사 취운루중수기 현판'에는 “세상에 전하기를 가락왕비 허후가 천축국에서 올 때 그 오빠 장유화상도 함께 왔다고 한다. 천축은 본래 부처의 나라다. 왕이 명하여 은하사와 명월사 등의 절을 세우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부산시가 정리한 <부산향토문화백과>에 따르면 명월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광해군 때인 1618년 중건됐다. 이후 한동안 폐사됐지만 신도로 추정되는 김삼두가 옛 터를 찾아 방치된 유적을 일부 수습했다. 지금의 흥국사는 1942년 우담선사가 폐허 위에 새로 지은 절이다. 원래 극락전이 본당이었지만 15여 년 전 대웅전을 지었다. 지금은 칠성각, 종각, 요사채 등도 있다. 대웅전 인근에는 조선시대 승려 증원이 세운 '명월사 사적비'와 1956년 김해김씨 녹산종친회가 건립한 '가락국태왕영후 유허비'가 있다.
 
명월사는 허왕후 및 가야불교의 도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멀리 인도 천축국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뒤 망산도에서 피운 횃불을 표식 삼아 가락국에 도달한 허왕후 일행이 주포(현재 진해 용원)에 닻을 내린 후 명월사를 거쳐 당시 가락국의 왕도로 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해평야와 용원 등 가락국의 저지대가 바다였을 때 명월사 일대는 주변보다 높은 지역이었다. 흥국사의 주지 서봉스님은 "인도 공주가 배를 타고 포구에 닿은 뒤 산을 넘어왔다. 가락국 수로왕이 이 소식을 듣고 공주를 영접하러 갔다. 그날은 마침 그믐이었다. 두 사람은 첫날을 같이 보냈다. 허왕후의 환한 얼굴이 달 같이 주변을 비춰서 이곳을 명월산이라 불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는 부산경남경마장으로 가는 길에 새산마을이 있었다. 어릴 적 그곳에서부터 하천 옆 둑길을 걸어 다녔다. 흥국사로 올라오는 돌길도 있었다. 허왕후 일행은 용원 포구에서 보배산을 넘어와 명월사로 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허왕후가 걸었다는 '허왕후길'. 인근의 산단 개발 탓에 없어질 위기에 몰렸다.

명월사 사적비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옛 명월사는 가락국 초기에 세워졌고, 불교 첫 전래는 가야로부터 시작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명월사가 가야불교와 관련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요 근거는 '사왕석'의 존재다. 1956년 흥국사 칠성각을 건립할 때 '간지'가 새겨진 기왓장과 화강암제 석탑 면석이 출토됐다. 석탑 면석은 '명월사 사왕석'이라고 불린다. 높이 52㎝, 폭 74㎝, 두께 15㎝다. 마모가 심해 선명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양식이다. 석탑 면석 중앙에는 석불 좌상, 양쪽에는 뱀이 양각돼 있다. 삼매경에 빠진 부처를 한 마리의 뱀이 싸안고 있는 형상이다. 석탑 면석은 10여 년 전 대웅전 신축에 앞서 본전 역할을 했던 극락전에 안치돼 있다.
 
조은금강병원 허명철 이사장 등 재야사학자들은 석탑 면석의 뱀 조각을 인도 야요디아에서 볼 수 있는 '무칠린디아'라고 하는 사왕(蛇王)과 같다고 본다. 또 사왕이 열반 속에 잠겨 있는 부처를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근거로 가락국과 인도 아유타국의 문화 교류라든지, 북방 불교에 앞서 남방 불교의 유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서봉스님은 사왕석이 우리나라 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0년 전 문화재 관련 교수에게 국가문화재 지정이 가능한지를 물어봤다. 돌이 우리나라에서 나온 게 아닌 것 같아 (문화재 지정이) 어렵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1983년에는 절터에 모셔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금동여래입상 1구가 출토됐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서봉스님은 "첫 주지인 우담선사가 창건했을 당시 이곳은 폐허 그 자체였다. 완전 자갈밭이었다. 예전 절자리에서 청동불이 나왔다. 지금 대웅전 자리도 원래 언덕이었다. 그곳에 비석 몇 개가 세워져 있었다"고 말했다. 
 
가야불교에 관심이 커지면서 흥국사에도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한 사찰 관계자는 "오늘도 김해허씨 종친회 70여 명이 김해 구산동 허왕후릉에 들렀다가 흥국사에도 왔다. 사월초파일 앞뒤로 해서 김해허씨, 김해김씨 문중에서 한 번씩 들른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허왕후에 얽힌 절의 유래를 보고 찾아 오는 사람들도 있다. 자녀들과 함께 역사 공부를 겸해 오는 젊은 가족들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쉽게도 명월사 터 발굴조사는 아직 한 번도 실시된 적이 없다. 다만 1992년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가 강서구 녹산문화유적 학술조사를 실시할 때 일부 내용이 포함됐고, 2006년 부산시와 한국민족문화연구소가 부산 문화유적 분포지도를 작성할 때 이곳의 지표 조사를 실시한 게 전부다.
 
부산대 백승충(역사교육학과) 교수는 "흥국사 주변 일대가 과거 명월사 터였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옛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현재 흥국사 경내를 제외한 주변 지역은 모두 과수원이다. 지표에는 초석으로 생각되는 많은 돌들이 그대로 방치되는 실정"이라고 아쉬워했다.
 
흥국사 주변은 지금 대규모 개발로 과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흥국사에 가려면 대형트럭들이 무섭게 질주하는 '험한 도로'를 따라 달려야 한다. 대로변에서 흥국사로 들어가는 갈림길에 접어들면 대형공사 현장이 나타난다. 총면적 50만 6천238㎡ 규모의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명동지구 조성 공사장이다. 산 정상에서는 레미콘을 만드는 석산 개발이 한창이다. 허왕후 일행이 산을 넘어왔다는 명월산 정상에는 대형송전탑이 지난다. 인근에는 지사과학단지가 생겼고, 녹산의 19개 마을 가운데 16개 마을이 없어졌거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흥국사 초입에 있던 30가구 규모의 명동마을 주민들도 보상을 받은 뒤 대부분 이사를 갔다.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허왕후와 장유화상이 바다에서 내려 가락국으로 들어왔다고 하는 길조차 없어질지 모른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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