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2명, 노인 가정 84곳 방문
사회적 방치돼 일상생활 영위도 어려워

중국 출신 조선족 부부에게 자식 같아
자살 시도 어르신 통화하며 눈물 바다

사고로 다친 ‘폐지 할머니’ 안타까움만
감기 걸린 할아버지에 무료약국 큰 힘


 


 

▲ 김기철·정미영 씨가 서경희 요양보호사를 배웅하고 있다.


"아이고 우리 딸 왔나. 금요일인데 왜 소식이 없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앉아라. 뭐 좀 주꼬?"
 
동상동전통시장 내 한 아파트. 김기철(77·가명), 정미영(72·여·가명) 씨가 서경희(45·여) 요양보호사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이거 한번 먹어봐라. 집에서 재배한 토마토인데 맛있다." 정 씨가 반가운 마음에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한 접시 가져 온다. "엄마, 얼굴이 참 좋아졌네요. 몸은 좀 어떠세요?" 서 보호사가 정 씨의 꼼꼼히 얼굴을 살피며 건강을 챙긴다. 꼭 자식과 부모 사이 같다.
 
'서경희 요양보호사 금요일마다 온다.' 정 씨의 방문 오른쪽에 서 보호사의 전화번호와 함께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투박한 글씨에서도 그를 기다리는 김 씨와 정 씨의 마음이 묻어난다. 두 사람은 2006년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향한 이른 바 조선족이다. 두 사람의 부모는 한국전쟁 이후 먹고 살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 지린성에 정착했다. 두 사람은 '죽기 전 고향 땅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 김해에 정착했다. 서로를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김해시노인봉합복지관 노인통합지원센터에서 매주 찾아오는 서 보호사는 딸 같은 존재가 됐다.
 
정 씨는 "고향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김해를 찾았다. 자식 같은 사람이 매주 와서 안부를 물어주고 건강도 챙겨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서 보호사를 쳐다본다.
 
노인통합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서 보호사는 동상동, 회현동, 북부동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의 '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 보호사는 "남편이 저보고 '대한민국 어르신들은 모두 당신 엄마, 아빠'라고 말한다. 엄마, 아빠가 많아서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노인통합지원센터는 지난 1월부터 동상동, 회현동, 북부동 등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 가정 84곳을 방문하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밑반찬을 배달하고 김장김치도 전달한다. 어르신이 외롭게 생일을 보내지 않도록 생일잔치도 연다. 경제적인 이유로 남들처럼 외식 한 번 하기 어려운 어르신들과 함께 외식도 하러 간다. 센터의 요양보호사는 단 2명. 보호사 1명이 하루 4~5곳을 방문한다. 이들은 배우자와의 사별, 자식의 무관심 등 때문에 방치됐거나, 정신적·신체적인 이유로 일상생활을 꾸려 나가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든든한 지원군이다.
 
지난해 경남재가복지시설의 현황 자료에 따르면, 김해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모두 4만 5896명이다. 노인통합지원센터, 동부노인통합지원센터, 보현행원노인통합지원센터, 김해생명의전화노인통합지원센터, 조은재가노인복지센터, 효능원노인통합지원센터 등 여섯 곳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장기요양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중에서 형편이 특히 열악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한다. 지원 대상은 총 541명이다.
 
노인통합지원센터 김선진 팀장은 "다양한 이유로 집에만 있는 어르신들이 많다. 어르신들에게는 삼시세끼를 챙기고 여가를 즐기는 평범한 일상도 사치다. 안부전화 한 통, 따뜻한 밥 한 끼 챙겨 드리기 등을 통해 좀 더 나은 일상을 누리게 해 드리는 게 센터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서 보호사가 박진규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엄마, 다음 주에 또 올게요." 서 보호사의 인사를 받은 김 씨와 정 씨는 환하게 웃으며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배웅했다. 김 씨 집을 나선 서 보호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동상동전통시장과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박진규(84·가명) 씨의 집을 찾았다. 방 한 칸뿐인 낡은 집이다. 미닫이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방에서 박 씨가 TV를 시청하고 있다.
 
"짠, 아버지 저 왔어요." 서 보호사가 씩씩하게 인사를 건넨다. 박 씨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서 보호사가 챙겨온 밑반찬을 꺼내며 안부를 물었다. 박 씨는 "감기에 걸렸는데 통 나을 생각을 안 한다. 비가 오는 날은 꼼짝 하기도 싫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에게 보호사가 매일 전화해 주니 참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에는 자살을 시도했다. 박 씨는 "기초수급생계비 등 정부 지원금이 월 48만 원이다. 이중 월세 15만 원, 전기세 등을 내고 나면 한 달 생활비는 고작 20만 원 정도다. 멀리 있는 자식은 어떻게 사는지 연락도 없다"며 씁쓸해했다. 서 보호사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정신 안정제를 먹었던 날, 통화를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버지, 이제는 그러지 마세요. 약속하세요"라고 당부했다.
 

▲ 서 보호사가 이순자 씨 종이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서 보호사는 이어 동상동전통시장 인근에 사는 이순자(75·여·가명) 씨 집을 찾았다. 그의 집은 문이 열린 채 비어 있었다. 서 보호사가 전화를 걸자 '폐지를 줍고 있다. 곧 집으로 가겠다'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린다. 서 보호사는 "엄마, 어딘가요, 제가 갈게요"라며 이 씨를 찾아 나섰다. 거리에서 만난 두 사람은 골목길을 걸어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서 보호사는 이 씨의 종이상자를 대신 들었다.
 
이 씨는 폐지를 줍고 거리를 청소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달 폐지를 줍다 교통사고로 발을 다쳤다. 그래도 생계를 위해 폐지 줍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그는 "매일 오전 10시 동상동 새마을금고 일대에서 청소를 한다. 쓰레기를 정리해 주고 새마을금고로부터 매달 5만 원을 받는다. 쓰레기 정리를 한 뒤 동상동을 돌며 폐지를 줍는다. 예전에는 활천동까지 갔다. 요즘은 발을 다쳐서 거기까지 못 간다. 요즘은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술병도 많이 안 나온다. 이래저래 힘들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김선진 팀장은 "동상동, 회현동 일대에는 폐지를 줍는 어르신이 많다. 그렇게 번 돈 한 푼이 아까운 어르신들 보면 항상 마음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 김진우 씨가 동인당약국에서 몸 상태를 상담하고 있다.

서 보호사가 운전대를 잡고 동상동 롯데캐슬아파트 인근 주택가로 향했다. 한 원룸 앞을 지나던 서 보호사가 차량 창문을 내리고 "아버지, 타세요"라고 소리친다. 김진우(73·가명) 씨가 차에 올라타자 술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버지 오늘 술 마셨어요?." "응, 날씨가 추워서 한 잔 했다." 김 씨는 매일 오전 4시~오후 1시 부원동 새벽시장을 돌며 폐지를 줍는다. 이날 비 예보가 있었지만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김 씨는 부원동에서 동상동까지 비를 맞은 채 걸어왔다고 한다. 그는 "오늘 폐지 팔고 3000원 받았다. 이 돈 갖고 택시를 탈 수 없어 비를 맞고 집까지 걸어왔다. 그러다 보니 몸이 너무 추워서 1300원 주고 소주 한 병 사서 마셨다. 이제 비오는 날에는 폐지 주우러 나가면 안 되겠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약값이 더 들겠다"고 말했다.
 
김 씨를 태운 차량은 외동 동인당약국 앞에 섰다. 동인당약국과 소나무약국, 참사랑약국은 지난해 7월부터 한 달에 한 번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 3명에게 파스, 비타민 등 필요한 약품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김 씨는 약사에게 "요즘 피곤하다"고 말했다. 약사는 두 달치 비타민을 김 씨의 손에 쥐어 주었다.
 
김선진 팀장은 "약국뿐만 아니라 올타미스터스시, 목촌돼지국밥 등 음식점에서 매달 무료로 외식을 지원해 주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살피는 마음들이 불꽃처럼 지역 곳곳에 번져 이웃들이 더불어 사는 김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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