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대비 편익’ 논리 꼼꼼 지적
‘베풀며 함께 살자’ 공감 가는 제안



1980년대 초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시장 개혁을 추진하며 오래된 공공주택 상당수를 개인에게 매각해 버렸다. 주택을 개인 소유로 바꾸면 집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알아서 리모델링을 해 주변을 깨끗하게 정비할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이런 주택 사유화 정책 덕분에 정부는 관리 부담을 덜었지만, 이후 영국민들의 삶의 근간이 흔들리게 됐다. 주택 부문에 시장 논리가 확산하면서 한 세대만에 영국 부동산이 투기의 장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노르웨이의 어업 분야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대구 어장이 황폐화하자 정부는 어획량 쿼터제를 도입했다. 마을 단위에서 개인 단위로 쿼터제가 진화하는 바람에 어부들은 물고기 사냥꾼이 아니라 어획량 거래자로 변해 버렸다. 어부 입장에서는 굳이 거친 북해에서 사투를 벌일 필요 없이 값을 잘 쳐 주는 대형 어선에 어업권을 팔아 버리면 그만이었다. 노르웨이 민족의 정체성을 이루던 전통적인 어부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영국의 경제학자 필립 로스코는 <차가운 계산기>에서 경제학이 일상 곳곳에 침투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켰는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설명한다. 로스코는 쇼핑, 주식, 주택 등 이미 시장의 논리가 일반화한 분야는 물론 교육, 연애와 결혼, 의료와 생명 등 인간의 내밀한 일상과 존엄의 영역까지 '비용 대비 편익'의 논리가 깊숙이 파고든 현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요즘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의 짝짓기 과정은 쇼핑과 유사하다. 가입자들은 직업, 외모, 연봉 등으로 순위를 매기고 '가성비'가 가장 뛰어난 '상품'을 선택한다. 사랑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던 반려자와의 인간 관계가 '결혼의 경제학' 탓에 시작부터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이로 변질된 셈이다.

1970년대에 이미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사람의 목숨값까지 '비용 대비 편익'으로 따질 정도였다. 석유 파동으로 기름값이 치솟자 경차 '핀토'를 출시한 포드사.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연료탱크의 구조적 위험성을 알게 됐지만 리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사망자 보상비보다 연료탱크 수리비가 훨씬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1973년 포드사의 두 엔지니어는 차량 1250만 대를 보수하는 비용이 1억 3700만 달러인 반면, 예상되는 사망자와 화상 피해자(각 180명)의 보상비는 5000만 달러가 채 안 된다고 분석했다. '그러시/사운비 보고서'로 알려진 악명 높은 이야기다. 

1993년 제너럴모터스도 충돌 화재에 취약한 차체 구조를 알았지만 인명피해 배상금과 제조 비용을 계산한 뒤 그대로 뒀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나 큰 비난을 받았다. 이 회사는 결국 수십억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로스코는 이 같은 '차가운 계산'이 기업 활동은 물론 사회 전 분야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개인의 삶까지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이 현상을 분석하는 학문의 울타리에서 뛰쳐 나와 모든 대상에 가격을 매기고 비용과 편익을 따지는 경제 논리를 전파하면서 전 세계를 디스토피아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비용-편익'을 당연시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일부 정치인들은 막대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세월호 인양에 반대해 왔다. 미수습자 가족들의 상실감 치유, 진상 조사를 통한 재발 방지와 안전사회 건설 등 인도적·사회적 가치는 저들의 계산기 속에 없다.

'인생에 경제학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너그러운 인생을 살자. 사람들에게 베풀며 함께 웃으며 살자. 삶에 기쁨과 사랑이 넘치도록 하자. 그렇게 더 부유해지자.' 너무 당연해서 더 와 닿는 로스코의 제안이다. 다들 마음 속에 하나씩 품은 '차가운 계산기'는 이제 경제학자들에게 돌려주자. 김해뉴스

부산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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