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육아’ 내세워 인기몰이
어린이 방치 알려지며 거센 비난

영·유아 치료선택권 박탈은 위험
필수예방접종, 기본약 기피 안돼

“국내 의료환경 반성 계기” 지적
병원 지나친 상업주의에 큰 불신
국민들 성급한 의료 욕구도 문제



최근 회원이 6만여 명에 이르는 인터넷 카페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가 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카페는 자연주의 육아를 표방해 왔다. 자연적으로 면역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면서 항생제 등 약을 사용하지 않거나, 백신 예방접종 없이 자녀를 키우라고 권장했다. 이러한 자연주의 치료법은 아토피를 앓거나 백신에 과민반응이 있는 자녀를 둔 일부 부모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자연 면역력'을 내세워 현대의학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 카페는 수두에 걸린 어린이와 함께 놀게 하는 '수두 파티'를 열거나, 중이염에 걸린 아이에게 '간장 가글'을 권하기도 했다. 자녀가 고열, 심한 붓기 등 증상에 시달려도 참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모들이 심한 부작용에도 자녀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하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이 일었다.
 
결국 지난 2일 운영자는 "오해와 비난이 커져 카페를 유지할 경우 회원들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며 카페 폐쇄를 공지했다. 보건복지부는 카페 운영자가 의료법을 위반한 점은 없는지를 따져 고발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아키 카페 사태와 관련, 의사들은 치료의 선택권이 없는 영·유아의 건강을 전문 의료 지식이 없는 부모가 전적으로 결정하려는 태도는 자칫 2차 감염, 합병증 유발 등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해중앙병원 소아청소년과 박진석 과장은 "어른의 경우 몸 상태를 파악해 직접 치료를 선택할 수 있지만, 영·유아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위험하다. 작은 질환도 큰 병으로 전이시켜 수술을 해야 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 김해중앙병원 소아청소년과 박진석 과장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한정실소아과의 한정실 원장은 "필수 예방접종이나 기본적인 약을 기피하는 태도는 아이를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 영아는 생후 3개월이 지나면 엄마에게서 받은 면역수치가 낮아지기 때문에 병치레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영아에게 백신이나 약은 군인으로 비유하면 적에 맞서는 무기와 같다. 그런데 자기면역력을 길러야 한다며 약이나 백신을 외면하는 것은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산을 넘어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안아키 카페 논란을 계기로 우리나라 의료환경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은 병원들이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과도한 치료와 처방을 하는 건 아닌지 하는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의약품 소비가 외국에 비해 많고, 심한 증상이 아닌 경우에도 병원을 찾는 비율이 높다는 점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매년 의약품을 남용하지 않고 적정하게 처방하는 '그린처방의원'을 선정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전문 분야인 의료를 다른 서비스와 똑같이 생각해 신속하게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국민들의 성급한 인식도 진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강춘화여성의원의 강춘화 원장은 "감기의 경우 교과서적 진료는 우선 보조 요법을 쓰고, 약한 약부터 순차적으로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질환을 빨리 치료하기 위해 처음부터 강한 항생제를 처방한다. 항생제도 단계별로 나눠진다. 1세대를 써야 할 상황에서 2, 3세대 항생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효과는 금방 나타나겠지만 환자에게 약제 내성이 생겨 나중에 심한 질환에 노출됐을 때 더 높은 단계의 항생제를 써야 한다. 교과서적 치료에 좋은 점이 많지만 기간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찾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안아키 카페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의료진, 환자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상호 신뢰가 회복돼야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는 게 의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정실 원장은 "일부 환자의 경우 의사의 전문성을 믿지 못하고 인터넷 등에서 얻은 정보를 더 신뢰한다. 의료의 특성상 다른 서비스처럼 환자의 입맛을 일괄적으로 맞춰 줄 수는 없다. 며칠분 약을 처방해 준 뒤 상태를 보고 다시 오면 그때 맞는 처방을 해 주겠다고 하면 '다음에는 바빠서 오기 힘들다. 한 달치 약을 다 달라'는 환자도 있다. 의료를 쇼핑처럼 생각하는 인식이 있는 상황에서 환자와 소통하면서 개인 특성에 맞는 진료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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