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문학 대표 문호 이색 주장
음식·성의 매혹적 이야기 현란




채소를 다질 때 뚝뚝 끊어지는 칼의 리듬, 국물이 끓을 때 보글거리는 소리, 씨앗을 절구에 넣고 빻는 소리, 양파를 볶을 때 기름이 튀는 소리…. 음식을 만들 때 나오는 소리들이다. 이 소리가 색욕을 자극한다고? 다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프로디테-감각의 향연>의 저자인 이사벨 아옌데(75)는 "음식을 만들 때 나는 이 소리도 에로티시즘적이다"고 강조한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이냐"라고 반응할 수도있지만, 한참 책을 읽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며 생각이 바뀐다. 그래서 지그시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본다.

남미의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아옌데가 이런 책을 썼다는 게 눈길을 끈다. 그는 <운명의 딸>, <세피아빛 초상> 등 가슴 아픈 칠레 현대사를 온몸으로 극복하며 상처 많은 세월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내 세계적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 책은 음식과 에로티시즘을 절묘하게 연결짓는다. 아니 절묘하게 버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출발이자 끝은 음식이 갖는 '최음제' 효과다. 아옌데는 세상의 모든 식재료에는 무한한 쾌락을 안겨주는 최음제가 담겨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북받치는 감정과 사랑하는 사람의 욕망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음제는 영어로 '애프러디지액(aphrodisiacs)'이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에서 따온 말이다. 그래서 책 제목에 '아프로디테'가 들어갔다.

아옌데에게 최음제는 특별한 게 아니다. 그가 1년여에 걸친 문헌 탐색과 현장 실사를 통해 내린 결론은 '우리가 일상에서 섭취하는 대부분의 음식에는 최음제 효능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과거 오스만투르크의 지배자 술탄이 매일 먹었던 가지는 가장 좋은 최음제로 여겨졌다. 오늘날에도 터키의 솜씨 좋은 부인들은 가지 요리를 적어도 50가지 이상 만들 수 있다. 그들은 이 채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상에서 접하는 커피나 초콜릿은 물론이고, 꿀, 가리비, 굴, 홍합, 와인, 샴페인, 복숭아, 자두, 허브 심지어 수프도 최음제의 범위에 들어간다.

버섯의 하나인 송로는 특히 역사가 인정한 최음제다. 송로의 강한 향을 한번 맡기만 해도 사랑의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은 침실에서 황후 조세핀과 사랑을 나누기 전에 송로를 먹었다. 프랑스의 국왕 루이 14세는 은밀한 사랑의 순간 송로를 애용했다고 한다.

아옌데는 최음제로 간주되는 수많은 물질을 '향기롭고, 떫으면서도 톡 쏘는 맛이 있거나 싱싱하다'고 표현한다. 음식에 섹시한 이미지를 잔뜩 뿌려놓고 사랑의 욕망을 한껏 자극한다고나 할까? 이쯤 되면 '맛있는 음식은 섹시하다'라는 말이 가슴 속에 확 와 닿는다.

최음제 강의는 음식에서 멈추지 않는다. 육체적인 사랑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게 최음제가 될 수 있다. 요컨대 레이스 달린 속옷, 장밋빛 조명, 목욕용 향염 등. 일부 최음제는 유추만으로도 그 효과를 낸다고 한다. 이를테면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와 유사하게 생긴 복숭아나 자두, 남근처럼 생긴 아스파라거스 등이다.

"남자는 어떨지 모르겠다. 여자들은 마음을 주고받는 '공감'이란 필수 요소가 없다면, 어떤 최음제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 공감이 완벽의 경지에 이르면 곧 사랑이 된다." 아옌데의 말이다. 그는 진정으로 확실한 최음제는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타오르는 열정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성경을 비롯해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 그림, 시 등을 인용하면서 음식과 성(性)을 감각의 세계로 엮어가는 저자의 입담은 현란하다. 마치 느긋하게 유혹하는 연인처럼 음식과 성의 매혹적인 이야기와 전설들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때론 더듬고 자극한다. 동시에 지적이면서 문학적인 향취까지 풍긴다.

부산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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