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곡동에 사는 중·고교생들이 학교수업을 마친 뒤 장유터널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4시 30분. 수업을 마친 중·고교생들의 하교시간에 맞춰 장유터널로 갔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굳게 입을 다문 채 장유터널을 빠져 나왔다. 자동차들은 그 뒤를 따라 전조등을 반짝이며 터널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오후 5시 30분. 1시간 동안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은 총 45명이었다. 학생 40명, 시민 5명이었다. 마스크를 낀 학생은 2명 뿐이었다. 마스크를 끼지 않은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잊어버리고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학생들과 함께 걷던 박 모(66·여) 씨는 "터널 입구에서 말하지 말고 얼른 뛰어 나가"라며 재촉했다. 터널 입구에 서 있었는데도 목은 따갑기 시작했고, 코는 먼지로 가득 찬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니 한 달 전 풍경이 떠올랐다.
 
지난달 4일 오전 8시 장유터널 앞은 부산했다. 경남도교육청 박종훈 교육감, 장유출장소 공무원, 김해시의회 의원 등은 물론 카메라를 든 언론사 기자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박 교육감 등은 능동중 학생 30여 명과 함께 부곡동에서 장유터널을 거쳐 능동중까지 약 1㎞를 걸었다(<김해뉴스> 지난달 12일자 2면 보도). 3월 15일 <김해뉴스>가 '학생들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버스를 타는 대신 거리가 짧은 장유터널을 걸어 학교로 간다. 건강이 걱정된다'고 보도한 내용을 보고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장유터널 걷기 행사를 치른 도교육청과 김해시는 학생들의 통학 대책 마련을 고민했다. 도교육청과 김해교육지원청은 자체예산을 들여 근본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등교시간에 3차례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는 '발로 뛰는 현장 행정, 장유터널 통학환경 현장 확인 대책 강구'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허성곤 시장이 직접 통학현장을 확인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시가 내놓은 대책은 3가지였다. 버스 증차, 터널 내 기계환기시설 설치, 터널 내 보행터널 설치였다. 
 
하지만 시는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장유출장소 관계자는 "하루 장유터널을 오가는 학생은 40~50명밖에 되지 않는다. 보행터널 설치에 10억 원, 유지비로 1억 원이 든다. 이게 과연 효율성이 있는지…"라며 말을 줄였다.
 
학생들은 등교할 때에는 그나마 도교육청이 마련한 셔틀버스 덕분에 미세먼지를 마시지 않고 장유터널을 지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하교시간은 달랐다. 셔틀버스 운행은 쉽지 않았다. 예산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능동중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70여 명이 등·하교 셔틀버스 운행을 원했다. 그러나 예산이 문제였다. 없는 돈을 만들어 서둘러 셔틀버스를 마련했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장기적으로 셔틀버스를 운영하려면 등교시간에만 운행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장유터널로 하교하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매번 막을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창원시와 김해시에 버스 노선 조정을 요구했지만 창원시가 안 된다는 대답을 내놨다고 한다. 김해시는 보행터널 설치 비용과 유지비를 부담스러워한다. 버스 노선만 조정하면 해결될 일을 경제성 논리만 따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장유터널 길이는 총 380m. 터널을 빠져 나오려면 성인 걸음으로 평균 5분 16초가 걸린다. 터널 안 미세먼지 농도는 최고 87㎍/㎥에 이른다. 우리나라 미세먼지 농도 한도인 50㎍/㎥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다. 미세먼지는 고혈압, 심근경색, 파키슨병, 치매 등을 유발한다.
 
김해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허성곤 시장 인사말에는 '김해시는 '사람'보다 우선적인 가치는 없다는 일념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 중심의 도시'로 항해하고 있다'라고 돼 있다. 이 글과 '40~50명을 위해 10억 원을 써야 하느냐'는 공무원의 생각 가운데 어느 게 시의 진짜 가치관일까.
 
장유터널에서 빠져나온 학생들은 이렇게 말하며 울상을 지었다. "목이 너무 따가워요. 언제까지 터널로 다녀야 해요?" 이렇게 대책 마련을 미적거리기만 한다면 학생들은 내일도, 모레도 미세먼지가 풀풀 날리는 장유터널 안을 걸을 수밖에 없다. 또,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아니 10년 후에도 학생들은 계속해서 같은 고통을 이어갈 수 밖에 없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