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출신 작가의 자전적 소설
“히로시마 피해 부친과의 화해”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히로시마는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중략) 일본 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해방된 조국에서는 동포들이 해방의 감격에 취해서 거리로 뛰쳐나와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을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은 지옥의 한가운데를 헤매고 있었다. 생지옥이었다.'

200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에 이어 같은 해 소설 '너의 이름은 희망이다'로 제12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옥숙(49) 작가. 그는 대구에서 활동하다가 2015년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뒤 첫 장편소설 <식당사장 장만호>를 내놓았고, 2년 만인 최근 두 번째 장편소설 <흉터의 꽃>을 다시 발간했다.

<흉터의 꽃>은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아픔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자전적인 요소가 더해졌기에 소설에 담긴 역사는 더욱 비극적이다. 경남 합천이 고향인 작가의 아버지는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10년간 그곳에서 살았다. 하지만 선친은 태어난 곳이라는 사실 외엔 히로시마에 대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김 작가는 "철모르던 시절 늘 술만 마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원망스러웠고 싫었다. 하지만 원폭 피해 관련 자료를 모으면서 비로소 선친도 역사의 희생자였던 사실을 깨달았다"며 "선친도 나름 꿈과 목표가 있었을 텐데, 어이없는 참상에 얼마나 분노스러웠겠는가. 소설을 준비하는 과정은 실존을 자각하는 기회이자 선친과의 화해"라고 말했다.

2년 가까이 관련 자료를 모으고 피해자를 만나던 김 작가는 지난해 히로시마를 방문하기도 했다.
김 작가는 "아름다운 고향 합천을 언젠가 글로 담아낼 계획이었다. 원폭 피해를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고향에 유유히 흐르던 기억 속 아름다운 황강은 역사의 깊은 생채기였다. 가슴 아픈 고향의 역사를 다룬 것은 일종의 부채의식"이라고 말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묻혀 외면받은 삼대에 걸친 한 많은 삶이 폐부를 후벼 판다.

책을 쓰기 위해 원폭 피해자 인터뷰에 나선 정현재가 펼쳐내는 이야기도 마찬가지.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원폭 피해를 알려온 한국인 원폭 피해 2세 고 김형률 씨 등 실존했던 인물도 등장한다. 김 작가의 삶과 맞닿은 듯한 정현재의 행보에 한참 시선이 머문다.

김 작가는 인세의 30%를 한국 원폭 2세 환우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처절한 삶을 살아낸 분희가 흉터라면, 원폭 피해를 전면으로 알려내고 있는 인옥은 꽃입니다. 원폭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지만, 생명을 보듬으며 버텨나간 이들. 원폭 피해는 영원히 기억되고 치유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부산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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