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악가 조수미(왼쪽) 씨가 휠체어 그네를 타는 장애어린이를 보며 기뻐하고 있다.

 

 성악가 조수미 씨 전국 기증 불구
‘과태료’ 우려 때문 모조리 철거
 놀이기구 인증 놓고 각 기관 이견




'성악가 조수미 씨, 장애어린이들에게 휠체어 그네 기증. 아일랜드 제작업체에 특별 주문.'
 
2014년 12월 19일, 놀이기구 제작업체 보아스코리아의 김종규 대표는 인터넷에서 기사 하나를 봤습니다. 성악가 조수미 씨가 장애어린이들을 위해 휠체어 그네 2대를 서울 푸르메재단에 기부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휠체어 그네는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 채 이용할 수 있는 그네입니다. 2011년 호주에서 휠체어 그네를 본 적이 있는 조 씨가 아일랜드 회사에 직접 주문해 제작했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김해에서 2007년부터 보아스코리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휠체어 그네를 제작해 한국에 들여왔다니,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조 씨의 선행이 담긴 기사를 읽은 그는 휠체어 그네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끝에 마침내 휠체어 그네 만들기에 성공했습니다.
 

국내에서도 휠체어 그네를 제작했다는 소식은 조 씨에게 전해졌습니다. 조 씨는 휠체어 그네 1대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해 2015년 12월 경남의 장애어린이들에게 기증했습니다. 휠체어 그네는 창원의 장애인거주시설 '풀잎마을'에 설치됐습니다. 이후 경남도교육청에서도 휠체어 그네 2대를 만들어달라고 해 진주 혜광학교, 창원 천광학교에 설치했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조 씨가 다시 휠체어 그네 1 대를 더 만들어달라고 해 세종특별자치시의 공립특수학교인 누리학교에 기증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의 한사랑학교가 휠체어 그네 1대를 구입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보아스코리아가 만든 휠체어 그네 5대가 전국에 설치됐습니다.
 
휠체어 그네를 처음 타 본 장애어린이들은 세상을 다 얻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모들을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한 장애어린이 부모는 김 대표에게 "아이가 비장애인처럼 그네를 타는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너무 기쁘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그때 깨달았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기쁨일 수 있구나"라고 말입니다.
 
"휠체어 그네를 철거해 가세요."
 

▲ 놀이이구 제작업체 보아스코리아가 제작한 휠체어 그네.

그런데 지난 3월 말. 휠체어 그네를 설치했던 학교에서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전행정부의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검사기관인 ㈔한국장애인이워크협회 한국시험검사기술원의 검사원이 '휠체어그네가 놀이기구 안전검사 대상이 될 수 있다. 휠체어 그네는 검사를 받지 않은 상태여서 2년마다 한 번씩 실시되는 '놀이터 안전 정기검사'에서 과태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인증을 받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타당한 견해라고 생각해 전국에 설치한 휠체어 그네를 모두 철거했습니다. '휠체어 그네를 정식 놀이기구로 인증받아 장애어린이들이 언제나 마음 편하게 탈 수 있도록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안전하고 튼튼한 휠체어 그네를 만들어 지난달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 안전인증 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원에서는 '인증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측은 "우리나라에는 휠체어 그네 등 장애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 시설·기술 기준이 없다. 휠체어 그네를 어린이놀이 시설·기술 기준에 적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증기관이지 제도 마련 기관이 아니다. 그래서 휠체어 그네를 인증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대표는 그래서 국민안전처,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장애인 놀이기구 인증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지난 16일 '휠체어 그네는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의 안전인증대상 어린이 놀이기구가 아니다. 검사 대상이 아니다. 설치검사 및 정기시설 검사 등의 의무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보냈습니다.
 
김 대표는 휠체어 그네를 둘러싼 각 기관들의 오락가락한 견해 때문에 난감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증을 받는 것이지만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서는 못 해 준다고 합니다. 휠체어 그네를 타며 행복했던 장애어린이들은 김 대표에게 "언제쯤 그네를 다시 탈 수 있어요?"라고 묻습니다. 그는 그때마다 "곧 휠체어 그네를 들고 갈게. 조금만 기다려 줘"라고 말합니다.
 
"미국, 영국 등에는 장애어린이와 비장애어린이가 함께 타며 웃고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가 보편화 돼 있습니다. 저는 언제쯤 휠체어 그네를 들고 다시 장애어린이에게 달려갈 수 있을까요?" 김 대표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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