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아 김해여성복지회관 평생교육원 원장.

벽화는 담벼락이나 건물의 내·외벽을 이용하는 그림이다. 마을 벽화 그리기는 우리나라에서 광범하게 이용되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2006년 이후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벽화 그리기는 주거 취약 지역의 서민층과 소외 계층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면서 지역의 미술 작가들에게 창작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그래서 벽화마을은 대개 오지 마을이나 산동네에 위치하고 있다.

부산의 벽화마을들도 산동네 아니면 도심 속의 오지라고 불리는 곳에 형성됐다. 6·25 전쟁 당시 부산에는 실향민들이 밀려 들었지만 이들이 살 집이 부족했다. 그래서 다들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상수도 시설이 열악했고, 도로는 꼬불꼬불한 S자형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러한 환경은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열악한 생활 환경을 시각적으로나마 개선하기 위해 벽에 그림을 그려 넣는 프로젝트가 실시되면서 벽화마을이 생기게 됐다.

김해에서는 지난해부터 벽화마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회현동은 마루길, 혜윰길, 다솜길로 나누어진 낡은 도심의 골목길 벽화 덕분에 활기가 생겼다. 골목길에는 벽화 11종, 설치미술 12종 등 재미있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꾸며져 있다. 각 집의 대문에는 자체적으로 충전되는 소형 태양광 등을 설치해 깜깜했던 골목길을 환하게 밝혔다.

상동면 대감마을은 역사를 곳곳에 그려 넣어 문화마을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의 여성 도예가로 일본 도자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백파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벽을 따라가면 분청사기의 이야기를 만나고, 철을 제련하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무계동 광석마을에는 65세 이상의 독거노인들이 거주하는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청소년들의 탈선, 비행 장소로 활용될 우려가 높다. 그래서 '서민보호 치안강화 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동네에 '작은 변화'를 주기로 뜻을 모은 관계기관과 지역단체가 지저분한 담벼락을 새롭게 색칠했다.

진영읍 서부골 벽화마을은 철길마을 주변에 활력을 불어넣고 마을 환경 개선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외에도 진례면 신월마을, 한림면 모정마을 등 김해의 많은 마을들이 벽화마을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처럼 벽화는 죽은 마을을 되살리고 있다. 화사한 그림은 마을 분위기를 바꾸고, 외지인들을 마을로 이끄는 홍보 수단이 되기도 한다. 담벼락에 그림만 그렸을 뿐인데 사람들이 들어와 사진을 찍게 되니 조용했던 마을은 활기를 띠게 됐다.

상당수 벽화마을 주민들은 화사한 그림 덕분에 마을이 환하게 바뀌자 부산의 감천마을이나 통영의 동피랑처럼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전국적으로 벽화 마을은 많지만 성공했다고 들리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회현동과 대감마을의 벽화는 설화와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하지만 단편적인 그림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방문객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마을해설사가 방문객들에게 내용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호기심으로 마을을 찾았던 방문객들은 부족한 편의시설과 안내 때문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에 많은 벽화들은 4~5년이 지나면 색이 바래거나 훼손되고 만다. 관리 부족으로 흉물이 된 동상동전통시장 칼국수골목 벽화에서 그 폐해를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현재에 만족해 머무른다면 퇴색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도시 미관 정비를 위해 시작한 벽화가 도시의 흉물로 변할 수도 있다. 1회성 선심행사로 진행하는 벽화 작업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자칫하면 벽화가 마을의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

벽화마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주제 설정, 주위 환경조건을 살린 작품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어우러져야 한다. 여기에 지속성도 들어가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주도적 참여다. 특색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끊임없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벽화를 그리거나 훼손된 그림을 함께 보수하는 일에 주민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참여하느냐가 마을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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