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림면 장방리 한림정1구 마을 전경. 자연마을치고는 비교적 상가가 많이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정자에서 마을 이름 유래
상·하북 합친 이북면, “북한 연상” 이유 개칭

경전선 간이역 생긴 이후 재래시장 번성
승객 넘쳐나 등교 때는 매달려 가다시피
육로 발전 탓 사라져 이제 건물 한 동만

2002년 월드컵 때 대형 홍수로 큰 피해
산 깎아 아파트 건립 소식 난개발 걱정



 

▲ 1918년 한림정역 자리. 지금은 우체국이 있다.

북부동을 지나 한림면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순식간에 온통 초록세상이 펼쳐진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 '화포천생태습지'라고 쓰인 푯말이 눈에 띈다. 화포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자연마을 '한림정마을'이 나타난다.
 
한림정마을은 한림면 장방리에 속해 있다. 한림면은 190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화포천을 경계로 북쪽은 상북면, 남쪽은 하북면으로 나뉘어 있었다. 1914년 두 면을 합쳐 '이북면'이 됐다. 나중에 이름이 북한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 1987년 '한림면'으로 개칭됐다고 한다.
 
한림정이라는 이름은 조선 초기 문신인 김계희에게서 비롯했다.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나자 그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지금의 마을에 정자를 지었다. 김계희는 정자를 '한림정(翰林亭)'이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마을 이름이 나왔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잠시 '유림정(楡林亭)'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으나 해방 후 이름을 되찾았다.
 
한림정마을은 현재 1~3구와 심봉, 청원 마을로 나뉜다. 1905년 철로 건설과 1918년 한림정역 건립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한림정마을은 1964년 1~3구로 분동됐다. 2002년 지역에 큰 수해가 발생하는 바람에 이주단지인 심봉 마을이 새롭게 분리됐다. 2005년에는 1구에 속해 있던 청원 마을이 갈라졌다.
 
1구 마을 배주열(59) 이장과 강경숙(59) 부녀회장이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1구 마을은 한림로를 기준으로 경전선 방향 지역이다. 배 이장은 "한림로를 사이에 두고 우체국 쪽은 1구, 본래 면사무소가 있던 쪽은 3구로 갈린다. 면사무소는 현재 신축 공사 중이다. 지난 3월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내년 3월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하고 있다. 지금은 시산농협 2층을 임시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1960년 한림정역이 있던 장소.

한림정역은 1918년 지금의 우체국 자리에서 진영역의 관리역인 간이역으로 출발했다. 1923년에는 보통역으로 승격했다. 1960년 역사는 심봉마을 방향으로 100m 가량 옮겼다. 이 때까지는 경전선이 단선이었다. 2010년 노선이 복선화된 뒤 한림정역은 지금의 자리에 신축됐다. 배 이장은 "역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오일장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한림정 입구부터 지금의 우체국이 있는 곳까지 재래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밀양 수산에서도 장을 보러 올 정도로 큰 시장이었다. 1968년 면사무소가 한림정마을로 옮겨오면서 시장은 더욱 번창했다. 그러나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사라졌다"고 전했다.
 
재래시장은 한림면의 산업 중심지로 한때 전성기를 누렸지만, 육로 발전과 차량 증가 때문에 문을 닫았다. 지금은 건물 1개 동만 남아 있다. 나무 위에 시멘트가 발린 건물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남아 있는 이 건물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다.
 

▲ 2010년 복선화되기 전 단선 시절 경전선.

강 회장은 "역을 끼고 있었으니 당연히 동네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열차 말고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다. 버스가 있었다고 해도 하루 한 대나 지나갔을까. 매우 드물었다. 마산으로 열차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승객이 얼마나 많았던지 열차에 거의 매달려가다시피 했다"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현재의 한림정역 맞은편에는 수해 피해주민 이주단지인 심봉마을이 있다. 배 이장은 아직도 마을의 대부분이 물에 잠겼던 15년 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그는 "우리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떠들썩했을 때다. 태풍 '루사' 때문에 우체국부터 지금의 신봉마을까지 저지대는 모두 물에 잠겼다. 3구에 있던 집들은 2층까지 물에 잠기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위쪽에 있던 1구의 몇 집들만 무사했다. 우리나라 법 조항에 '특별재해지역'이 그 때 처음 신설됐을 정도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신봉마을은 한림정마을에서 신축건물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수해가 난 이후 새로 마을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한림정역에서 내려다 보면 세련된 수십 채의 건물들이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과 대비된다.
 

▲ 과거 재래시장이 섰던 골목.

한림정마을은 한림면의 주요 관공서가 모인 지역이어서 비교적 도시화가 많이 진행됐다. 4월 기준으로 854가구에 1755명이 산다. 주민들은 농업, 상업, 축산업, 공업 등에 종사한다. 자연마을 치고는 직업군이 꽤 다양하다. 20년 전부터는 공장이 들어서면서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비율도 상당히 늘었다고 한다.
 
강경숙 부녀회장은 "어릴 때 한림은 참 좋은 동네였다. 이제는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든다. 만약 더 개발된다면 신도시가 들어서고 인구 유입이 많아져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 이장은 "10여 년 전만 해도 한림면의 인구가 1만 3000명 정도였다. 지금은 8000명 정도다. 많이 감소했다. 요즘 마을 안 산을 깎아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굳이 산을 깎지 않아도 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는 있다. 개발을 해도 지킬 것은 지키고, 보존할 것은 보존해야 한다. 개발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방향으로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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